친구이자 자일파티인 대섭이와 은경이의 여름 휴가 기간이다. 나를 포함한 세 친구가 한적한 평일의 인수봉 취나드B길 등반을 계획한다. 오전 10시에 우이동에서 만나 도선사를 향해 올라간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덥고 습하다. 무거운 장비와 60 미터 자일까지 담긴 배낭을 메고 올라가는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 더디다. 온몸은 땀에 젖어서 흥건할 지경이다. 온도도 높지만 습도가 높은 게 더 문제인 듯하다. 행안부의 안전 안내 문자 서비스는 오전 11시부터 폭염경보를 발령하고 있다. 최고 35도 이상의 기온이니 야외활동을 자제하라고 한다.
팔둑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고 모자 챙과 콧잔등으로는 낙숫물처럼 땀이 뚝뚝 떨어진다. 어제 불암산 암장에서 등반한 후로 약간 과음했던 피로감이 덜 풀린 것도 한몫을 한 것 같다. 도선사 주차장까지 여러 차례를 쉬면서 천천히 올라간다. 백운대로 가는 산길 초입에서 간식을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한다. 하루재를 넘어서 인수봉 동벽 아래에 도착하기까지의 어프로치 과정이 그야말로 고행길이다. 배낭을 벗어던지고 평상 같이 넙적한 바위에 드러눕는다. 그렇게 한참을 쉰 후에 참외와 빵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취나드B길이 올려다보이는 곳에서 장비를 착용한다. 두 친구들도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등반을 접고 싶은 생각이었지만 장비를 메고 올라온 것이 억울해서 일단 붙어보기로 한다. 40 미터가 넘는 취나드B길 첫 피치를 오르는 것이 힘겹다. 크랙 등반의 손맛이 좋은 곳이지만 캠을 설치하면서 오르는 것이 평소보다 녹록치 않다. 대섭이와 은경이가 차례로 등반해서 세 친구가 첫 피치 확보점에 모인다. 다들 체력이 방전된 듯한 표정들이다. 오늘 등반은 오아시스까지만 진행하기로 한다. 한 피치를 더 등반하여 오아시스에 도착한다. 오랜만에 와보는 오아시스다. 그 이름처럼 그늘지고 간간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주는 그곳에서 한참을 쉰 후에 60 미터 하강을 하는 것으로 등반을 종료한다.
예정된 등반을 완료하지 못한 아쉬움은 남는다. 하지만 기후 상황과 등반자의 체력을 생각해서 현명하게 돌아설줄도 알아야 한다. 습도 높은 날의 슬랩 표면은 건조한 날의 그것과 상태가 많이 다르다. 암벽화가 바위표면에 밀착하는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살짝이라도 미끌리는 게 느껴지면 등반이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오늘의 인수봉 슬랩이 그랬다. 동갑내기 친구들이라서 그런지 등반이 예정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돌아서야 할 때에도 의견 일치가 잘 되었다. 진정한 자일파티는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면서 현명하게 행동하는 팀이라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셋은 오늘 아주 좋은 자일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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