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트레킹

등산을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 수락산과 국사봉 산행(9/24)

빌레이 2011. 9. 25. 02:36

발목 통증보다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통이 더 심해서 잠이 깼다. 진통제를 먹고 생각해보니 기분이 괜찮다. 오랜만에 다리 뻐근한 산행을 즐겼다는 만족감이 느껴져 좋다. 발목이 부어 올랐다면 걱정이 심했을텐데 근육통 정도는 자연스런 것이란 생각에 오히려 마음 편하다. 지난 주말의 조심스러웠던 산행보다는 진일보한 것 같다. 용대, 은경, 복심이가 함께 걸었다. 복심이는 참 오래 간만에 본다. 그래도 낯설지 않은 건 친구이기 때문이다.

 

당고개역에서 출발하여 학림사로 향한다. 주등산로 옆의 능선 오솔길 따라 천천히 오른다. 용대는 내가 부상당한 이틀 후에 어깨뼈 골절상을 당했기 때문인지 동병상련의 정이 느껴진다. 복심이는 오랜만의 산행이라 힘들거라 말하지만 잘 오른다. 은경이는 언제나처럼 묵묵한 가운데 일행을 편안하게 해준다. 가능하면 인적이 드문 산길을 따르기로 한다. 아무래도 절룩거리는 걸음걸이 때문에 산객이 많으면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용굴암 가는 길은 아늑한 둘레길 같다. 용굴암 위로 잠시 수락산역에서 올라오는 주등산로와 만난다. 역시나 사람들이 많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사이에 끼어 수락주능선 초입에 이른다. 정상을 향하는 주능선을 버린다. 인파로 붐빌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비교적 한가한 불암산 방향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덕릉고개로 향하는 길은 상대적으로 한가하다. 걷기 편한 흙길의 연속이라서 좋다. 불암산 방향 갈림길에서 순화궁 쪽의 오솔길로 접어든다. 최근에 사람이 걸은 흔적이 없는 것 같이 한가한 길이다. 길 초입에서 뱀이 보이고 길 중간 중간에 거미줄이 많다.

 

계곡에 내려설 때까지 우리 일행 외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정말 좋다. 도란도란 얘기 나누며 천천히 우리만의 페이스로 걸어 내려간다. 물 흐르는 계곡의 너럭바위에 둘러앉아 계곡물에 발 담그고 떡과 과일로 간식을 먹는다. 한가하고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좋다. 같은 시각 암벽등반으로 춘클리지를 오르고 있을 정신이로부터 은경이 폰으로 사진이 전달된다. 의암호의 절경이 펼쳐질 춘클리지 풍경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안전하게 오를 것을 기원한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이 부럽지 않다. 한참을 발 담그고 놀다가 다시 국사봉 능선을 올라보기로 한다.

 

국사봉 능선길은 둘레길 열풍이 불었을 때 우리만의 둘레길을 갖고 싶어 생각해냈던 루트라서 애착이 가는 곳이다. 순화궁 음식점 초입에서 희미한 산길을 찾아 주능선에 이르는 과정에선 마치 심마니들이 산삼을 찾는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진다. 여전히 거미줄 헤치며 걷는 능선길도 최근의 사람 흔적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천주교공동묘지로 하산 할 때까지 사람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우리 네 사람이 산길을 전세낸 격으로 우리만의 평안을 즐긴 것이다. 쉬는 시간을 포함해 일곱 시간 가까이 산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이름난 명산도 아니고 빼어난 절경도 없었지만 정말로 마음 편한 친구들이 함께 했었기에 최고의 산행이 되었다. 그 어떤 산행보다 뇌리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든든한 보호자처럼 마음으로 나를 지켜준 친구들이 유난히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제 막 등산에 입문한 것 같은 설레임이 다시 일렁인다.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생각하는 등산을 천천히 시작하고 싶다. 등정주의에서 등로주의로 등산의 사조를 바꾼 알버트 머메리의 혁신적인 생각과 당대 최고의 등반 기술자이면서도 불멸의 저서를 남겼던 헤르만 불의 순수한 열정을 닮아가듯 깊이 있는 등산을 추구해야한다. 몸이 건강해지는 산행도 좋지만 정신 세계까지 맑아지는 산행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1. 국사봉 능선길은 최근의 사람 흔적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낙엽 쌓인 흙길이 푹신해서 좋았다..

 

 

2. 혼자 걸었다면 무서웠을 정도로 적막했지만... 맘 편한 친구들이 함께하니 더이상 좋을 수가 없었던 산길..

 

 

3. 국사봉 능선에서 바라본 불암산과 덕릉고개... 시야가 희미해도... 뛰어난 풍광이 아니라도 최고의 산행이 될 수 있다..

 

 

4. 국사봉 능선길은 간간히 수락산을 마주보며 걷는다... 절경은 아니지만 친구들과 함께한 산행이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