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봄비 내리는 날에

빌레이 2011. 4. 22. 12:25

봄비가 차분하게 내립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싱그럽고 좋습니다.

여러분들의 진심어린 걱정과 기도 덕택으로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어제부터는 불편한 자세나마 책상 앞에 앉아 강의 준비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강의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요일 정도엔 수술 부위의 실밥도 제거할 예정입니다.

 

저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은 실내에서만 지내는 제가 무척 갑갑해 할 것이라 생각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예상 외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병원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지루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이 반성하고, 내게 주어진 환경을 신중히 받아들이는 삶의 태도가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이제는 발목을 다친 것에 오히려 감사하면서,

지금의 상황 속에서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들에 대한 계획으로 머리 속은 바쁘답니다.

 

일 년 후쯤에는 발목 속에 내장되어 있는 철심을 제거해야 하는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향후 몇 개월 동안은 기부스를 하고, 목발을 짚어야 하며,

그 이후의 재활도 잘 해야 온전한 발목을 되찾겠지요.

하여 적어도 일 년 동안은 산에서 악우들을 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산을 쉽게 멀리 하기는 힘들겠지요.

하지만 멀리서 바라보며 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그동안 산에 빠져 지내느라 소홀했던 부분이 많이 생겼더군요. 모든 것을 잘 하면 좋겠지만 힘든 일이지요.

가족, 연구, 직장, 신앙 등의 부분에서 의무감과 방어적인 자세로 살아오지 않았나 반성해 보았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있기 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일에만 열중했던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제 다리가 불편한 시기 동안 내 삶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나갈 계획들을 세우고 나니

새로운 힘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을지라도 워낙 하고 싶은 일이 많은 탓에 심심하거나 갑갑하지는 않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이렇게 외부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커다란 기쁨 중의 하나라는 사실도 새롭게 깨닫습니다.

 

야구나 축구 같은 운동을 하다가도 저와 비슷한 부상을 당하는 경우는 허다합니다.

등반 중 일어날 수 있는 사고 중에서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부상을 당했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부상 때문에 여러분들의 등반 활동이 위축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항상 조심하고, 방심하지 말며, 질서 정연한 등반을 한다면 부상이나 사고는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세심하고 철저한 준비가 되어 있고,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면 즐거운 등반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지만 부상이나 사고가 무서워 등반을 하지 못한다면,

교통사고 무서워 운전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겠지요.

사고의 순간부터 병원까지 저 때문에 많은 고생과 염려 아끼지 않으셨던 모든 분들께 깊히 감사드립니다.

좋은 계절에 좋은 사람들과 행복한 산행 많이 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