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동안엔 자연 암벽에서 등반다운 등반을 즐겨보지 못했다. 혹독한 더위에 모든 것이 하기 싫어진 무기력증이 나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약해지는 도전정신도 한 몫 거들었다. 어쨌든 자연의 시간은 어김 없이 흐른다. 이제는 아침 저녁으로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독서와 산행에 가장 쾌적한 계절인 가을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9월이 좋다. 지난 주에 캐나다 출장을 다녀왔다. 짧은 일정 때문에 대자연의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록키의 품 안에서 다양한 레포츠 활동을 즐기고 있는 이들을 관광객의 눈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잘 보존된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야생의 모험을 즐기며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이 마냥 부러웠다. 마음 같아선 나도 그곳에 한동안 머물면서 캐나디언 록키에 숨어 있는 여러 암벽 루트들을 등반해 보고 싶었다. 루이스 호수 뒷편 절벽과 캔모어 인근 암장에서의 등반은 빙하 녹은 물이 머물다 가는 아름다운 알파인 호수를 품은 절경 속에서 즐기는 것이기에 더욱 특별할 것이다. 캐슬 마운틴의 멀티 피치 루트를 오르면 스케일 큰 록키의 광활함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올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품고 귀국한 후에 마음은 벌써 답답한 실내 암장을 떠나 풍광 좋은 곳에 자리한 자연암벽에서 악우들과 어울려 자유로운 몸짓으로 등반하고 있는 나를 그리고 있었다.
제천의 청풍호반에 위치한 작성산의 곰바위길을 등반하기로 한다. 인터넷에서 검색한 등반기와 사진를 보고 주변 풍광이 멋진 곳이라서 진즉부터 마음이 끌리던 곳이다. 토요일 아침 6시에 서울을 나선 후 두 시간을 조금 더 달려서 무암사 부도탑 앞에 도착한다. 서울에서 제천까지는 경기도 광주에서 원주까지 제2영동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중부내륙고속도로는 여주 JC에서 양평까지 이어져 있으니 경로 선택의 폭이 넓어서 교통이 아주 편리해졌다. 곰바위길은 그 어느 릿지길보다 출발점 찾기가 수월하다. 부도탑 입구의 이정표부터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 어프로치 구간도 짧아서 좋다. 첫 피치 출발점에 도착하니 구미에서 오셨다는 팀이 벌써 등반에 열중하고 있다. 우리도 출발점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면 나오는 공터에서 장비를 착용한다.
여덟 개의 피치로 구성된 곰바위길은 피치마다 난이도가 다른 두세 갈래의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처음 와보는 곳이기에 안전한 등반을 우선으로 생각하여 가능한 쉽고 등반선이 자연스러운 루트를 따라 오른다. 비교적 길지 않은 피치에 캠을 설치하고 올라야 하는 크랙 구간이 많다. 자연암벽에서의 등반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홀드 찾기가 수월치 않고 밸런스 잡기도 만만치 않은 구간의 연속이었다. 해골바위 정상인 셋째 피치 확보점부터는 시야가 열린다. 저멀리 청풍호수가 아련하게 보이지만 안개 자욱한 날씨 때문에 희미한 시야가 아쉽다. 맑은 날이라면 호수가 잘 보였을 것이다. 곰바위길 좌측으로는 최근에 개척되었다는 돌고래길과 배바위 암장 부근의 바위 군상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앞에서 등반하는 팀의 속도는 빠르고 우리 팀 뒤에는 아무도 없다. 한적한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등반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뼈다귀바위를 오르는 크럭스 구간을 잘 통과하여 예상치 않게 살짝 긴장하게 만드는 마지막 여덟 번째 마디까지 잘 올라선다. 곰바위길 정상에서 청풍호수를 내려다 보며 오후의 햇살 아래 여유로운 시간을 즐겨본다. 두 차례의 30 미터 자일 하강으로 골짜기의 너덜지대에 내려서는 하강 루트가 깔끔하다. 모든 등반을 안전하게 마치고 장비를 정리하는 동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진다. 처음 와보는 곳은 설레임과 긴장감이 교차하기 마련이다. 마음 속에 품고 있었던 곰바위길에서 안전하고 한적한 등반을 즐길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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