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송추지구 주차장에 약속 시간인 10시보다 십분 정도 일찍 도착한다.
기송 형께 전화하니 순욱 형과 아직 합류 전이라 한다.
은경이 말에 의하면 순욱 형은 전날 밤 강남에서 술을 펐을 거라 한다.
지엠대우가 쉐볼레로 개명한 후 순욱 형은 더욱 바쁜 모양이다.
우리 나라에서 대기업 부장으로 산다는 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닐 것이다.
생각보다 일찍 두 분이 도착한다. 주차된 내 차 앞을 지나가는 순욱 형의 차가 보인다.
기송 형께서 운전하고 순욱 형은 사장님처럼 뒷좌석에서 편안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다.
기송, 순욱, 은경, 주성, 이렇게 넷이 오랜만에 반갑게 만나 오붓하게 오봉으로 향한다.
삼일절날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아 도봉산의 북쪽 사면들은 모두 하얗다. 오봉 등반을 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 하며 오른다.
여성봉까지 가는 길은 흙길이 많아 질척인다. 봄철 산행의 피할 수 없는 불편함이다.
여성봉에서 오봉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는 많은 부분이 얼어 있어 지체가 심하다.
봄철 산행 준비는 겨울 산행에 준해야 하는데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은 이들이 많다. 나도 아이젠을 깜박했다.
오봉 정상에 이르니 벌써 기송 형님은 바위 상태를 살펴보러 2봉에 가 계신다.
공단 직원 둘이서 우리 보고 장비가 있어도 가지 마라고 제지한다. 1봉에서 보이는 오봉은 하얀 부분이 많은 때문이리라.
공단 직원 중 한 사람이 기송 형에게 다녀오더니 남은 우리 세 사람을 통과시켜준다.
오봉의 남쪽 페이스는 양지여서 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안전하게 하면 등반이 가능하다는 기송 형의 판단이다.
평소에 클라이밍 다운하던 1봉 내려서는 곳도 자일 하강으로 최대한 안전하게 통과한다.
2봉을 트레버스하는 구간도 기송 형이 이미 자일을 설치해 놓은 상태여서 순욱, 은경 순서로 진행하고, 내가 자일 회수하며 통과한다.
2봉의 양지바른 곳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씩 나눠 마시니 비로소 등반이 시작된다는 설레임이 찾아든다.
이날 오봉은 우리 네 사람이 전세낸 격이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바윗길에 마음 통하는 이들과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즐겁다.
자일 한 동을 2봉 하강 고리에 설치하고 끝까지 내려선다. 내 뒤를 순욱 형과 은경이가 따르고 기송 형이 마지막으로 하강 하신다.
등산학교 졸업한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접했던 오봉 하강길의 긴장감은 이제 없다.
여기 저기 주변을 구경하며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여유가 그때의 긴장감을 대신하니 좋다.
3봉 등반길은 얼어 있는 곳이 많아 힘들 것 같았다. 기송 형이 선등하고 내가 확보를 보는데 두 번째 볼트까지는 괜찮았다.
바위도 무척 차갑고, 두 번째 볼트 다음부터는 얼음이 많아 쉽게 진행하지 못하신다. 프렌드 설치할만한 곳도 여의치 않아 보인다.
이리 저리 방법을 탐색하던 중 왼쪽 슬랩 부분에 스카이훅을 설치할만한 구멍을 찾은 것이 오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었다.
선등자는 등반능력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장비 사용에도 뛰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은경이가 기송 형의 간접확보로 올랐다. 첫 번째 퀵드로는 회수하고 두 번째 것은 남겨 놓으라고 했는데, 이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
순욱이 형 차례가 되어 자일 한 동으로 등반을 끝내기 위해 자일을 내려달라고 외쳤더니 자일 전체가 내려오는 게 아닌가.
순간적인 방심으로 자일이 떨어졌는데, 불행 중 다행인 것은 두 번째 설치한 퀵드로에 자일이 걸렸다는 것이다.
위에서는 기송 형과 은경이가 가지고 있는 런너줄, 슬링, 퀵드로, 확보줄 등을 줄줄이 사탕처럼 엮어 내렸다.
아래에서는 순욱이 형이 두 번째 퀵드로에 걸린 자일을 매고 톱로핑 방식처럼 중간까지 올랐다.
위에서 내려진 줄의 길이가 약간 모자라 순욱 형이 용기 있게 선등처럼 한 발을 내디니 줄을 잡을 수 있었다.
실수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것을 해결해내는 지혜가 돋보였던 순간이다.
다시 간접확보가 제대로 설치된 후 마지막으로 내가 오른다. 바위를 잡는 손이 얼얼할 정도로 바위면이 차갑다.
퀵드로 회수 후 기송 형이 시간을 지체했던 곳을 올라보려는데 잘 안 된다. 텐션을 주문하고 살짝 줄 잡고 올라간다.
어렵게 오른 3봉에서 내려보니 우리가 올라온 많은 부분이 눈이나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
삼십 미터 오버행 하강으로 내려서 양지바른 안부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는다.
햇살 받아 또렷히 보이는 우이령길과 상장능선의 아름다운 곡선만큼이나 마음이 푸근하고 편하다.
인공등반으로 올랐던 4봉은 우회하여 하강하고 바로 5봉으로 향한다. 하지만 등반 루트는 얼음으로 덮혀있다.
빙벽용 바일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안부로 되돌아와 장비를 해체하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5봉을 돌아 내려오는 하산길은 눈길 급사면이라 내려오는데도 땀이날 지경이었다.
순욱 형은 내려오는 길 중간에 녹아내리던 흙길에서 미끄러져 엉덩이를 더렵히기도했다.
질척이는 길 때문에 더렵혀진 등산화를 계곡길에서 씻고 뒷풀이 장소로 향한다.
올해 첫 등반을 안전하고 여유있게 즐겼다는 뿌듯함이 홍합탕, 오뎅, 해물파전의 맛깔스러움과 어울린 뒷풀이는 행복함 자체다.
1. 정상인 1봉에서 바라본 오봉은 등반이 불가능할 것 같았다..
2. 2봉에 있는 나무 가지엔 얼음꽃이 피었다.. 햋볕을 받아 얼음 떨어지는 소리가 생각보다 크다..
3. 공사다망하신 순욱 형은 과음에도 불구하고 등반에 참여했다..
4. 여성봉 지나는 길 중간에 바라본 오봉의 북사면은 하얗다..
5. 2봉을 돌아나가는 순욱 형.. 기송 형이 설치한 자일을 잡고 안전하게.. ㅎㅎ
6. 2봉 하강줄을 설치하니 비로소 등반이 시작된다는 긴장감이 돈다.. 한 줄 하강일 때는 퀵드로 두 개씩을 설치해야 하지만...
7. 3봉을 선등하시는 기송 형님.. 우리 모두의 호프!!
8. 기송 형이 요 다음에서 스카이훅을 설치한 후 등반 완료..
9. 등반을 완료한 3봉 정상에서... 순욱 형의 표정은 항상 나를 웃게 한다..ㅎㅎ
10. 누가 하나 하나 붙여놓은 것처럼 고드름이 열렸다..
11. 3봉 정상부의 멋들어진 소나무... 응달진 곳은 곳곳이 빙판..
12. 3봉과 4봉 사이의 안부에서 한가로운 점심 시간을 보내고...
13. 북한산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 영봉, 상장능선의 산줄기가 힘차다..
14. 우이령길의 곡선과 송추유격장이 내려다보인다..
15. 순욱 형의 멋들어진 오버행 하강..
16. 제5봉 등반루트는 완전 얼음이다.. 아이스바일이 생각나는 순간..ㅎㅎ
17. 올해 첫 등반을 함께한 소중한 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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