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폭염 속의 거인암장 - 2021년 7월 31일(토)

빌레이 2021. 8. 1. 09:28

7월의 마지막 날이다. 밤에도 기온이 썹씨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열흘 이상 지속되고 있다. 이른바 초열대야 현상이 계속되는 시절에 클라이머들이 생각할 수 있는 등반지는 비슷한가 보다. 거인암장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을 본 하루였다. 대규모 산악회들이 피서 등반지로 접근성 좋은 거인암장을 택한 까닭이다.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도착했는데도 벌써부터 1암장과 3암장은 초만원 상태였다. 우리는 그나마 한적한 2암장에서 유일하게 완등하지 못한 'JK(5.10d)' 루트를 프로젝트 삼아 집중해서 끝내보자는 단순한 계획을 세웠다.

 

오전엔 2암장이 한산해서 그런대로 등반에 집중할 수 있었다. 먼저 '성주'와 '성봉'에서 간단히 몸을 풀고, 'JK'에 붙어서 내게 맞는 홀드와 동작을 찾는 연습을 했다. 두 번째 볼트에서 세 번째 볼트를 넘어서는 크럭스 구간이 좀처럼 해결되지 않았다. 서너 차례의 연습 후에 톱로핑 방식으로는 가까스로 완등했으나,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리드 등반 시에 셋째 볼트에 클립하는 동작이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그래도 오후엔 완등할 수 있으리란 예감을 품고 우리팀의 퀵드로는 남겨 놓은 채 로프를 회수했다. 하지만 점심 때부터 2암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다른 팀들이 'JK' 루트를 점령하는 바람에 우리팀이 다시 붙을 수 있는 기회는 오지 않았다. 어려워서 재미 있는 루트인 'JK'를 선선해진 초가을 즈음에 다시 도전하면 완등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안고 왔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 오전엔 2암장이 한산했다. 그늘진 우측 벽에서만 놀았다. 마스크 대용으로 여름용 버프를 착용했다.
▲ 먼저 2암장 맨 우측의 '성주(5.10a)'를 올랐다.
▲ '성주'의 톱앵커에 자일을 걸어 놓고, 톱앵커가 같은 좌측의 '성봉(5.10c)' 루트는 톱로핑으로 올랐다.
▲ 2암장에서 유일하게 완등하지 못한 'JK(5.10d)' 루트를 완등하는 것이 오늘의 목표다.
▲ 지난 번 올랐을 때 동작을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크럭스인 둘째에서 셋째 볼트를 넘어서는 구간을 해결하지 못했다.
▲ 톱로핑 자일을 설치하고 'JK' 루트에서 서너 차례 연습한 후에 가까스로 쉬지 않고 끝까지 오르는 데는 성공했다.
▲ 오후엔 'JK' 루트가 갑자기 인기 있는 루트로 변해서 그늘진 1암장으로 이동하여 '기봉(5.10a)'부터 올랐다. '기봉'은 등반 거리가 30미터에 이르는 제일 긴 루트로 더운 날에는 지구력과 인내심을 시험하는 곳이다. 올라갈수록 바람이 간간히 불어주어 즐겁게 완등할 수 있었다. 
▲ '오리온(5.10b)' 루트는 등반거리 28미터에 오버행 구간이 두 차례 버티고 있어서 '기봉'보다 더욱 재밌게 올랐다.
▲ 1암장이 그늘진 시간에 '오리온' 루트를 오르는 것으로 오늘의 등반을 마무리 지었다. 별로 좋지 않은 여건 속의 거인암장에서 그나마 땡볕과 사람들을 피해다니며 등반할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