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장거리 도보 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GR(Grande Randonnée)이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Wikipedia)에 의하면 GR은 유럽 대륙 중에서도 프랑스, 벨지움, 네델란드, 스페인 등에 주로 분포하는 걷기 길로 총 연장이 무려 6만 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지도 상에서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GR 루트들 중에서 GR5로 분류되어 있는 코스는 북해에서 시작하여 지중해에서 끝난다. 네델란드, 벨지움, 룩셈부르그, 프랑스를 차례로 거치면서 유럽 대륙을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르게 되는 이 GR5는 은연 중에 나에게도 인연이 닿아 있었다.
최근에 출판된 허긍열 씨의 책 <알프스 트레킹-8>은 GR5 코스 중에서 백미라 할 수 있는 알프스를 가로지르는 산길이 속해 있는 부분을 소개하고 있다. 레만 호숫가의 작은 도시 생쟁골프에서 출발하여 알프스를 넘어 대도시인 니스의 지중해변까지 이르는 여정이다. 저자가 몸소 걸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구간별 코스 정보와 생생한 사진들을 책 속에 담아내고 있다. 아름다운 사진집을 감상하듯 천천히 책장을 넘기면서 구간별로 소개되어 있는 지도상의 루트를 연상하면서 따라가는 재미가 좋다. 익숙한 지명들이 많이 등장하는 샤모니 인근의 몽블랑 산군 주변을 걷는 구간에서는 고향처럼 친숙한 느낌마저 들었다. 장거리 트레킹 코스 관점에서 알프스 산맥을 통과하는 산길을 재조명 해볼 수 있었다.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지리적 편린들이 퍼즐 조각을 맞춘 것처럼 연결되어 전체가 완성되는 듯한 개운함을 맛보았다.
유럽에 잠시 살면서 도보 여행을 할 때 흔히 보았던 표시에 대한 의문도 풀렸다. 나무나 바위에 하얀 색과 빨간 색 페인트로 대충 휘갈기듯 그어놓은 두 줄기 선 표시가 GR 루트를 의미한다는 것도 이번에 알 수 있었다. 나의 첫 번째 안식년이었던 2010년도에 벨지움에 머물면서 GR 표시를 따라 다니며 여러 지역의 길을 탐험하듯 걸었던 적이 있다. 그때는 GR이란 명칭도 몰랐다. 주말마다 구글 지도를 보면서 도보 여행을 계획했고, 이른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가서 내가 걷고 싶은 길을 찾아 나섰다. 그때마다 어김없이 흰색과 빨강 두 줄기 페인트 선인 GR 표시를 만날 수 있었다. 지도에서 전체 GR 루트를 훑어 보면서 벨지움과 룩셈부르그에 있는 구간 중의 일부를 그 당시에 걸어 다녔음이 분명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내가 혼자 방랑하듯 거닐었던 리에쥬, 스파, 디낭, 나뮤르 등의 소도시 주변에 있는 오솔길이 거대한 GR에 속해 있었던 것이다.
샤모니는 지난 여름 아내와 함께 다녀온 트레킹 여행까지 포함해서 네 차례 다녀온 바 있다. 몽블랑 산군의 트레킹 루트들 중에서 GR5에 속한 일부분을 걸었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동안 셔틀버스나 기차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제네바 공항에서 샤모니로 이동했었다. 막연하게나마 산길을 걸어서 샤모니로 들어갈 수 있는 루트도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알프스 트레킹-8>에서 첫 번째 권역으로 분류해 놓은 생쟁골프부터 미아즈 산장까지의 구간 속에 내가 궁금해 하던 그 산길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무척 반가웠다. 언젠가 다시 알프스에 갈 기회가 온다면 꼭 이 산길을 통해서 샤모니에 입성해 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내년이면 나의 두 번째 안식년이 돌아온다. 이제는 며칠 동안 계속해서 산길을 걷고 있는 상상이 현실화 될 수 있겠다는 희망도 함께 가져본다.
1. 2010년도 봄에 걸었던 벨지움 디낭 인근의 오솔길도 GR의 일부분이다.
2. 유럽에는 장거리 도보길이 널려있다.
3. GR 중에서 프랑스에 속한 부분을 나타낸 지도이다. 가장 동쪽에 GR5가 보인다.
4. GR5 구간 전체를 주(week) 단위로 표시한 자료. GR5 길이는 총 연장 2290 킬로미터.
5. <알프스 트레킹-8>은 GR5 중의 하일라이트 구간인 알프스 트레킹 코스를 소개하고 있다.
6. 다시 알프스에 간다면 이 책 속의 길을 따라 산길을 걸어서 샤모니에 입성하고 싶다.
7. 몽블랑 산군을 벗어난 지역의 GR5 구간도 새로울 것 같다.
8. 변형루트로 소개되어 있는 보잘르 산장과 페르 아 쉬발 계곡을 거치는 코스도 기억해 두어야겠다.
9. 총 674 킬로미터 길이의 트레킹에서 대미를 장식하는 순간의 기쁨은 매우 클 것이다.
10. GR5 루트 중에 있는 벨지움의 대도시 리에쥬의 기차역. 2010년 봄에 리에쥬의 강변길을 걸었었다.
11. 벨지움의 아름다운 휴양지인 스파(Spa)를 트레킹하면서 찍은 것이다.
12. 뮤즈 강변의 아름다운 도시인 디낭(Dinant)의 산길을 걸었었다.
13. 절벽 뒷편의 오솔길을 걷다보면 디낭의 아름다운 풍광을 만날 수 있다.
14. 벨지움과 룩셈부르그 지역의 오솔길은 대부분 평탄한 흙길이다. 트레킹이라기 보다는 하이킹 수준의 편안한 길이다.
15. GR 루트 표시는 오솔길 위의 돌에도 그려져 있다.
16. GR 루트에서 벗어날 우려가 있는 곳에는 X자로 표시되어 있다.
17. 숲길을 걷다가 만나는 GR 표시는 반갑다. 벨지움 스파 인근의 산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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