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의 최고봉인 몽블랑은 높이가 해발고도 4807 미터이다. 다년간의 등산과 암빙벽 등반 활동 경험이 있는 나에게도 산에 다니는 여느 사람들처럼 몽블랑 정상에 오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하지만 4천 미터 이상의 고산 지대에서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고 두통이 심해지는 증세를 두 번이나 겪은 후로는 몽블랑 정상 등반에 대한 미련이 완전히 사라졌다. 고산 증세는 사람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힘들고 선천적인 요인이 지배한다는 등반가들의 경험담도 정상 등정의 미련을 버리게 하는 데 한 몫을 차지했다. 취미로 즐기는 등반 활동에서까지 업적 위주의 등정에 매몰되기는 싫었다. 앞으로도 하늘이 허락하고 나의 주변 여건이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도전하는 자세로 등반에 임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프랑스어로 '몽(mont)'이 산을 의미하고 '블랑(blanc)'이 흰색을 뜻하므로 몽블랑은 '흰산'이나 '백봉'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이태리어로는 '몬테비안코'라고 부르는데 뜻은 몽블랑과 같다. 샤모니 어느 곳에서나 잘 보이는 이 몽블랑을 왜 하얀 산이라 불렀는지 처음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산골짜기 마을인 샤모니에서 둘러보면 몽블랑 뿐만 아니라 다른 봉우리들도 모두 만년설로 덮여 있어서 하얗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여름 휴가 때 제네바에서 샤모니로 향하는 차에서 본 몽블랑의 원경을 보고서야 그 궁금증이 풀렸다. 이전 세 차례의 샤모니 방문 때에는 모두 한밤중에 공항에서 샤모니로 이동했기 때문에 멀리서 몽블랑을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제네바에서 샤모니로 가는 도로에서 보이는 몽블랑은 그야말로 눈부시게 하얀 산이었다. 상대적으로 저지대인 알프스 초원 지대의 녹색과 대비되어 햇빛을 받아 선명한 하얀 빛깔을 뽐내며 반짝이고 있었던 것이다. 멀리서 보는 알프스 산군에서 몽블랑은 순백의 보석으로 치장한 모습으로 최고봉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등반사에서 몽블랑 정상의 초등은 세기의 등정 시비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1786년 초등이 이루어진 이후로 진실은 100여년 후에야 밝혀지게 된다. 소쉬르(Saussure)의 제언에 의해 빠까르(Paccard)와 발마(Balmat) 두 사람이 처음으로 몽블랑 정상을 밟았다. 하지만 혼자서 영웅이 되고 싶었던 발마의 공작으로 빠까르의 정상 등정은 잊혀지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 등반에 나섰지만 빠까르는 설맹과 동상으로 정상에 서지 못했다고 한 발마의 거짓말이 당시에는 통했던 모양이다.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듯 후세의 노력으로 당시의 현장 스케치와 등반기록 등을 통하여 빠까르의 초등은 사실로 입증된다. 현재 샤모니 시내에는 소쉬르와 발마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동상과 조금 떨어진 자리에 빠까르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발마는 몽블랑 초등자로 역사에 남았지만 비열한 짓으로 인한 오명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이 동시에 정상을 밟았다고 증언하여 에베레스트의 초등자들로 영원히 기록된 아름다운 일화와 대비되는 사건이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금 새겨볼 일이다.
▲ 에귀디미디 전망대에서 본 몽블랑. 봉우리들은 좌측부터 몽블랑, 돔드구떼, 에귀구떼.
▲ 에귀디미디 전망대에서 본 몽블랑 좌측 봉우리들. 왼쪽부터 차례로 몽블랑뒤따귈, 몽모디, 몽블랑.
3년 전에 몽블랑뒤따귈 등정에 나섰다가 고소증세를 견디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서야 했던 지점을 가늠할 수 있다.
▲ 전망대에서 보면 중앙의 몽블랑이 최고봉이란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3년 전에 등반했던 코스믹릿지가 바로 앞에 보인다.
▲ 샤모니의 새벽 시간에 가장 먼저 햇빛을 받는 곳이 몽블랑이다.
어찌보면 우측의 돔드구떼가 더 높아 보이고, 보쏭빙하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하다.
▲ 저 멀리 아득히 보이는 몽블랑이 '돔드구떼'보다 낮아 보이기도 하지만 햇빛은 가장 먼저 받는다.
▲ 숙소가 있던 가이앙 호수 주변에서도 몽블랑은 항상 잘 보인다.
▲ 샤모니에 머무는 동안 숙소의 창문을 열면 펼쳐지는 몽블랑과 주변 설산의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서 행복했다.
▲ 산 아래는 꽃이 피어 있지만 몽블랑 봉우리 근방은 보이는 것과 달리 산소도 희박하고 사람에게는 혹독한 환경일 것이다.
▲ 러스킨 바위 앞의 벤치에서도 몽블랑은 잘 보인다. 가장 오른쪽에 아득히 보이는 하얀 봉우리가 몽블랑이다.
▲ 샤모니 시내에 있는 소쉬르와 발마의 동상. 몽블랑 초등은 1786년 소쉬르의 제언으로 발마와 빠까르 두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 나중에 세워진 빠까르의 동상. 등정 시비로 인해 빠까르의 몽블랑 초등 사실은 100여년이 지난 후에야 진실이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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