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강촌 유선대 암장 - 2021년 2월 27일(토)

빌레이 2021. 2. 28. 05:09

개강 전 마지막 주말이자 삼일절인 월요일까지 쉴 수 있는 연휴의 시작일이다. 아침 7시 반에 서울을 출발하여 9시 즈음에 강촌의 강선사 앞 주차장에 도착한다. 일찍 나선 덕분에 교통체증을 피할 수 있었다. 점심 때 즈음에 암장에 도착한 다른 팀의 전언에 의하면, 9시에 서울에서 출발한 탓에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었다고 한다. 강선사에서 어프로치를 시작하려는데 북한강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에 살짝 차가운 기운이 맴돈다. 쌀쌀함을 느낀 순간도 잠시, 맑은 하늘 위로 힘차게 떠오른 태양으로부터 내리쬐는 봄볕이 포근하게 내 온몸을 감싸준다. 축복처럼 쏟아지는 강렬한 햇살을 환대하기 위해 유선대암장으로 가는 오솔길 옆의 야생화 정원에서 잠시 햇볕바라기를 하고 가기로 한다. 제작년 시월에 '가을방학' 노래를 입가에 읊조리면서 암장으로 향하던 길가에서 구절초 꽃무리가 활짝 웃으며 반겨주었던 바로 그 언덕이다. 아직 봄꽃은 피어나지 않았지만 확트인 전망까지 시원한 양지바른 잔디밭에 놓인 정원석 위에 걸터앉아서 마시는 모닝커피 한 잔의 여유가 모든 시름을 잊게 해준다.

 

올 때마다 기분 좋은 추억을 안겨 주었던 유선대암장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에게 충분하고도 남을 놀이터를 제공해 주었다. 암장의 첫 손님으로 도착한 우리팀은 중앙벽 앞의 평탄하고 아늑한 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오전에 좌벽에서 서서히 몸풀기를 겸한 등반을 하고, 점심 직후엔 중앙벽과 우벽을 가르는 대형 크랙인 '통천문' 루트를 통해 정상에 다녀왔다. 하드프리 암장에서 멀티피치 등반의 묘미까지 즐길 수 있다는 점이 유선대암장의 큰 장점이다. 책바위 형태의 크랙이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자연미 가득한 '통천문' 루트는 홀드가 양호하고 볼트가 적재적소에 잘 설치되어 있어서 식후 소화를 위한 바윗길로는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강 후 자일 회수까지 깔끔했던 '통천문'을 기분 좋게 다녀온 후에도 우리팀은 암장에 그늘이 드리워진 오후 5시를 넘긴 시간까지 손가락 끝이 아릴 정도로 열심히 오름짓을 즐겼다. 허리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시작한 체중감량이 여러모로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고 있는 듯하다. 내가 생각해도 몸이 가벼워져 등반 동작이 한결 나아진 바람에 유선대암장에서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알찬 등반을 경험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던 감사함 넘치는 하루였다.          

 

▲ 정상까지 이르는 두 피치의 '통천문' 루트를 등반 중이다. 설악산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자연미 넘치는 크랙과 침니가 이어지는 바윗길이다.  
▲ 남동향의 유선대 암장은 겨울에 등반해도 좋을만큼 양지바른 곳이다. 암벽에 드리워진 나무그림자는 태양이 그린 작품이다. 
▲ 암장의 첫 손님으로 온 덕택에 오전 내내 좌벽을 우리팀이 독차지 하여 안전하게 등반에 집중할 수 있었다. 
▲ '바다리(5.7, 13m)' 루트에서 몸을 풀어보았는데,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개념도 상의 난이도는 숫자에 불과하다. 몸이 풀리기 전이어서 그런지 내 동작이 굼뜨기는 했지만, '바다리'의 체감 난이도는 5.9는 족히 되는 듯했다. 루트 명칭은 "맹렬하게 달려드는 바다리벌과 정열적인 등반 초심자의 모습이 닮았다"는 의미로 붙인 것이라는 개념도 상의 설명이다. 암벽에서는 항상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 '벚꽃 피는 날(5.9, 27m)'은 루트가 길었지만, 홀드 찾는 재미가 있어서 즐겁게 완등할 수 있었다. 이 곳을 등반한 후에는 벚꽃 필 무렵에 유선대암장을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전에 있었던 '벚꽃 피는 날' 루트의 톱앵커가 사라졌다. 원래 쌍볼트와 체인이 있던 자리에 볼트 하나만 남겨져 있었다. 할 수 없이 칸테 너머의 나무에 확보하고 하강해야만 했다.
▲ '벚꽃 피는 날' 왼쪽 '참나무(5.10a, 23m)' 루트의 톱앵커에 퀵드로 두 개로 톱로핑 자일을 설치하고 연습했다.
▲ 은경이가 '벚꽃 피는 날' 루트를 오르고 있다.
▲ 점심을 먹기 위해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니 중앙벽에 많은 클라이머들이 붙어 열클 중이었다.
▲ 점심 후에 소화를 위해 두 피치짜리 루트인 '통천문(1P 24m, 2P 26m)'을 등반했다. '통천문'은 중앙벽과 우벽을 가르는 대형 크랙을 따라서 정상까지 이어진다. 
▲ 처음으로 오른 '통천문'의 첫 피치 확보점에서 인증사진을 남겨본다. 첫 피치에서 나무에 중간 확보점을 구축하기 위한 슬링이 필요하다.
▲ '통천문' 둘째 피치는 위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크랙이어서 스태밍 자세를 잘 취해야 안정적으로 오를 수 있다. 
▲ 선등자에겐 심리적인 두려움이 있을법한 책바위 형태의 직벽이지만 홀드가 확실하고 중간 볼트가 잘 설치되어 있어서 안전하게 오를 수 있었다.
▲ '통천문' 도착점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이다. 이 곳을 넘어서 조금만 걸어가면 유선대 정상이다.
▲ '통천문' 종착점에서는 북한강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 그 어느 때보다 청명한 날씨 덕택에 선명한 주변 풍광을 즐길 수 있었다.
▲ 맑은 하늘 아래 삼악산과 북한강의 물줄기가 손에 잡힐듯 가깝다.
▲ '통천문' 코스는 하강도 깔끔하다. 내심 크랙에 자일이 낄 것을 염려했으나 전혀 문제가 없었다.
▲ '통천문' 바로 좌측엔 좀 더 고난이도의 '하늘문' 루트가 있다. 다음엔 이 곳을 통해서 정상에 올라봐야겠다.
▲ 중앙벽엔 다른 팀이 줄을 많이 걸어놔서 다시 좌벽으로 이동하여 '참나무' 루트에 붙었다.
▲ 두 번의 오버행 구간을 돌파하는 것이 재미 있었던 '참나무(5.10a, 23m)' 루트를 비교적 만족스런 동작으로 완등했다.
▲ '시월이 가기 전에(5.10a, 18m)'는 초반의 오버행 구간에서 홀드를 찾지 못하는 바람에 완등하지 못했다.
▲ 두 차례 '테이크'를 외친 후에야 오를 수 있었던 '시월이 가기 전에' 루트는 다음에 오른다면 깔끔하게 완등할 수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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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촌 유선대 암장 개념도

 

 

좌벽

샹그리라 가는길 : 샹그리라(=숨겨진 이상향)를 찾아가는 어느 등반가의 모습.

수류화개 :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 = 삼라만상 본연의 모습.

작은 언덕 : 고빗사위 구간에 작은 턱을 넘어서야 한다.

오르락 : 오름짓의 즐거움.

시월이 가기전에 : 을미년(2015) 10월의 마지막 날에 마무리하다.

참나무 : 코스가 끝나는 곳에 참나무가 있다.

벚꽃 피는 날 : 벚꽃이 활짝 핀날 이곳에 올라 아래 세상의 정취를 느끼다.

바다리 : 맹렬하게 달려드는 바다리벌과 정열적인 등반 초심자의 모습이 닮았다.

 

작은벽

초심 : 암벽등반 입문 시절의 겸손함을 잊지말자.

101 : 백의 첫번째 코스.

시동 : 개척작업에 시동을 걸다(개척시작).

102 : 백의 두번째 코스.

 

큰벽

201 : 101동을 오르고 좀 아쉽다면 올라보라. 작은벽 2층에 있는 첫번째.

202 : 102동이 짧아 연속하여 오르는 재미를 더했다. 작은벽 2층에 있는 두번째.

코난발가락 :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줘야 산다(만화영화 “코난”에 나오는 장면).

EMPTY : 천공작업중 오일이 바닥나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야만 했다.

그리움 : 지난날 등반하던 추억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피어 올랐다.

프리텐션(Pre-tention) : 미리 긴장을 가하다.

HANBIT : 크고 넓은 마음으로 하나되어 순수하고 참된 산악인을 상징한다.

하늘문 : 하늘에 닿을 듯 정상으로 향하다.

 

우벽

통천문 : 하늘과 통하는 문(오를수록 하늘이 넓게 펼쳐진다).

잔트가르 : 몽골어로 “최강의 사내”를 의미한다.

챙이올 : 내가 그랬듯이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처음 시작할 당시를 잊지 말자).

선녀문 : 달밤에 보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 올 듯 신비스럽다.

바람개비 : 시원한 바람이 불면 하염없이 돌아가는 바람개비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