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클라이머 주영의 <얄개바위>를 읽고...

빌레이 2009. 9. 24. 10:10

록클라이머(rock climber)의 자유로운 일상을 이보다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은 드물지 싶다.

히말라야 고산 등반가들은 일반인들에게 유명하다. 허영호, 박영석, 엄홍길, 오은선 등의 이름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선우중호, 임덕용, 주영, 정호진, 정승권, 허긍열, 박정헌, 최강식 등의 이름은

암벽 등반에 관심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유명 고산등반가들이 유명 스타 연애인이라면 후자는 언더그라운드의 실력파 가수나 배우들 같다.

 

내가 암벽 등반에 관심 있어서 이들의 이름을 아는 건 아니다. 산서를 좀 읽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이다.

헤르만 불, 임덕용, 허긍열 등이 쓴 책에서 느끼는 암벽 등반의 매력이 진중한 무게감을 갖는 것이라면,

주영의 책 <얄개바위>에서 얻을 수 있는 감흥은 정말 재미있게 바위를 타는 꾼들의 소탈하고 짜잔한 일상의 친근함이다.

유명 산악 사진의 멋진 배경이 되는 요세미티의 엘캡과 하프돔, 스위스 알프스의 아이거 북벽,

파키스탄 히말라야의 트랑고 타워,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산군의 쎄로토레 등을 직접 등반한 이야기들이 <얄개바위>엔 있다.

 

일반 독자들에겐 매우 자유분방하게 하고 싶은 것 다하며 살아가는 주영의 삶이 부럽게 느껴질 것이다.

나는 그 자유분방한 삶 이면에 숨겨진 주영의 피땀어린 노력을 엿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하여 끊임 없이 노력하고, 생각이 동하면 곧바로 행동에 옮기는 그의 살아가는 방식이 맘에 들었다.

45세의 나이에 LA에 사는 주영과 서울에 사는 단짝 친구 정호진이 빠듯한 휴가기간을 맞춰 파타고니아에 가는 얘기는 멋지다.

일류 암벽 등반가들인 이 둘이 쎄로토레 정상을 밟지 못하고 현명하게 돌아서서 살아 돌아오는 장면은

극한의 고통을 이기고 정상 정복에 성공하는 박범신의 <촐라체> 얘기보다 오히려 감동적이다.

 

아르헨티나 악우들을 구출함으로써 현지에서 영웅 대접을 받고, 쎄로토레 정상을 밟지 못한 아쉬움을 전혀 느끼지 않은

그들의 자세는 훌륭하다. 주위를 돌아보지 않고 외길을 고집하는 것보다 더 아름다운 삶이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주영의 <얄개바위>는 지금까지 읽은 암벽등반 서적 중에서 가장 재미 있었다. 적어도 내게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