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용인 조비산 암장 - 2021년 3월 6일(토)

빌레이 2021. 3. 7. 04:33

등반계획을 세울 때 요즘 등반자들로 붐빈다는 용인의 조비산암장에 간다는 게 약간은 망설여졌다. 아직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준수해야 하는 시기지만 자연 속에서 남향의 따뜻한 암벽에 100개 이상의 루트를 보유하고 있는 조비산암장은 어느 정도 사람들이 많아도 괜찮겠지 싶었다. 너무 등반에 욕심을 내지만 않는다면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등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조비산 등반을 결정했다. 내게 맞는 난이도의 바윗길도 다양해서 올해도 꽃피는 봄이 되기 전에 한 번은 다녀와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아침 7시 30분에 서울을 출발하여 9시가 채 되기 전에 암장으로 가는 길 초입인 조비산가든에 도착했다. 농로 갓길에 주차할 공간은 충분했으나 듣던 대로 암장에 온 사람들의 차들이 예상보다는 상당히 많았다. 등반에 대한 별 기대감 없이 오늘은 그저 봄바람이나 쐬자는 생각으로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가축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르는 유쾌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평소엔 답답하던 마스크가 도움을 준다. 안개 자욱한 숲속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노오란 꽃망울을 터트린 생강나무꽃이 반겨준다. 뜻하지 않게 올해 처음으로 맞이하는 봄꽃이다. 그리 풍성하지는 않은 파스텔톤의 꽃망울이지만 기분은 절로 좋아진다. 암장에 도착해서 다른 팀들과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은 후 주위를 둘러보던 중에 곧 피어날 듯한 분홍색 꽃봉오리를 머금고 있는 진달래꽃까지 발견하고 보니 오늘 하루 일진이 좋을 듯한 예감이 든다.

 

산악회나 실내암장에서 단체로 온 등반팀들이 많았으나 우리팀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우벽의 비어 있는 루트 중 적절한 난이도의 바윗길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등반했다. 나는 가벼워진 몸 덕분에 등반이 예전보다 훨씬 더 즐겁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오버행 구간을 돌파하는 순간에서 예전보다는 은근한 자신감이 생겼다. 오전엔 '아등바등(5.9, 15m)', 'Stay high(5.10a, 12m)', '벼락치기(5.9, 10m)', 등의 루트에서 각각 두 차례씩 연속적으로 오르내리는 우리만의 등반을 즐길 수 있었다. 점심 후에도 '시크릿 가든(5.9, 10m)', '그랑블루(5.10a, 13m)', '애증의 강(5.10a, 11m)', 'Fantasy boy(5.10a, 20m)', '막내들의 합창(5.10a, 10m)' 등을 거의 쉬는 시간 없이 꾸준히 오르내렸다.

 

우리가 오른 루트들은 모두 단체로 온 팀들이 거의 등반하지 않은 곳이어서 어떤 루트는 톱앵커가 녹슬어 있었다. 좀 더 난이도 높고 인기 있는 루트에 붙고 싶은 바램도 있었으나,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팀들을 비집고 들어가서까지 등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오늘은 운동이나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도전하기'보다는 '즐기는 등반'에 촛점을 맞추기로 했다. 클라이밍의 장점은 무엇보다 바위에 붙는 순간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다소 소란스럽게 등반을 하던 주변 팀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신경쓰지 않고, 우리팀만의 페이스를 유지한 채 묵묵히 우리만의 등반을 즐길 수 있었던 조비산암장에서의 하루가 보람찼다.               

 

▲ 오늘 가장 즐겁고 만족스럽게 완등했던 'Fantasy boy(5.10a, 20m)'를 오르고 있다. 
▲ 안개 자욱하고 가축의 분뇨 냄새 가득한 속에서도 노오란 꽃망울을 터트린 생강나무꽃이 기분을 좋게 해주었다. 
▲ 요즘 체중조절 중이어서 몸이 가벼워졌다. 등반도 저절로 예전보다 한층 더 즐거워졌다.
▲ '아등바등(5.9, 15m)'에서 몸을 푸는 것으로 오늘의 등반을 시작했다. 확보점 직전이 살짝 크럭스다.
▲ 'Stay high(5.10a, 12m)'는 온사이트로 깔끔하게 완등했다.
▲ 인기 있는 루트는 모두 다른팀 차지여서 우측벽 가장자리의 동굴 옆에 있는 최근의 등반 흔적이 거의 없는 루트에 붙어보기로 했다.
▲ 개념도 상에는 '벼락치기(5.9, 10m)'로 나와 있는 루트인데 오버행 구간에서 홀드를 찾지 못하여 온사이트 완등에 실패하고 말았다. 톱로핑으로 완등할 때에도 완력을 필요로 하여 체감 난이도는 5.10a 정도는 되는 듯했다. 최근의 등반 흔적이 없어서 루트 중간에 나무의 잔가지가 등반을 방해하고 톱앵커는 녹슬어 있어서 믿음직하지 않았다.
▲ 점심시간에 둘러본 우벽 초입의 인기 루트들은 빌 틈이 없을 정도였다. 
▲ 넓게 펼쳐진 우벽에서 비어 있는 루트는 거의 없었다. 
▲ 좌벽에도 내가 붙고 싶은 루트는 이미 다른 팀이 차지하고 있었다.
▲ 중앙벽은 고수들의 영역이다. 동영상을 촬영하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둥근 볼록거울은 동굴 안에 있는 빌레이어를 위한 것이다.
▲ 활기 넘치는 암장과는 대조적으로 중앙벽 앞으로는 평화로운 농촌 풍경이 펼쳐진다.
▲ 중앙벽 위는 조비산 정상이다. 넓은 데크에 텐트 치고 하룻밤을 유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 점심 후에 비어 있는 코스인 '시크릿 가든(5.9, 10m)'에 붙는 것으로 오후 등반을 시작했다. 쉬운 곳이어서 소화 시키기엔 제격이었다.
▲ '그랑블루(5.10a, 13m)'는 마지막 앵커에 클립하는 동작에서 머뭇거리는 바람에 온사이트 완등에 실패하고 말았다. 적당한 홀드를 찾아서 동작을 풀고난 후에 완등했던 순간의 성취감이 컸었다. 톱앵커 직전의 오버행을 올라선 후에 오른손 언더 홀드를 잡고 일어서야 한다.
▲ '애증의 강(5.10a, 11m)'은 온사이트로 깔끔하게 완등했다. 
▲ 작년에 톱로핑으로 오른 기억이 있는 'Fantasy boy(5.10a, 20m)'도 단번에 만족스럽게 완등했다. 루트 길이가 길고 다양한 동작을 취할 수 있어서 오르는 재미가 좋았다. 두 번째로 오를 때는 중간에 여유있게 니바 동작도 취해 볼 수 있었다. 바로 옆의 '우리들의 천국'은 다른 팀이 계속 등반 중이어서 끼어들 틈이 없었다. 다음 기회에 도전해보고 싶은 루트다.
▲ 작년에 오를 땐 몸이 무거워서 톱로핑 방식으로도 중간에 쉬면서 올랐던 'Fantasy boy'를 선등으로 만족스럽게 완등했다는 것이 기뻤다. 
▲ 우측벽 가장자리에 있는 고난도 루트인 '평택갈매기(5.11d, 14m)'를 등반 중인 클라이머의 모습이다. 사선으로 진행하는 오버행 구간에서 상당한 파워를 요하는 루트이다. 
▲ 우벽 가장자리의 '막내들의 합창(5.10a, 10m)'을 마지막으로 등반하고 스스로 두줄 하강하는 것으로 오늘의 등반을 마무리했다.
▲ 산을 내려오는 시간엔 다소 쌀쌀한 바람이 불었다. 이제는 허리통증도 사라져서 부담없이 자일을 멜 수 있어서 좋다.
▲ 어프로치 초입의 산소에서 올려다 보면 조비산암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암장에서 열클한 하루가 보람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