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선인봉 '경송A-진달래-청암' (2020년 5월 30일)

빌레이 2020. 5. 31. 08:59

젊은 친구들이 하는 말 중에 "라임을 잘 맞춘다"라는 표현이 있다. 라임(rhyme)은 원래 힙합 용어로 가사의 전달성을 높이기 위해 운율을 맞추는 것을 일컫는다. 영어에서는 단어 B의 발음을 잘 모르는 경우에 익숙한 A처럼 발음하면 된다는 뜻에서 "rhyme A with B" 형식으로 자주 쓰인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문이 "You can rhymegirl’ withcurl"이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발음이 비슷한 단어들을 재치 있게 짜맞추면 한층 더 즐거울 것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요즘 라임 맞추는 것에 재미를 붙인 듯하다. 오늘 등반의 뒷풀이 자리에서 오고 간 수많은 대화 중에는 정길씨가 말한 "암벽은 완벽"이 압권이었다. 타이밍과 라임을 제대로 맞춘 걸작이기에 선인봉에서 함께 줄을 묶고 등반했던 나와 기범씨, 은경이의 박수를 받기에 충분했다.

 

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한 날씨에 푸른샘의 석간수로 목을 축이고 선인봉 외벽 근처의 공터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오전에 '경송A'길 세 피치와 '진달래'길 두 피치를 등반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화강암 표면은 암벽화가 미끌릴 정도로 등반이 쉽지 않은 상태였다. '경송A'의 3피치 슬랩(5.10c)과 '진달래'길 2피치 칸테(5.11a) 구간은 후등으로 가기에도 벅차서 몇 번의 추락을 면치 못했다. 특히나 왼손 홀드가 미덥지 않은 칸테 등반은 크랙에서의 레이백 동작보다 한층 더 어려웠다. 점심 이후에는 시원한 그늘이 드리워진 '청암'길 4피치를 두 마디로 끊어서 등반했다. 등반 난이도 5.11a로 기록되어 있는 3피치의 크럭스 구간은 예상보다 훨씬 어려워서 남은 힘을 모두 쏟아낸 후에야 겨우 통과할 수 있었다. 이 구간을 자유등반으로 완벽하게 돌파했던 기범씨가 새삼 존경스러워 보였다.           

 

오늘 등반했던 코스는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 하지 않아서 힘들었으나, 다른 것을 생각할 겨를 없이 오로지 등반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어서 매우 알찬 하루를 보냈다는 뿌듯함이 남았다. 짭짤한 슬랩에서 암벽화에 모든 체중이 실리는 바람에 발가락 끝으로 전해져오는 극심한 고통까지도 확보점에 도착하는 순간에는 새로운 환희로 바뀐다. 앞으로 우리의 등반도 그러할 것임을 굳게 믿는다. 기범씨가 좋아하는 표현인 "산에 들다"와 정길씨의 재치 있는 라임인 "암벽은 완벽", 그리고 내가 악우들에게 가끔 말하는 "사랑은 자일을 타고 흐른다"는 문구를 연결하면 오늘의 등반이 정리될 듯하다. 오월의 마지막 주말에 우리는 푸르른 도봉산에 들어서 선인봉의 너른 품 안에서 놀았다. 서로 줄을 묶은 채로 "암벽은 완벽하게"를 마음 속으로 외치며 등반에 열중하는 동안 악우들의 사랑은 자일을 타고 넘쳐흘렀다.          

 

▲ '진달래'길 2피치 크럭스인 칸테 구간을 어거지로 겨우 통과한 직후의 모습이다.
▲ '경송A'길 출발점에서 선등자 확보 중이다. 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한 날씨에 바지를 걷어부쳤다.
▲ '경송A' 1피치와 2피치를 한 번에 연결해서 오르는 것으로 오늘의 등반을 시작한다.
▲ '경송A'길은 3피치가 크럭스이다.
▲ '경송A' 2피치 확보점에서 선등자 확보 중인 정길씨와 함께...
▲ '경송A'길 3피치를 출발 중이다.
▲ '진달래'길을 출발 중인 기범씨의 모습 좌측으로는 우리 다음으로 '경송A'를 등반하고 있는 팀이 보인다.
▲ '진달래'길 2피치의 크럭스인 칸테 구간에 진입 중인 기범씨의 모습이 보인다.
▲ '진달래'길 2피치에서 내려다 본 그림이다. 칸테 등반은 정말 어려웠다.
▲ 늦은 오후 시간에 그늘진 '청암'길 초입에서 출발 준비 중이다.
▲ '경송A'길 3피치를 등반 중이다.
▲ '경송A'길 3피치 후반부는 크랙이 아닌 우측 슬랩으로 등반해야 한다.
▲ '경송A'길 3피치 확보점 직전을 등반 중이다.
▲ '청암'길 2피치 중간에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다.
▲ '청암'길 2피치 후반부에서 맨틀링 자세로 올라서야 하는 구간이 실짝 까다로웠다.
▲ '청암'길 3피치 초반부는 손홀드 좋은 직상 크랙이어서 등반이 즐겁지만, 언더크랙을 넘어선 이후 구간이 상당히 어려웠다.
▲ '청암'길 3피치 크럭스 구간을 등반 중이다.

 

▲ '청암'길 4피치도 만만치 않은 구간이다. 보기보다 홀드 찾기가 까다로운 구간이었다.

 

▲ '청암'길 4피치 확보점에 모이는 것을 끝으로 빡셌던 오늘의 등반을 마무리 한다.
▲ 내가 마지막으로 모든 장비를 회수하고 두줄 하강 중이다. 실전에서는 처음으로 옭매듭을 사용해서 로프 두 동을 연결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