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기

크레타 섬에 다녀온 소회

빌레이 2014. 7. 8. 23:25

크레타 섬에 대한 내 기억의 편린은 어릴 때 책에서 읽었던 거짓말쟁이의 역설(paradox)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느 크레타 섬 사람이 "크레타 섬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다"라고 말했다. 말을 한 사람이 크레타 섬 사람이니 그가 한 말은 거짓말이다. 그러면 크레타 섬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그래서 그가 한 말은 참이 되어 그가 한 말 그대로 크레타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이다. 이 것은 모순이다. 즉, 참과 거짓을 판명할 수 없으니 이 문장은 수학적인 명제가 아니다. 이러한 것을 논리학에서는 역설이라 부른다. 거짓말쟁이의 역설은 생각할 때마다 헷갈리고 신기해서 오래 전부터 크레타란 지명과 함께 나의 뇌리에 남아있었다.

 

성경 읽기에 관심이 높아진 후로 크레타 섬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사도 바울이 그의 영적 제자인 디도에게 쓴 편지인 신약 성경 <디도서>에 어떤 그레데인 선지자가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라고 말했다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그레데가 바로 크레타 섬이다. 최근에 편찬된 <우리말 성경>에는 옛날식 표현인 그레데를 쓰지 않고 크레타로 표기되어 있다. 신약 성경 속에는 현재 그리스와 에게 해 주변 지역의 지명이 책 제목으로 사용된 것이 몇 개 있다. 대표적으로 <고린도전서>와 <고린도후서>에 나오는 고린도는 아테네 근교 도시인 코린토스(Korinthos)이고, <데살로니가전·후서>의 데살로니가는 그리스 제2의 도시인 데살로니키(Thessaloniki)를 가리킨다. 사도 바울의 활동 무대가 예루살렘과 로마 사이에 걸쳐있는 터키와 그리스 주변 지역이었기 때문에 신약 성경에 이 지역의 명칭이 자주 등장하는 것 같다.

 

거짓말쟁이의 역설과 신약 성경 속에 등장했다고 해서 크레타 섬에 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건 아니다. 지난 겨울에 다시 읽었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내 마음 속에 크레타 섬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했다. 그 때에 써 둔 독후감의 말미에도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그리스를 여행 할 기회가 온다면 <그리스인 조르바> 때문에 니코스 카잔차키스 공항을 통해 꼭 크레타 섬에 찾아갈 것이다."라고 적어놓았다. 생각보다 크레타 섬에 갈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때마침 내가 연구하는 분야의 학술회의가 크레타 섬의 휴양지에서 개최되었고, 논문 발표 기회가 주어져서 대학원 제자 두 명과 함께 크레타에 입성할 수 있었다.

 

인천 공항에서 모스크바를 경유해 아테네에 도착하여 1박을 한 후, 다음날 그리스 국내선 비행기로 니코스 카잔차키스 공항을 통해 크레타 섬에 들어가는 긴 여정이었다. 크레타의 중심 도시인 헤라클리온 근처의 바닷가에 자리한 공항은 아담했다. 수하물을 찾기 위해 대기하는 중에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 홍보물이 보였다. 카잔차키스의 흔적을 제일 먼저 만나는 순간이어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인구가 50만 명이 조금 넘는 크레타 섬을 찾는 관광객 수는 년간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 명성 만큼이나 공항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단순한 일자 모양의 공항 건물 밖에는 버스터미널 또한 공항 입구를 마주하고 나란히 일자로 서 있었다. 이국적인 간판의 글씨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어느 중소도시의 풍경을 닮은 듯한 포근함이 느껴졌다.

 

택시 정류장으로 향하던 중 훤칠하게 키가 큰 여자 운전사가 다가와 택시를 탈 거냐고 묻는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면 한 대씩 택시가 다가와 손님을 실어나르는 도시적인 시스템이 아니다보니 잠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큰 키 만큼이나 시원스런 인상과 말투를 보이는 택시 운전사의 모습이 믿음직스러워 그 택시를 타고 30여 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택시비 40유로를 지불하면서 건강해보이는 택시 운전사의 인상이 조르바의 딸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학회 장소인 크노소스 로얄 호텔은 에게 해의 에메랄드 빛 물결이 넘실거리는 해안에 위치한 고급 리조트다. 우리네 콘도미니엄 같은 시스템이지만 높지 않은 지중해풍의 예쁜 집들이 하나의 빌리지를 이루고 있는 천혜의 휴양지라는 느낌을 받았다.

 

숙소에 여장을 푼 다음날 새벽에 일찍 일어나 주변을 산책하였다. 에게 해의 푸른 바다를 일깨우며 불어오는 해풍이 신선했다. 여름 휴가를 즐기기에 부족함 없이 잘 단장된 리조트의 정갈함도 좋았지만, 바다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받아 빛나는 해안 절벽이 더욱 아름다웠다. 그 절벽에서 자유롭게 클라이밍을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딥워터 솔로클라이밍(Deep Water Solo Climbing)의 자유로운 몸짓을 이렇게 아름다운 에게 해의 바닷물 위에서 즐길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란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난이도 높은 해벽에 도전하다가 밑바닥까지 훤히 보이는 투명한 바닷물 속으로 부상의 걱정 없이 추락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하는 클라이머들이 부러웠던 유투브의 동영상이 떠올랐다. 제자들과 함께 해안 동굴 주변에서 해벽 볼더링의 흉내라도 내보았던 시도는 참 잘한 일이었다. 두고두고 즐거운 추억거리로 남을 것 같다.  

  

학회장에서는 벨기에 루벤대학에서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부터 서로 잘 알고 지내는 프리닐 교수와 반갑게 해후한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리조트의 그늘진 발코니에 앉아 조용히 눈 감고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느껴보는 맛이 정말 특별했다. 오감을 일깨우며 내 주위를 스쳐가는 바람결의 그 안온한 느낌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오묘한 것이었다. 나의 짧은 지식으로는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의 바람이 지중해성 기후의 특징일 거라는 초라한 상상만을 해볼 뿐이다. 크레타 섬에서 한 가지를 가져올 수 있다면 이 바람을 가져오고 싶었다. 학술회의 일정을 마치고 참석자 모두가 헤라클리온 시내에 있는 고고학 박물관을 견학할 기회를 가졌다. 보통 3천 년에서 7천 년까지 오래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놀라웠다. 신화로 존재하던 크노소스 궁전이 실제 역사적 사실임을 밝힌 고고학자들의 숨은 노력도 대단한 것이었다.

 

우리는 크레타 섬에서 4박 5일 간 머물렀다. 그것도 대부분의 시간을 학술회의장에서 보내야 했고 리조트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크레타를 알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인류의 문명이 크레타 섬으로 전해져서 오늘날 유럽 문명의 기원이 된 미노아 문명을 꽃피웠던 크레타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갔었다. 진한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수박 겉 핥기식으로 크레타 섬에 다녀왔다는 일말의 후회가 있지만 상황이 허락치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크레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앞으로도 자주 다녀올만한 가치가 무궁무진하다는 사실 만큼은 깊이 인식한 여행이었다. 유럽(Europe)이란 말의 기원이 된 에우로파(Europa) 공주의 이야기부터 시작된 크레타 섬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다시 크레타 섬에 방문해서 사도 바울과 대문호 카잔차키스의 숨결까지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소망하는 바이다.

                

▲ 지중해의 푸른 빛을 닮은 의자와 테이블이 맘에 들어 함께 간 대학원 제자와 함께 앉아서 포즈를 취해본다.  

 

▲ 헤라클리온 공항의 수하물 찾는 곳에 걸려 있던 카잔차키스 박물관 홍보물.

 

 

▲ 남국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리조트의 새벽을 느껴본다.

 

▲ 에게 해에서 맞이한 일출 장면. 한낮에는 이곳 비치에서 수영을 즐겼다. 물고기들의 노는 모습이 잘 보인다. 

 

▲ 새벽의 모래사장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뒤에서 잡아보았다. 아마도 이슬람교 신도인 듯하다.

 

▲ 지중해풍의 정갈한 숙소에서 보낸 4박 5일 간의 시간은 꿈만 같았다.

 

▲ 현대식 리조트 내에는 오래된 유적을 그대로 보존해 놓은 곳도 있다.

 

▲ 떠오르는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는 해안 절벽이 특별히 아름다웠다.

 

▲ 해변을 따라서 리조트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크레타 섬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여름 휴양지라고 한다.

 

▲ 에게 해의 푸른 물결이 내려다보이는 낮은 언덕에 리조트가 자리해 있다.

 

▲ 해안 절벽에서 솔로 클라이밍 흉내를 내볼 수 있는 곳을 탐색하다가 어색한 포즈로 한 컷.

 

▲ 고고학 박물관에는 보통 4천 년 전의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 미노타우로스의 슬픈 전설로 유명한 크노소스 궁전을 미니어쳐로 재현해 놓았다. 기원전 1900년 경에 세워진 크노소스 궁전은 현존 최고. 

 

▲ 체육 활동을 중시했던 고대 크레타인의 조각 작품이 아름답다.

 

▲ 수천 년 된 유물들이 정교하게 복원되어 있는 것이 놀랍다.

 

▲ 기원전 15세기 경에 이미 문자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려주는 유물. 아직 해독은 못 하고 있다. 해독된 문자는 기원전 8세기 이후의 문자. 

 

▲ 항아리를 사용한 옹관묘의 흔적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다.

 

▲ 황금과 다른 금속의 차이가 확연하다. 시간 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생각을 해본다.

 

▲ 고대 시대 사람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현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

 

▲ 크레타 문명의 유적은 화려한 채색 벽화로 유명하다.

 

▲ 조각 작품들의 아름다움은 유럽 문명의 특징인 듯하다. 머리가 없는 조각품들은 우상으로 생각한 기독교 신앙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 돌아오는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에 카잔차키스 공항을 담아보았다. 다음에 꼭 크레타 섬에 다시 올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