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북한산 원효봉-염초봉 리지 및 백운대 대슬랩 등반 - 2011년 3월 12일

빌레이 2011. 3. 13. 18:17

 

항상 그렇듯 학기초는 분주하다. 지난 일주일을 빠듯하게 보내다 보니 몸 상태는 무겁다.

아직 쌀쌀한 날씨에 바위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는지, 전날 마신 다량의 커피 때문인지 간밤에 잠을 설쳤다.

순욱, 은경, 해식, 주성, 이렇게 넷이 구파발역에서 8시쯤에 만나 효자동파출소로 향하는 택시에 탑승한다.

약속 시간에 조금 늦었다는 이유로 택시비 만원은 해식이가 지불한다.

 

시구문을 지나 원효봉 땀바위 슬랩 밑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본격적인 리지 등반을 시작한다.

원효봉 리지길도 제법 아기자기하고 초반 몸풀기에는 괜찮은 코스란 생각이 든다.

치마바위 중턱에서 우회해 올라가는 길 중간에 나타나는 짧은 오버행 구간을 올라보니 몸이 좀 무거운 게 감지된다.

원효봉 정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아늑한 테라스에서 행동식을 먹고 다시 출발한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백운대를 지나 만경대 리지까지 해치울 계획이라서 내심 좀 서둘러야겠다는 마음이다.

 

원효봉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곧바로 염초 리지 초입인 북문으로 향한다.

조금 일찍 출발한 때문인지 리지 등반객들이 아직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리지 등반을 하다보면 어프로치 코스가 가장 힘든 것 같다. 염초 리지도 북문에서 직벽에 이르는 길이 힘들게 느껴진다.

염초 직벽을 선등하는데 2주 전에 오를 때보다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진다.

별로 좋지 않은 컨디션과 세찬 바람이 등반을 힘겹게 하기 때문이다. 같은 장소도 오를 때마다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은경, 해식, 순욱 형 순서로 등반하여 염초 직벽을 완료하니 비로소 등반다운 등반이 시작되는 것 같다.

 

다음부터는 주성-은경-해식-순욱 순서로 안자일렌 하고 아기자기한 리지길을 재미 있게 오른다.

바람이 좀 세차다는 게 조심스러울 뿐, 겨울의 칼바람보다는 한결 부드러워진 느낌에서 봄은 오고 있음을 느낀다.

염초 리지 중간부분인 파랑새바위 밑에서 점심을 먹고 등반을 계속한다.

고도가 높아진 탓인지 응달엔 잔설과 얼음이 남아 있어 위험하다. 눈과 빙판은 2주 전보다 오히려 더 심한 상태다.

말바위 넘어서는 길도 세찬 바람 때문에 조금은 애를 먹는다.

백운대에 이르는 마지막 피치도 예전보다 오히려 더 심한 살엄음으로 덮혀 있어 양지 바른 쪽으로 우회한다.

눈길과 빙판을 어렵게 지나 백운대 정상에 이르니 네 사람의 얼굴엔 잔잔한 환희가 넘쳐나는 것 같다.

 

백운대 정상에서 기념촬영하며 노닐다가 만경대 쪽을 바라보니 전체적으로 하얀 설사면이 보인다.

체력 좋은 해식이가 좀 아쉬워 하는 것 같은 표정이지만, 만경대 리지는 아껴두기로 결정한다.

대신 양지 바른 곳에 위치한 백운대 대슬랩에서 좀 놀다가 가기로 한다.

난이도 높지 않은 곳이라 그런지 중간 볼트가 박혀있지 않은 40여 미터 슬랩을 순욱 형이 선등하여 자일을 고정한다.

다음에 해식이와 내가 연습 삼아 두 번 오르내린다. 확보지점에서 바라보는 광경은 제법 시원하여 암벽등반 하는 것 같다.

오후의 따스한 햇볕을 등에 받고 인수봉 서면 오버행으로 유명한 비둘기길을 등반하는 모습이 인상 깊다.

 

봄날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슬랩을 오르내리니 몸이 다시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하산길도 피곤하지 않다.

하루재 지나 내려오는 길에 순욱 형의 통화가 길어진다.

일본 센다이 대지진 때문에 자동차 부품이 들어올 수 없어 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모양이다.

지구촌 시대라는 게 실감나는 순간이다. 다른 나라의 재난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바로 옆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세상이다.

헐리우드 영화 같은 일본의 대지진 참사를 보면서 우리 나라의 산하에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진다.

여덟 시간이 넘는 만족스런 등반을 마치고 네 사람이 함께하는 뒷풀이는 막걸리 한 잔의 취기 만큼이나 기분 좋은 자리이다.

생명줄인 자일을 함께 묶었던 순욱, 해식, 은경, 세 사람과 시종일관 우리들의 등반을 걱정해주신 기송 형님께 감사드린다.

 

 1. 백운대에서 원효-염초 리지를 마치고 단체 사진 한 컷... 저 멀리 우리가 등반한 길이 아득하고..

 

 2. 원효봉 리지 초입인 땀바위 슬랩... 쉬지 않고 오르면 땀난다고 해서리..

 

 3. 원효봉 리지는 염초 리지 등반 전 몸풀기 코스로 그만이지만... 살짝 살짝 어려운 곳도 있다는 거...

 

 4. 염초 직벽에 이르는 어프로치 중간... 바위에 붙기 전까지가 더 힘든 것 같다는...

 

 5. 염초 리지 등반 출발 지점인 직벽 등반 준비 중...

 

 6. 순욱 형이 후등하는 사이... 은경이는 중간에 자일 쓸리는 것 방지...나는 간접빌레이 중이고...

해식이는 촬영 중... 다들 등산학교 출신들이라 모든 걸 알아서 척척... 등반이 즐거울 수 밖에..

 

 7. 우리는 굴비두름...ㅎㅎ... 안자일렌 했다는 건... 공동의 운명체라는 것..

 

 8. 안자일렌 한 상태에서 아기자기한 염초 리지를 오른다..

 

 9. 말바위 오르는 순간... 바람이 세차고 잔설도 좀 있어서... 예전보다 어렵게 느껴진다..

 

 10. 우회로도 빙판이라 조심 조심... 안자일렌으로 서로를 확보하니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11. 모처럼 포근한 오후를 즐기는 산객들로 붐비는 백운대... 맞은편 만경대는 하얀 설사면으로 덮혀있어서...

 

12. 백운대 대슬랩 중간에서 바라본 인수봉 서면벽.. 주로 하강하는 코스를 크랙따라 오르는 비둘기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