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모처럼 북한산 노적봉에서 한가로운 멀티피치 등반을 즐겼다. 오랜만의 북한산 나들이여서 산에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예상보다 일찍 끝난 등반 때문에 산성 주릉을 타고 대동문으로 돌아가는 하산길을 길게 잡은 것이 조금은 무리였던 듯하다. 경미한 허리 통증 탓에 오늘은 단피치 암장에서 게으른 등반을 하리라 내심 마음 먹고 있었다. 양주 불곡산의 독립봉 암장에 가기로 했었는데, 기범씨가 갑자기 인수봉에 가고 싶다고 했다. 카톡으로 가고 싶은 루트를 물어보길래 대뜸 '크로니길'이라 답했다. 그래서 갑자기 인수봉에서 가장 길다는 크로니길을 정코스로 등반하여 간만에 정상을 밟아 보는 것으로 등반 약속이 변경되었다.
주말이면 클라이머들로 붐비는 인수봉 바윗길이기에 크로니길 같이 구불구불하고 긴 루트를 정코스로 완등하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어려운 일을 오늘 해내고야 말았다. 인수봉 정상에 선 순간의 뿌듯함은 불어오는 산바람만큼이나 상쾌한 것이었다. 기범씨가 부상에서 회복 중인 몸상태로 선등을 섰고, 은숙씨, 은경이 순서로 따라서 올랐다. 나는 라스트를 맡아서 다른 악우들보다는 상대적으로 힘들이지 않고 즐기면서 등반할 수 있었다. 3년 전에 처음으로 크로니길 8피치까지 올랐을 때보다 한결 더 여유롭고 만족스러운 동작으로 등반했다는 게 무엇보다 기뻤다. 등반 후반부에는 누적된 피로감이 몰려오기는 했으나 정상에 선 순간의 만족감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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