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반계획을 세울 때 요즘 등반자들로 붐빈다는 용인의 조비산암장에 간다는 게 약간은 망설여졌다. 아직은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준수해야 하는 시기지만 자연 속에서 남향의 따뜻한 암벽에 100개 이상의 루트를 보유하고 있는 조비산암장은 어느 정도 사람들이 많아도 괜찮겠지 싶었다. 너무 등반에 욕심을 내지만 않는다면 사람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등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조비산 등반을 결정했다. 내게 맞는 난이도의 바윗길도 다양해서 올해도 꽃피는 봄이 되기 전에 한 번은 다녀와야 후회가 남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아침 7시 30분에 서울을 출발하여 9시가 채 되기 전에 암장으로 가는 길 초입인 조비산가든에 도착했다. 농로 갓길에 주차할 공간은 충분했으나 듣던 대로 암장에 온 사람들의 차들이 예상보다는 상당히 많았다. 등반에 대한 별 기대감 없이 오늘은 그저 봄바람이나 쐬자는 생각으로 어프로치를 시작했다. 가축 분뇨 냄새가 코를 찌르는 유쾌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평소엔 답답하던 마스크가 도움을 준다. 안개 자욱한 숲속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노오란 꽃망울을 터트린 생강나무꽃이 반겨준다. 뜻하지 않게 올해 처음으로 맞이하는 봄꽃이다. 그리 풍성하지는 않은 파스텔톤의 꽃망울이지만 기분은 절로 좋아진다. 암장에 도착해서 다른 팀들과 떨어진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은 후 주위를 둘러보던 중에 곧 피어날 듯한 분홍색 꽃봉오리를 머금고 있는 진달래꽃까지 발견하고 보니 오늘 하루 일진이 좋을 듯한 예감이 든다.
산악회나 실내암장에서 단체로 온 등반팀들이 많았으나 우리팀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우벽의 비어 있는 루트 중 적절한 난이도의 바윗길에서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등반했다. 나는 가벼워진 몸 덕분에 등반이 예전보다 훨씬 더 즐겁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오버행 구간을 돌파하는 순간에서 예전보다는 은근한 자신감이 생겼다. 오전엔 '아등바등(5.9, 15m)', 'Stay high(5.10a, 12m)', '벼락치기(5.9, 10m)', 등의 루트에서 각각 두 차례씩 연속적으로 오르내리는 우리만의 등반을 즐길 수 있었다. 점심 후에도 '시크릿 가든(5.9, 10m)', '그랑블루(5.10a, 13m)', '애증의 강(5.10a, 11m)', 'Fantasy boy(5.10a, 20m)', '막내들의 합창(5.10a, 10m)' 등을 거의 쉬는 시간 없이 꾸준히 오르내렸다.
우리가 오른 루트들은 모두 단체로 온 팀들이 거의 등반하지 않은 곳이어서 어떤 루트는 톱앵커가 녹슬어 있었다. 좀 더 난이도 높고 인기 있는 루트에 붙고 싶은 바램도 있었으나, 이미 자리를 잡고 있는 팀들을 비집고 들어가서까지 등반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오늘은 운동이나 열심히 하자는 생각으로 '도전하기'보다는 '즐기는 등반'에 촛점을 맞추기로 했다. 클라이밍의 장점은 무엇보다 바위에 붙는 순간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다소 소란스럽게 등반을 하던 주변 팀들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신경쓰지 않고, 우리팀만의 페이스를 유지한 채 묵묵히 우리만의 등반을 즐길 수 있었던 조비산암장에서의 하루가 보람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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