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 연휴에 왼쪽 약지와 새끼손가락 골절상을 당했다. 그 이후로 근 4개월 가까이 암장에 나가지 못했다. 새해 들어 첫 주부터 마음을 다잡고 아직 완전치 않은 손가락을 시험해볼 겸하여 암장에 다니기로 했다. 어제까지 세 차례 벽에 붙어본 결과 늘어난 몸무게와 굼뜬 몸놀림을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부상 당했던 왼손으로 홀드를 잡고 몸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이 우선은 반가웠다. 아직 리드 등반 시에는 자일 클립에 대한 두려움이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하면서 암장에 다시 다녀볼 생각이다. 어떤 운동이나 부상은 입을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극복하는 마음 자세에 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고 하지 않던가. 부상 이전의 몸 상태를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상 기간 동안 다른 면에서 얻은 유익이 많다. 정신적인 면에서는 부상 이후에 조금은 더 성장했을 것이라 믿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패기가 떨어지는 걸 느낀다. 모든 것에서 설레임이 사라지고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 문제다. 연구년을 맞이하면서 학자로서의 마음가짐도 다시 한 번 점검해보고 있지만 쉽사리 결론은 나지 않는다. 젊은 시절엔 마음이 가는 대로 거의 즉흥적으로 선택하고 자신감 있게 행동했었다. 요즘엔 그런 패기와 용기가 많이 누그러졌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새롭게 도전하는 삶을 가꾸어 나가야 한다는 다짐을 해 본다. 클라이밍도 클라이밍 자체가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 좀 더 가치 있는 삶을 가꾸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실내 클라이밍과 야외 등반도 그 의미를 가져야 한다.
어제는 북한산 둘레길을 걸어서 암장에 갔다. 모처럼 파란 하늘 아래에 선명하게 빛나고 있는 인수봉을 보았다. 비구니 노승 두 분이 옆에 와서 저것이 그 유명한 인수봉이냐고 물으신다. 내가 그렇다고 하자 밝은 얼굴로 정말 멋지다고 하신다. 나에게는 익숙해서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인수봉이 그들에겐 설레임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내 주변의 일상적인 것이 어쩌면 모두 특별하고 귀한 것들로 가득찬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생물학적으로도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듯 내 주변은 항상 새로워지고 있다. 그걸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무디고 심드렁해진 것일 뿐이다. 나의 일상을 더욱 사랑하고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일단은 클라이밍에서도 부러진 손가락이 아물어서 다시 홀드를 잡을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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