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은 월요일에 하루 휴가를 냈다면 최장 6일 동안 쉴 수 있었던 황금연휴의 마지막 날인 어린이날 아침은 흐린 날씨로 시작되었다. 실전등반에서 필수적인 레이백(layback)과 스테밍(stemming) 동작을 정확히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 인수봉 남벽에 있는 '여정길' 아래의 공터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유명 등산학교의 베테랑 강사인 기범씨의 지도 하에 은경, 동혁, 정길, 나, 이렇게 4명이 인수봉 남벽 아래에 있는 '짬뽕길', '여정길', '청맥길', '학교길', '꾸러기들의 합창' 루트의 첫 피치를 차례로 등반하면서 다양한 동작을 훈련했다. 기범씨가 같이 등반할 때마다 누누히 강조하던 "짝힘(오퍼지션, opposition)"의 원리를 몸으로 체득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연습과 함께 팔의 완력을 키우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절감한 하루였다.
'여정길'의 크럭스를 통과할 때 미세한 세로 크랙에서 인사이드 엣징으로 발을 딛고 일어서는 스테밍 동작이 무척 어려웠다. 작은 손홀드를 잡을 때 대각선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숙여주는 동작은 여러모로 효과적이었다. '여정길' 상단부에서는 크랙 밖으로 양 발을 벌려서 딛고 핸드 다운과 양 손을 밀고 당기는 동작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스텝을 전진하는 시퀀스(sequence)를 연습할 수 있었다. 공식처럼 이어지는 일련의 동작들이 매우 안정적이어서 오르는 재미가 있었다. 레이백 자세의 원리도 결국엔 손은 당기고 발은 밀어줌으로써 "밀당"의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니 기범씨의 설명대로 실전에서 사용되는 거의 모든 등반 동작들이 포괄적으로는 "짝힘"의 범주에 포함되는 듯하다.
'청맥길'에서의 슬랩과 페이스 등반과 '학교길'에서 손가락 힘을 써야 하는 우향 사선 밴드의 트레버스 자세도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오른 '꾸러기들의 합창'에서는 체력이 소진되어 힘들었지만 자연암벽에서 처음으로 힐훅을 걸어보았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었다. 거의 하루종일 구름낀 하늘 아래 남벽의 골바람까지 불어서 쌀쌀한 날씨였지만, 등반의 열기 덕택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집중할 수 있었다. 등반이 끝나갈 무렵에 나타난 밝은 햇살처럼 우리들의 등반 실력도 언젠가는 진일보하여 고난도 루트에 당당히 도전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을 희망하는 바이다.
▲ '여정길' 크럭스 위를 통과하는 중이다. 스테밍 자세가 아직은 어정쩡하다.
▲ '짬뽕길'에서 먼저 몸을 풀기로 한다.
▲ 쉬운 곳과 어려운 루트를 찾아서 갈 수 있는 '짬뽕길'이라지만... 그리 쉬운 루트로 느껴지지 않았다.
▲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여정길'에서의 등반 연습을 위한 줄을 걸기 위해 기범씨가 오르고 동혁씨는 빌레이 중...
▲ 기범씨가 공식처럼 이어지는 반복 동작으로 '여정길' 상단부를 등반 중이다.
▲ 잔뜩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인수봉 남벽은 클라이머들로 붐볐다.
'어린이날'이 아니라 '클라이머의 날'인줄...ㅎㅎ.
▲ 기범씨의 지도 하에 레이백 자세를 시도 중인데...
손으로 잡아 당길 때 발로 버텨주는 것과 발 사이의 간격이 중요하다고...
▲ 두 번째 오를 때의 '여정길'은 낯설었던 처음과 달리 조금은 더 나아진 느낌이었다.
바로 옆에서 동혁씨가 짬뽕길을 등반 중이다.
▲ 레이백 자세에서도 인사이드 엣징과 발에 좀 더 신경을 써보고...
▲ '여정길' 상단부에서 스테밍 자세로 오르는 반복적인 시퀀스가 안정적이었다.
내가 하강 중인 '여정길' 좌측에서 기범씨가 '청맥길'을 오르고 있다.
▲ '청맥길' 첫 피치는 슬랩과 직상 크랙, 핑거 크랙, 페이스 등의 다양한 형태의 등반선이 공존한다.
▲ '학교길' 초반부의 우향 사선 밴드를 다이내믹한 동작으로 등반 중인 기범씨...
▲ 인내심을 갖고 피아노 치듯 트래버스 해야하는 사선 밴드에서는 손가락 힘이 필요하다.
▲ '학교길'은 사선 밴드 이후에도 밸런스를 요하는 만만치 않은 동작이 기다리고 있다.
▲ 우리가 마지막으로 오른 '꾸러기들의 합창'을 등반할 때는 처음으로 맑은 하늘과 햇빛이 나타났다.
▲ 자연암벽에서 처음으로 힐훅을 걸어보았던 '꾸러기들의 합창' 루트이다.
마지막으로 자일과 탑앵커에 걸린 퀵드로를 회수하기 위해 기범씨가 어프로치화를 신고 등반 중이다.
▲ 등반을 마치고 하산하면서 하루재를 지나는 중에 활짝 핀 연분홍빛 수달래와 맑게 개인 파란 하늘이 반겨주었다.
우리의 등반 실력도 언젠가는 진일보 하여 꽃길을 걷듯 오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암빙벽등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수봉 서면 '천방지축' - 2020년 5월 21일 (0) | 2020.05.21 |
---|---|
당고개 인공암벽 - 2020년 5월 10일 (0) | 2020.05.10 |
불곡산 독립봉 암장 - 2020년 5월 2일 (0) | 2020.05.02 |
선인봉 '표범-박쥐' (2020년 4월 30일, 부처님 오신 날) (0) | 2020.05.01 |
인수봉 심우길과 벗길 (2020년 4월 25일) (0) | 2020.04.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