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폭설과 함께한 설날 귀향길

빌레이 2009. 5. 28. 16:58

지난 토요일 아침에 귀성할 계획이었다. 헌데 금요일부터 호남지방엔 눈이 많이 내린 모양이다.

나주 고향집의 어머니와 광주에 사는 누나와 남동생 모두 전화로 나의 귀향길을 만류한다.

무섭게 눈이 내려 길이 아주 위험하다는 것이다. 일단 대답은 안 내려간다고 한다.

하지만 장남으로서 귀향을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오전 10시 경에 집을 나선다.

 

서해안의 대설과 고속도로가 주차장처럼 변했다는 소식에 곤지암까지 국도로 가는데 도로는 눈길이다.

곤지암 나들목에서 중부고속도로를 탔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호법 갈림길부터는 아예 주차장이다.

다시 양지에서 빠져 17번 국도를 타고 진천까지 갈 생각이었지만 일죽 부근부터 국도도 움직이지 않는다.

출발한지 다섯시간이 지났는데도 경기도를 못 벗어나니 차를 집으로 돌리고 말았다.

 

이번 설 연휴는 할 수 없이 서울에서 보낼 생각이었지만 나와 아내 모두 마음이 편치 못하다.

귀향을 포기한다는 전갈에 어머니와 처가집 모두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 하신다.

말씀 상으론 마음 편하게 먹고 오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 쪽의 눈은 소강 상태라는 소식을 덧붙이신다.

경찰인 동생 녀석도 근무 시간이 겹쳐서 남자 없이 차례를 지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도 마음에 걸린다.

 

일요일 저녁까지 몸 편하게 지냈지만 마음은 무거웠다. 숙제 안 하고 놀던 어릴적 마음처럼.

저녁 아홉시경에 거의 모든 고속도로의 정체 상태가 해소되었다는 교통정보를 접했다.

별안간 출발을 결심하고 번개 같이 고향집을 향한다. 정읍 휴게소까지는 일사천리로 막힘 없다.

휴게소를 나서고 십여분 후 엄청난 폭설을 만났다. 앞차들이 미끄러지거나 주행을 포기한다.

 

다행히 내 차는 사륜이라서 안정감 있게 전진한다. 앞차인 미니밴이 미끄러져 회전하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십여미터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는 난생 처음이다. 눈이 어찌나 많이 내리던지 어지러울 지경이다.

호남터널을 지나니 제설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어 한층 사정은 나아졌다.

그렇게 어려운 폭설 구간과 광주 외곽의 안개지대를 뚫고 꿈처럼 나주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두시 반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차례드리니 어머니 표정이 싱글벙글이시다. 우리가 도착하니 비로소 명절 쇠는 것 같다고 하신다.

오전에 눈길을 걸어 사촌들과 성묘도 다녀오니 내 마음도 편해진다.

광주의 처가로 향하는 길에서 바라본 무등산은 지금까지 본 무등산 중에서 최고였다.

카메라를 챙겨가지 못한 것이 정말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무등산 전체가 하얀 설산의 풍모를 유감없이 발하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에 맑은 하늘을 배경삼아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무등산은 사진에서 본 킬리만자로를 닮았다.

처가에서는 또 큰사위로서 대단한 환대를 받았다. 예기치 못한 귀향에 여러 가지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오늘 아침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도 막힘이 없었다. 

올해 설날 연휴는 폭설 때문에 두 배로 기뻤던 기억으로 자리매김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