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영산의 절벽과 설화, 그리고 다도해의 시원한 풍경은 정말 좋았다.
명절 연휴 귀성길에 고향집 주변의 산에 오르는 것이 즐거운 일 중의 하나가 된 지는 꽤 됐다.
이번 귀향길에는 화순의 모후산과 백아산, 고흥의 팔영산 중의 하나를 염두에 두고 세 개의 산행지도를 출력해 놓았었다.
시원한 바다와 다도해의 풍경이 아른거려 팔영산으로 결정하고 나주 고향집을 나선다.
벌교가 고향인 따오기 형에게 전화해서 함께 하고 싶었지만 핸드폰을 챙기지 못해서 아쉬웠다.
고흥은 나주에서도 두 시간 정도는 잡아야 하는 먼 거리다. 네비게이션 상으론 백 킬로미터 가까이 찍힌다.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도로 사정 덕택에 한 시간 40 여분 만에 팔영산 능가사 초입에 도착한다.
명절 전 날이라 그런지 산객은 거의 없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등로 초입엔 주차장과 오토캠핑장 등이 잘 정비되어 있다.
나주에서 장흥 쪽으로 나와 2번 국도를 타고 보성 나들목을 지나면 득량만이 나오고 조금 지나 고흥반도 입구가 나온다.
고흥에 들어서면 멀리 팔영산이 군계일학처럼 멋진 봉우리들을 뽐내고 있다.
최근에는 나로도 우주센터 때문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고흥은 남도 냄새가 흠씬 풍기는 곳이다.
간밤에 내린 눈이 꽤 많았는지 팔부능선 위로는 산봉우리들이 모두 하얗다.
흔들바위 쉼터에서 만난 하산객은 정상부의 눈꽃이 환상이라며 자랑하신다.
봉우리 여덟개를 연이어 탈 수 있는 팔영산이라지만 그리 큰 기대는 안 했었다.
한데 제1봉에 오르는 중간부터 호락호락한 산이 아니란 걸 느꼈다. 해발고도로 산을 판단하지 말라는 진리를 되새기게 만든다.
눈길이라서 그런지 암벽구간으로 오르는 제1봉은 길이 잘 보이지 않아 애를 먹었다. 상당히 위험한 등로였다.
평상시에도 도봉산 브이계곡보다는 더 어려운 등로임에 틀림없다. 제1봉인 유영봉에 오르니 주위 풍광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바로 앞의 2봉은 더 높아서 그 다음 봉우리들을 가리고 있었다. 1봉의 직벽을 온전히 내려와야 2봉으로 향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여덟 개의 봉우리 하나 하나가 호락호락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모든 봉우리들이 정말 재미 있는 바윗길의 연속이었다.
눈길과 빙판길로 좀 미끄럽기는 했지만 아이젠이 없어도 괜찮았다. 철제 난간과 계단, 손잡이 등의 안전장치가 잘 되어 있다.
간간히 만나는 사람들의 말로는 남도의 팔영산에서는 보기 정말 힘든 설화라며 감탄했다.
올겨울 유난히 많이 본 설경이지만 무등산 서석대의 하얀 산호초, 지리산 주릉의 눈꽃터널을 한 곳에 모아 놓은 것 같았다.
깍아지른 바위의 절벽미, 눈꽃을 뒤집어쓴 흰소나무, 만경창파로 펼쳐지는 남해바다와 오밀조밀한 섬들...
팔영산에 올라보지 않고는 남도의 산을 논하지 말라고 감히 말해주고 싶다.
그렇게 재미 있는 바윗길을 팔봉까지 다 타면 저 멀리 나로도가 보인다. 하산길은 바위와는 전혀 상관 없는 오솔길이다.
겨울에도 푸른 대나무 숲과 피톤치드 가득하다는 편백나무 숲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은 또 얼마나 좋던지.
그간 고향집에서도 좀 멀어서 망설였던 팔영산 산행은 정말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1. 팔영산은 생각보다 어려운 등산로로 구성되어 있다. 1봉 오르는 직벽길. 이런 등로가 부지기수다. 재미 있다.
2. 간밤에 내린 눈이 얼어 붙어 있어서 많이 미끄러웠지만 난간이 잘 되어 있어 안전하다.
3. 1봉에서 2봉 가는 길 중간의 절벽길. 오르는 재미가 쏠쏠하다.
4. 철계단이나 쇠줄이 없으면 도저히 오르지 못했을 코스들이 많다.
5. 6봉에서 내려오는 길에 내려다본 설경은 환상이다.
6. 남도에서는 보기드문 설경을 봤다. 능선길 너머로 시원한 남해 바다가 펼쳐진다.
7. 칠봉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8. 8봉에서 깃대봉쪽을 보는 조망이다. 깃대봉쪽으로의 종주코스도 괜찮을 것 같다.
9. 아버지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온 모양이다. 내가 올라온 직벽이 무섭고 미끄럽다며 우회하고 있다.
10. 고드름이 있다는 건 물이 흐르고 빙판이나 빙벽이 있다는 것... 이 부분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11. 아무도 없는 1봉에서 한참을 놀다가 바위턱에 카메라 올려놓고 셀카를 찍어본다.
12. 절벽 위의 눈꽃은 무등산 서석대의 설경을 연상케 한다. 바닷 속 산호초가 올라온 것 같은 착각...
13. 하얀 눈이 얼어 붙어 백송이 돼버린 소나무... 얼마나 폼 나던지...
14. 아마 5봉에서 6봉 오르는 중간에서 본 풍경일 것... 건너편 바위산이 육봉이고 철책 난간으로 이루어진 등로가 보인다...
15. 지리산과 월출산의 통천문을 연산케 하는 석문도 있다... 두륜산 노승봉의 석문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16. 옛날 창호의 문고리 같은 모양의 손잡이... 절벽길을 내려올 때 얼마나 고맙던지...
17. 8봉에서 내려다본 다도해... 저 앞의 어떤 섬 중의 하나가 나로도...
18. 하산길은 바위산인 팔영산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편안한 오솔길...
19. 하산길 중간 중간 편백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마냥 걷고 싶은 좋은 길...
20. 6봉에서 예전에 설악산구조대원 하셨다는 대학 선배님을 만나서 한참 얘기꽃을 피웠다... 그 분이 한 컷 찍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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