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살다보면 황망한 때가 있다

빌레이 2011. 4. 19. 20:00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황망한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그런 일을 당하는 순간 자신의 행동이 후회스럽고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이 밀려온다.

고통의 순간들이 지나가고 시간이 흐르면 단순한 사건은 잊히게 되고,

큰 사건은 오랜 상처와 그 속에서 얻은 교훈으로 남는다.

 

열흘 전, 북한산 족두리봉 밑의 암장에서 놀다가 오른쪽 발목이 골절되는 사고를 당했다.

발목 위쪽 뼈가 세 조각 나는 복합골절이어서 세 시간여에 이르는 수술을 받았다.

열흘 간의 병원 생활 후 오늘에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심한 육체적 고통 속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된 기간이었다.

그 많은 생각들 중에 여기서는 내가 당했던 예기치 못한 사고로 황망해 하던 순간들을 되짚어 보고 싶다.

 

일곱살 때, 우리 가족은 이촌향도의 바람을 타고 전남 나주의 시골에서 대도시인 부산으로 이사 갔었다.

도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신 부모님 때문인지 1년여만에 다시 고향인 나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의 부산 생활은 지금까지도 또렷한 기억의 편린들을 제공한다.

이모가 내게 선물로 주셨던 손목시계를 아이스께끼 장사하던 불량배에게

빼앗긴 일이 기억되는 나의 첫번째 황망한 일이다.

그 불량배는 아이스께끼 하나를 내입에 물려주면서 내 손목에 고정되어 있던 시계를

돌맹이로 마찰시켜 강탈해갔었다.

방랑끼가 다분한 성격 탓인지 나는 그 때도 밥만 먹으면 부산 시내를 싸돌아다니다가

그런 일을 당했던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돈을 안 주시는 아버지 앞에서 조르다가

작대기로 얻어맞은 기억이 있다.

결국 돈을 가져가지 않았어도 선생님께 혼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되지만,

처음으로 아버지께 맞은 것이라서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난해서 돈 몇 백원을 아들 손에 쥐어주지 못하시는 당신 자신에게

화가나서 나를 때리셨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이상하게도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이 때의 기억이 자주 떠올라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중학교 시절, 나는 야구를 무척 좋아했었다.

그런데 농사 일이 바빴던 우리집 사정상 마음 놓고 친구들과 놀 수가 없었다.

어머니께서 농약 사오라는 심부름을 시키시면서 돈을 주셨다.

아마 이삼 만원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시골에서는 제법 큰 돈이었다.

나는 빨리 심부름 다녀와서 친구들과 야구놀이 할 생각에 정신이 팔려 자전거로 비포장길을 쎄게 달렸다.

농약사에 도착해서 농약을 사려고 하니 주머니에 돈이 없었다.

정신없이 달려오다보니 중간에 흘린 것이 분명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샅샅히 뒤졌지만 돈은 찾을 수 없었고, 어머니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이런 자잘한 일에서부터 다리가 부러진 심각한 일까지 내가 당했던 황망한 일들은 많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났을까를 반성해보면,

거기엔 필연적으로 나의 경솔함이나 교만함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모든 고통에는 뜻이 있다고 한다. 나는 이번에 당한 고통 속에서 올바른 뜻을 찾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당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