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그리스 아테네 여행기

빌레이 2014. 7. 16. 10:54

우리가 기원전으로 부르는 시대는 단순히 예수 탄생 이전의 시기를 뜻한다. 영어로는 기원전과 서기를 각각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로 표기하고, 라틴어인 'anno domini'는 영어로 'since God' 정도로 번역할 수 있으니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그런데 역사 시간에 기원전 몇 년 하면 아주 아득한 옛날로 기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기'와 '기원전'이란 한글에서 예수의 흔적이 연상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우리 나라의 역사적 유물과 유적들 중에 2천 년 넘게 보존된 것이 얼마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구석기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는 모두 기원전의 역사이다. 내가 로마에 처음 갔을 때 기원전 유물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사실에 놀랐던 건 우리 나라에서는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서양 철학의 출발점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다. 문학의 기원은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를 쓴 호메로스이고,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은 히포크라테스, 수학자의 기원은 피타고라스와 유클리드에게서 찾는다. 이들 모두는 고대 그리스의 위인들일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우리들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이 중요한 이유를 나는 여기에서 찾고 싶다. 2천 5백여 년이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곁에 머물면서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지식이나 사상, 문화의 원천이 바로 고대 그리스 문명인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아테네는 언젠가는 꼭 여행하고 싶은 도시 중 항상 첫 번째로 손꼽는 곳이었다.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들 중에서 파리, 런던, 로마 등은 여러 차례 방문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테네에 갈 기회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아테네는 기원전 시대의 고대 그리스 문명이 가장 찬란하게 꽃피던 중심지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피타고라스, 유클리드, 히포크라테스 등과 같은 쟁쟁한 학자들이 연구활동을 펼쳤던 곳이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 중에 속하지는 않지만 오늘날 우리들의 일상 생활 속에 깊숙히 뿌리내린 서양 문명의 기원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뒤를 잇는 고대 그리스 문명이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인류 문명은 에게 해의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한 기원전 3천 년 경의 미노아 문명을 탄생시킨다. 미노아 문명은 그리스 본토에서 미케네 문명으로 발전하고, 기원전 5세기를 전후하여 형성된 도시국가들이 연합하여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후 고대 민주정치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이 황금기의 중심에 도시국가 아테네가 있었던 것이다.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치 체제는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그리스가 로마제국의 속국이 되고, 유럽이 중세 암흑기와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서 나폴레옹 이후의 시민혁명으로 민중 기반의 권력이 다시 태동할 때까지 기나긴 터널 속에 갇혀 있었다. 근대 민주주의의 시발점인 프랑스 대혁명이 서기 18세기 후반의 사건이고, 현재 세계적으로 우리 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가 민주주의 정치 체제이기 때문에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2천 5백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인류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다가 부활한 셈이다.

 

아테네에 가기 전에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 유산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공부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았다. 여행 안내서도 제대로 펼칠 여유가 없었으나 오래 전부터 아테네에 대한 이미지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뇌리에 남아 있기에 별 걱정은 하지 않았다.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었던 때의 감동을 되살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 자유롭게 토론했던 흔적,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인 라파엘이 그린 상상화 '아테네 학당'의 학문적 분위기, 고대 아고라에서 시민들이 활발하게 토론하던 직접 민주정치 현장의 생동감, 시민들의 교육과 수준 높은 문화 체육 생활을 보장했던 원형 극장과 올림픽 경기장 등의 유적, 제우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이 살아 숨쉬는 현장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램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레타 섬에서 열린 학회에 참석하기 위한 출장 길이었다. 밤 늦은 시각에 아테네 공항에 도착하여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다음 날 크레타 섬으로 가는 그리스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일정이었다.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주변을 산책해보았다. 올리브 농장과 민둥산이 눈에 띠고 도로 표지판에 보이는 그리스 알파벳이 반가웠다. 수학 기호로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수학자인 내게는 특별히 익숙해서 좋았다. 일상 생활 속의 글자 속에 수학 기호가 섞여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크레타 섬에서 4박 5일 간의 출장 일정을 마치고 다시 아테네로 귀환하여 개인 일정으로 자유롭게 여행을 즐겼다. 보고 싶은 아테네를 경유하는데 관광을 하지 않고 귀국한다는 건 아무리 바빠도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동행한 대학원 제자들에게도 교육적으로 의미 있는 관광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오후 늦게 도착한 아테네에서 첫 번째 둘러본 곳은 해발 273 미터 높이의 리카비토스 언덕이다. 언덕이라기 보다는 산에 가까운 리카비토스는 숙소에서 가까이 보이는 곳으로 한 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정상이다. 올라가는 중간에 보이는 아테네 시가지의 전경과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야경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이다. 정상에는 그리스정교회의 아담한 채플이 있다. 여름날 밤의 낙조와 야경을 즐기기 위한 관광객들로 넓지 않은 정상의 전망대가 북적인다. 그리스 국기 하강식을 갖는 군인들의 모습도 이채롭다. 정상 언저리에 자리잡은 레스토랑에서 생맥주 한 잔을 마시며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바람을 느끼는 것으로 아테네에서의 첫날을 멋지게 시작한다. 황금빛 간접 조명을 받은 파르테논 신전의 모습이 멋지지만 야경 촬영 준비를 하지 않은 탓에 좋은 그림을 카메라에 담지는 못한다.

 

다음 날은 아크로폴리스 관광에 나선다. 아크로폴리스 지하철 역을 나서는 출구부터 멋들어진 조각 작품이 우리를 맞아준다. 역에서 가까운 아크로폴리스 매표소를 지나 잠시 오르면 디오니소스 극장이 나타난다. 기원전 4세기에 개축되었다는 원형이 많이 파괴되어 있으나 극장의 전체적인 형태는 여전하다. 조금 더 올라가니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이 나온다. BC 160~161년에 건축된 이 음악당에서는 지금도 주말마다 공연이 열린다. 무대 뒤에 유네스의 스토아 흔적이 보호막처럼 가로막고 있는 극장의 모습은 위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 아찔할 정도로 깊고 웅장하다. 유네스의 스토아는 관객들의 편의를 위해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과 디오니소스 극장까지 연결된 복도였다고 한다. 음악당 바로 위에는 파르테논 신전 입구가 있다.

 

깍아지른 절벽에 요새 같은 성벽을 쌓아 만든 직벽 위의 정상에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지금은 앙상한 기둥들만 남아 있고 복원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지만 웅장한 풍모를 전혀 잃지 않고 있다. 파르테논은 아테네의 수호 여신인 아테나를 위해 BC 447~438년에 지어진 도리아 양식의 건축물이라고 한다. 아크로폴리스의 입구인 불레의 문을 지나면 우측에 아담한 아테나 니케 신전이 서있다. 니케 신전을 지나서 양쪽으로 기둥들이 도열해 있는 프로필레아를 통과하면 곧바로 파르테논 신전이 눈앞을 가로막는다. 신전을 우측으로 돌면서 그 웅장한 자태를 감상해본다. 그리스 국기가 휘날리는 전망대에서 지난 밤에 올랐던 리카비토스 언덕과 시내를 조망하는 눈이 시원해진다.

 

전망대를 뒤로하고 파르테논을 좌측에 두고 돌아나오는 길에 에렉티온 신전이 있다. 여섯 명의 소녀 상이 기둥을 대신하여 주랑을 받치고 있는 테라스의 아름다움은 가히 일품이다. 파르테논 신전을 돌아본 후의 감동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정면에서 건너편에 많은 사람들이 올라서있는 바위 언덕이 눈에 들어온다. 고대 아테네에서 의회와 재판이 열렸다는 아레오파고스 언덕이다. 몇 분 후에 모자가 벗겨질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대는 이 언덕 위에 올라서서 파르테논 신전을 다시 바라다본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은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논쟁을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언덕을 내려와 고대 아고라 터를 둘러본다. 대부분이 폐허 상태이지만 스토아 하나는 완벽히 복원되어 있다.

 

스토아의 기다란 복도에서 잠시 쉬어간다. 기둥에 기댄 채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고대 아테네의 학자들과 시민들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듯한 느낌이다. 라파엘의 그림 '아테네 학당'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곳이다. 자신의 욕망을 억제함으로써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한 금욕주의자들이 주로 스토아에 모여 토론을 벌였다고 해서 이들을 스토아 학파로 부른다고 한다. 점심 이후에는 아크로폴리스의 포토 포인트로 가장 좋다는 필리파포스 언덕과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제우스 신전, 근대올림픽 경기장 등을 둘러본다. 로마 집정관이었던 필리파포스의 송덕비가 있는 언덕 정상으로 가는 길 중간에서 소크라테스의 감옥에 들러 위대한 철학자의 마지막 순간을 회상해 본다. 

 

▲ 제우스 신전. 그리스 최대 규모의 신전으로 완성되는 데 약 650년이 걸렸다고 한다.

지금은 코린트식 기둥 15개만 남아 있고, 그중 한 개는 강풍에 쓰러졌다.

▲ 아크로폴리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제우스 신전(중앙)과 근대 올림픽 경기장(좌측 상단).

▲ 리카비토스 언덕 정상의 국기 하강식.

▲ 리카비토스 언덕 정상부에 자리한 레스토랑.

▲ 리카비토스 언덕에서 바라본 아크로폴리스.

▲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본 리카비토스 언덕.

▲ 디오니소스 극장.

▲ 지금도 주말에 공연이 펼쳐지는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 

▲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있는 미니어처. 아크로폴리스의 본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 에렉티온 신전.

▲ 파르테논 신전의 정문격인 프로필레아.

▲ 고대 아고라 터.

▲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고대 아고라.

▲ 고대에 재판과 의회가 열렸다는 아레오파고스 언덕. 지금도 그리스에서 아레오파고스는 대법원을 의미한다고.

▲ 원형이 복원된 스토아의 붉은 지붕이 보인다.

▲ 스토아의 기둥에 기대어 토론을 벌이고 싶어진다.

▲ 필리파포스 언덕 정상으로 향하는 길.

▲ 필리파포스 언덕에 있는 소크라테스의 감옥.

▲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입구.

▲ 신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내부에서는 넓은 창을 통해 실제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이 잘 보인다.   

▲ 1895년 제1회 올림픽이 열렸던 근대 올림픽 경기장. 지금도 각종 체육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 신타그마 광장에서 보이는 국회의사당.

▲ 모나스티라키역 주변 광장.

▲ 아테네 학술원.

▲ 아테네 대학교 본관.

▲ 국립도서관.

▲ 파르테논 신전 앞의 전망대에서 인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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