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독후감] <세로 토레 - 메스너, 수수께끼를 풀다>

빌레이 2017. 1. 23. 15:53

라인홀트 메스너가 쓴 <세로 토레>란 책을 읽었다. '메스너, 수수께끼를 풀다'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원저자의 독일어 판인 <토레-바위에서 나는 소리>를 김영도 선생이 번역한 것이다. 내가 다니는 암장이 있는 건물에서 출판기념회를 겸한 산서회 모임이 있던 자리에서 구입했었다. 지금 보니 역자인 김영도 선생의 친필 서명도 있다. 그간 읽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가 책꽂이를 정리하면서 다시 눈에 띄어 곧바로 집어 들게 되었다. 등반기가 아니라 세로 토레 초등을 둘러싼 의혹들을 파헤친 책이라는 서문을 보고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시대 최고의 등반가일 뿐만 아니라 등반 관련 저술가로도 최상의 반열에 올라 있는 메스너의 책답게 정말 흥미로웠고 잘 읽혔다.


남미 파타고니아 피츠로이 산군에 있는 침봉들 중에서 가장 등반하기 어려운 곳으로 꼽히는 세로 토레는 1959년도에 체사레 마에스트리, 토니 에거, 체사리노 파바 팀에 의해 초등된 것으로 알려진다. 토니 에거가 하강 중에 목숨을 잃게 되는 이 등반에서 마에스트리와 에거, 두 사람이 토레 정상에 오른 것으로 보고되었으나 어떠한 증거도 남지 않는다. 당연히 마에스트리의 초등은 의심받게 되고, 1970년도에 이러한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마에스트리는 다시 토레에 오른다. 하지만 이 등반은 루트가 초등 때와 다를 뿐만 아니라 40kg이나 되는 컴프레서를 끌고 올라가 건설공사와 같은 방식으로 오른 것이어서 초등에 대한 검증은 고사하고 새로운 논란만 가중시키게 된다. 더구나 이 두 번째 등반에서도 마에스트리는 최정상의 얼음버섯은 올라가지 못하고 암벽 부분까지만 등반하고 내려오게 되어 스스로 찜찜함을 더하는 결과를 낳는다.


메스너는 토레 등반에 얽힌 역사적 사실들과 실제 등반했던 등반가들의 인터뷰 등을 통하여 진실을 규명하고자 노력한다. 그 결과 마에스트리의 초등설은 거짓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과 카시미로 페라리가 이끌었던 1974년 1월의 등정이 진정한 토레 초등임을 밝히게 된다. 책은 단순히 등정 사실 자체만을 다루지 않는다. 토레와 관련된 등반가들의 다양한 이야기와 등반기를 압축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박진감 있게 전개되어 흥미진진하다. 진정한 초등자인 페라리는 리카르도 카신의 수제자였다고 한다. 돌로미테의 거미로 불리며 당대 최고의 암벽등반가였던 체사레 마에스트리는 발터 보나티와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면서 본의 아니게 업적 위주의 등반가로 빠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에스트리와 보나티 두 사람 모두 그들의 첫 번째 토레 등반에서 실패하게 되는데 똑같은 지점인 정상 밑의 안부를 마에스트리는 '정복의 안부'로, 보나티는 '희망의 안부'로 표현한 것이 두 사람의 등반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산악영화 DVD 중에 <지구 최후의 등반지 쎄로토레(Scream of Stone)>가 있다. 오래된 영화라서 화질은 별로지만 나에게는 미지의 자연인 파타고니아의 환경을 화면에서 대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기억이 있다. DVD 표지를 꼼꼼하게 읽어보니 이 영화의 각본과 제작에도 메스너가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등반가인 슈테판 글로바츠가 배우로 출연했던 것으로도 기억이 되는 이 영화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진다. 책을 읽고난 후에 지난 2013년도에 샤모니에서 사온 등반안내서인 <Patagonia Vertical>도 자연스레 펼쳐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