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중학 동창회를 겸한 선운산 산행 - 2013년 11월 9일

빌레이 2013. 11. 10. 13:47

선운산에서 중학교 동창생들의 모임이 있었다. 서울에서 15명이 내려가고 광주 전남북에서 7명, 영남 지방에서 3명 등 어느 때보다 많은 친구들이 선운산에서 모였다. 중국에서 잠시 귀국한 해식이의 차에 동승하여 새벽 5시 20분경에 서울을 떠나 9시 전에 선운사 입구의 드넓은 주차장에 도착한다. 하나 둘 다른 친구들이 도착하여 얘기 꽃을 피운다. 친구들 중 일부는 주차장 한켠에서 아침 식사를 할 요량인 듯하다. 아무래도 아침부터 술판이 벌어질 기세다.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리다보면 산행은 물건너 갈 것 같다. 그래서 종주 산행을 하고 싶은 친구들을 따로 모아 산으로 출발해 버린다. 만류하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지만 산행 후의 뒷풀이에서 같이 즐기기로 하고 동백호텔 뒤의 경수산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경수산 입구에서 잠시 복장을 추스르고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광주에서 알아주는 산꾼인 정희를 필두로, 인천이, 승관이, 윤례, 은경이, 나, 이렇게 6명이 종주팀에 합류했다. 다른 친구들과는 낙조대에서 오후 1시에 만나기로 약속했다. 높지 않은 고도의 선운산이지만 이어지는 능선이 제법 길다. 20 킬로미터 넘게 이어서 걸을 수 있는 코스도 갖춰져 있다. 경수산 정상부의 능선부터는 우측으로 서해바다와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어 조망이 시원하다. 곳곳에 자리잡은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일품이다. 올망졸망한 바위 봉우리들이 직벽을 이루어 가파르게 패인 계곡은 요세미티 밸리의 축소판 같다. 계곡의 끝자락에 위치한 저수지들은 알프스의 호수를 연상케 한다. 참당암으로 내려서는 곳은 상사화의 푸른 줄기들이 난초처럼 바닥을 장식하고 있고, 그 위의 단풍나무 숲은 마지막 남은 핏빛 아름다움을 짜내기라도 하는 듯한 화려함으로 주위를 환히 밝히고 있다.

 

경수산, 마이재, 도솔봉을 거쳐 참당암으로 내려선 후, 다시 소리재로 올라와 만월대에서 낙조대를 오르는 철계단을 바라볼 무렵부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기다리고 있을 친구들을 생각하여 서둘러 낙조대에 오른 후 천마봉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친구들을 만난다. 비가 내리는 속에서도 포장을 치고 밥과 삶은 돼지고기 등을 나눠먹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 속에서 예전의 단풍놀이 다니던 촌부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고단한 농사일이 끝나갈 무렵 막걸리 서너 잔이 어울어진 단풍놀이는 우리네 부모 세대가 연례 행사로 즐긴 놀이문화의 익숙한 풍경이다. 이제 50을 바라보는 나이의 우리 친구들의 모습 속에 비친 그 풍경이 정겨워 나도 해남이가 권해주는 막걸리 한 잔을 달게 마신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점심 식사를 마치고 세찬 비바람 속에서 서둘러 하산한다.

 

도솔암에서 선운사를 거쳐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길은 친구들과 말동무 하며 걷기 좋은 넓은 임도이다. 비를 맞으며 광세와 그간 살아온 이런 저런 얘기 나누며 내려오니 어느새 선운사가 나타난다. 천연기념물인 동백나무숲과 휘어진 나무 기둥이 지붕을 받치고 있는 선운사 특유의 건축미를 잠시 감상하고 주차장에 다다른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 뒷풀이 장소로 이동한다. 바닷가에 자리잡은 풍천장어집에서 열린 요란스런 뒷풀이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간의 수다와 함께 무르익어 간다. 우리들 부모 세대가 서로 모여 즐겁게 노는 것으로 한 때를 보냈던 것처럼 우리 친구들도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