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대둔산 구조대길 등반 - 2011년 3월 19일

빌레이 2011. 3. 20. 16:29

 

토요일 새벽 5시 조금 지난 시각 집을 나선다. 산에 가기 위해 새벽길을 나서면 마음은 항상 즐겁다.

은경이와 해식이를 픽업하여 청담동의 정신이 집에서 강남팀과 도킹한다. 정신이와 인천이가 강남팀이다.

인천, 해식, 정신, 은경, 주성, 이렇게 다섯 명이 정신이의 차에 동승하여 6시경 대둔산으로 향한다.

우리 다섯은 남도 땅의 나주세지중 동기동창생들이다. 지난 해 등산학교를 졸업하여 같이 등반을 즐길 수 있으니 정말 좋다.

 

대전 통영간 고속도로 추부 나들목에서 나와 17번 국도를 타고 대둔산 용문골 입구에 도착하니 9시가 채 넘지 않았다.

용문골을 따라 일반등로를 타고 가면 자연스레 신선암에 이른다.

신선암을 지나쳐 오르는 철계단이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 샛길로 접어들면 구조대길 초입에 이를 수 있다.

대둔산 산악구조대가 개척한 구조대길은 현판과 개념도가 다른 암릉길에 비해 제법 멋지게 설치되어 있다.

철판으로 제작되어 루트 출발점에 설치되어 있는 구조대길 개념도에는 총 11피치, 최고 난이도 5.10c로 표기되어 있다.

 

장비를 착용하고 한 자리에 모여 화이팅을 외치며 등반에 대한 결의를 다진다.

친구들끼리 올해 처음 호흡을 맞추는 등반인 만큼 무엇보다 안전을 우선시 하기로 다짐한다.

티롤리안 브릿지가 하고 싶어 처음으로 구조대길 등반을 제안한 정신이가 선등을 맡고,

인천, 해식, 은경, 주성 순으로 등반한다는 기본적인 계획에 이견이 없다.

선등자 빌레이, 하강 자일 설치, 장비 수거 등의 역할은 내가 맡기로 한다.

 

5.7 급의 1 피치 등반은 순조로웠다. 정신이 선등, 인천, 해식, 은경이는 슈퍼베이직 등반, 나는 간접빌레이로 장비 회수하며 오른다.

2피치가 문제다. 볼트가 선명히 보이는 마이너스 구간을 정신이가 선등으로 붙었으나 여의치 않아 후퇴한다.

배낭을 내려놓고 다시 정신이가 붙었으나 3 분의 2 지점까지 오르고는 크럭스를 돌파하지 못한다.

정신이는 평소와 다르게 몸이 무거워 보인다. 주중에 친구의 상가집에 다녀오고 장시간 운전하느라 피곤이 쌓인 것 같다.

정신이는 팔에 펌핑이 나서 두 번의 추락을 맛본 후 인천이에게 선등을 넘긴다.

하지만 인천이도 크럭스를 넘어서는 데에는 실패하고 만다. 빌레이 보면서 친구들이 실패한 루트를 차분히 살펴본다.

루트를 올려다보니 전체적으로 오버행이다. 홀드도 모두 아래쪽으로 흘러 있어 여간 어려워 보이는 게 아니다.

 

다음으로 완력 좋은 해식이가 붙어본다. 해식이도 매우 힘겨운지 등반 도중 자일에 의지한 채 두 번의 휴식을 취한다.

그래도 운동선수 출신다운 집념으로 크럭스를 멋지게 돌파한다. 인천이와 은경이가 해식이의 뒤를 따르고,

정신이와 나는 크럭스 좌측 루트를 따라 오른다. 우리에게는 이 좌측 루트가 알맞은 난이도인 것 같다.

어쨌든 크럭스를 돌파하고 나니 전체적으로 등반의 열기가 고조되는 것 같다.

3 피치 이후부터는 해식이가 선등을 맡기로 한다. 펌핑 이후의 정신이는 티롤리안 브릿지를 기대하는 눈치다.

 

3 피치는 디에드르형 반침니로 약간의 오버행 구간이다. 호락호락한 피치가 없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다들 어렵지 않게 오르고 나서 안부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는다.

점심 이후부터는 날씨도 따뜻해지고 조망이 일품이어서 그런지 등반의 즐거움이 절로 생긴다.

천년솔 바위가 있는 4 피치를 쉽게 올라 5 피치의 직벽에 붙는다.

고도감이 상당하고 첫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돌아서야 하는 까다로운 구간이다.

해식이의 자신감 넘치는 선등으로 모두가 가뿐히 오르고 나니 서서히 등반의 재미가 붙는다는 느낌이다.

 

구조대길 개념도 상에 최고 난이도인 5.10c로 표기되어 있는 6 피치 한둔바위는 볼트따기로 오른다.

해식이가 선등하고 내가 후등하며 장비를 회수한다. 인천, 정신, 은경이는 시간 관계상 우회한다.

원래 이 6 피치 정상과 맞은편 7 피치 정상 사이를 잇는 쇠줄이 있었는데 철거된 모양이다.

쇠줄을 이용한 티롤리안 브릿지를 잔뜩 기대했던 정신이에게는 실망스런 부분이다.

해식이와 내가 하강한 후 이어진 7, 8, 9, 10, 11 피치는 별 어려움 없이 즐겁게 통과한다.

 

구조대길 정상이라 할 수 있는 심마니바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나니 뿌듯함이 밀려온다.

자일 하강 후 장비를 해체하고 용문골을 따라 하산한다. 간간히 산죽군락지가 있는 오솔길이 하산길을 편하게 해준다. 

정신이의 차가 있는 용문골 입구에 도착하니 오후 6시를 조금 넘긴 시각이다.

대둔산 속 깊은 곳에서 9 시간 넘게 친구들과 한 팀이 되어 놀았던 셈이다.

뒷풀이 장소인 전주중앙식당의 묵은지닭볶음탕의 맛도 등반의 만족감만큼이나 일품이다.    

 

구조대길은 우리 다섯 명 모두가 초행이므로 책이나 인터넷 등으로부터 얻은 간접 지식만 있었다.        

다른 등반 준비와 달리 내게도 피치별로 세세한 정보를 수집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준비가 완벽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애를 좀 먹더라도 자연스레 도전적인 등반이 된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간접적으로 얻은 지식과 직접 체험한 사실 사이에는 괴리가 있기 마련이고,

이러한 괴리감이 때로는 등반 체험의 중요성과 만족감을 더욱 상승시키기도 한다.

사전 준비가 치밀했더라면 2 피치 크럭스에서 헤매지 않고 좌측 루트로 비교적 쉽게 등반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친구들이 차례로 도전하여 크럭스를 돌파한 성과는 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게는 이 날 대둔산 구조대길 등반이 온사이트 등반의 긴장감과 묘미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던 기회였다.

함께 생명줄을 묶었던 친구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 하루였다.

  

 1. 첫 피치를 오르고 있는 인천...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아 바위가 약간은 차가웠던 1 피치..

 

 2. 두 번째 피치 크럭스 구간을 선등 중인 정신... 보기보다 힘들었던 오버행 크럭스 구간..

 

 3. 정신이의 후퇴이후 2 피치 크럭스 구간을 돌파 중인 해식... 서로를 백업하며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것에 기쁨은 두 배..

 

 4. 3 피치 등반 후 안부에서 맛있는 점심 시간... 정신이는 부침개를 준비해오는 정성까지..

 

 5. 환상적인 조망이 열리기 시작한 4 피치 정상의 천년솔 바위 아래에서... 멋진 넘들..

 

 6. 5 피치 직벽 구간을 선등하는 해식... 녀석의 도전적인 등반 열정이 멋지게 빛나던 순간..

 

 7. 6 피치 한둔바위를 볼트따기로 통과한 후 약간의 오버행 하강이 이어진다... 예전엔 티롤리안 브릿지로 통과하던 구간..

 

 8. 하강 구간이 세 번 이어지는 구조대길은 11 피치 전체적으로 재미 있는 루트들이 많다..

 

 9. 마지막 피치 정상인 심마니 바위에서 기념 촬영을 위해 확보점에 모였다... 우리는 한 몸..

 

 10. 대둔산 구조대길은 초입의 현판과 개념도가 잘 안내되어 있다..

 

11. 산죽군락지 사이로 난 오솔길로 하산하는 친구들... 몸과 마음이 하나였던 우리들이 소중하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