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외설악 만경대 - 2006년 9월 2일

빌레이 2009. 5. 29. 14:04



설악에 간다는 건 아직도 마음 버거운 일이다.

속초까지의 거리와 산행 시간, 험준한 등산로는 설악산 산행 때마다 부담감으로 다가온다.

캐빈이 직장 사정으로 마지막 순간에야 참가를 결정했고,

가우스도 금요일 밤 9시가 되어서야 일을 마칠 수 있었다.

파사 형의 사정도 만만치 않았지만, 우리 셋은 작년 가을처럼 설악을 향할 수 있었다.

 

새벽 4시 반 정도의 시각에 설악동을 출발하여 천불동을 향했다.

귀면암 근처에서 새벽을 맞이하였다. 골짜기에서 올려다본 설악의 하늘은 신선했다.

동해로 떠오르는 해를 등지고 서있는 능선의 하늘금은 참으로 선명했다.

설악에 여러 번 왔지만 좀처럼 만나기 힘든 맑은 날씨 때문에 산행의 예감은 좋았다.

 

예상 보다 이른 시각에 양폭산장에 도착했다.

이번 산행의 미션은 화채능선 오르는 길을 찾는 것이다.

등산 지도에도 정확히 표현되어 있지 않아서 파사형이 주위 산꾼들에게 물어보았다.

시원한 대답을 해주는 이는 없었고,

구조대원도 산행금지 구역이니 가지 마라고 하면서 길을 알려주지 않았다.

 

모험심 가득한 마음으로 우리는 새 길을 찾았으나 원하는 등산로는 나오지 않았다.

방향만을 확인한채 계곡 길을 개척하면서 나아갔다.

설악산에서 등산로가 아닌 곳을 간다는 건 참으로 위험한 일이다.

우리 세 사람은 서로 의견을 교환해가며 가파른 바윗길을 올라갔다.

설악산 경험이 많은 파사 형은 신중하게 길을 찾자는 신중론자였고,

캐빈과 나는 조금은 무모한 도전자 같은 자세로 길을 찾아 나가는 형국이었다.

 

불수도북에서 익힌 리지 실력이 설악산 바윗길을 개척하는 데에 큰 힘이 되었다.

사람의 눈을 피해서 자란다는 금강초롱을 본 것은 힘겨운 산행 중의 큰 보상이었다.

작년에는 보지 못했던 들꽃이다. 이제 에델바이스를 보는 것이 새로운 숙제가 되었다.

능선길이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불안감 속에서 길이 없는 직사면을 오르던

고생 끝에 드디어 능선 길을 찾게 되었다.

이 순간의 기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능선길에서 바라다본 풍광은 대단했다. 멀리 동해 바다와 울산바위가 보였다.

대청, 중청, 소청의 봉우리들이 선명했으며, 신선대에서 1275봉을 거쳐 나한봉에 이르는 

공룡 능선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찬란하게 빛나는 바위 군상들과 깍아지른 절벽, 그 사이를 흐르는 계곡과 폭포...

활혼한 광경에 넋을 잃은 우리 셋은 사진을 찍어대느라 여념이 없었다.

 

잠시 흥분을 가라 앉히고 우리는 끼니를 해결하였다.

준비해간 코펠과 버너로 라면과 햇반을 끓여 먹었다.

최고의 풍광 한 가운데서 먹는 그 맛은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 모를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한가하게 쉬고 있는데 한 사람의 등산객이 대청 쪽에서 내려오다 우리와 마주쳤다.

참 반가웠다. 그 분이나 우리나 이곳에서 사람을 만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서울에서 오신 그 사람은 설악산에 대해선 베테랑이었다.

호젓한 산행을 즐기고 싶어서 이 코스를 즐긴다고 하셨다.

그 분의 설명 때문에 설악산 지리가 확실해졌다. 우리가 오른 능선길은 화채능선길이 아니었다.

설악산에서 가장 조망이 좋다는 망경대였다. 화채능선의 곁가지에 해당한 곳이다.

망경대에서 최고의 설악산 해설가를 만난 셈이다.

 

그 분과 같이 사진도 찍고 설명도 들으면서 양폭산장 쪽으로 다시 하산했다.

등산로를 정확히 알고 싶은 욕구 때문이었다. 하산길은 낙석 때문에 위험한 길이었다.

등산로는 확실했지만 초보자를 동행하기에는 무리가 가는 어려운 길이었다.

양폭산장 앞의 화장실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길이 만경대 오르는 곳이었다.

물론 출입이 금지된 등산로이다. 조금은 허탈했지만 그 길을 알았다는 것이 좋았다.

 

우리는 길을 잃어서 금지된 곳에 들어간 꼴이니 규정 위반을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 억지가 되는 것일까?

이건 지나친 자기 합리화이니 운 좋게 걸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삼아야 한다.

천불동 하산 길은 항상 지루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피곤함은 느낄 수 없었다.

 

외설악 한가운데 서서 경이로운 풍광을 최고의 해설가와 함께

여유있게 즐길 수 있었던 이번 산행이 꿈만 같았다.

길을 찾아 헤맨 불안감도 있었지만 이 마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금강초롱과 망경대에서 만난 등산객도 꼭 우리에게 주신 선물 같이 느껴진다.

여기에서 느낀 진한 감동은 설악이 아닌 곳에서는 진정 느끼기 힘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선대 암벽을 오르던 산꾼들은 정녕 인수봉을 오르던 이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강한 야성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처럼... 설악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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