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동해바다가 보이는 경주시 양남면의 숙소에서는 밤새 창문이 흔들릴 정도의 강풍이 불었다. 세찬 바람과 영하로 떨어진 기온 탓에 계획했던 영덕 블루로드 해벽에서의 등반은 아무래도 접어야 할 것 같았다. 차분하게 마음먹기로 하고 숙소에서 아침을 먹은 후 출발하여 기온이 영상으로 오를 때까지 영덕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있는 포항의 내연산 산행을 가볍게 다녀올 심산이었다. 그런데 잠깐 눈요기나 할 요량으로 들렀던 숙소 바로 앞의 주상절리길이 전혀 예상치 못한 환상적인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해파랑길 10코스 말미에 2km 남짓 이어진 주상절리길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내연산 산행 계획은 저멀리 사라져버렸다. 예정된 계획에서 잠시 벗어나 즉흥적으로 현지의 풍물에 동화되어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느끼는 것 또한 여행의 참다운 의미일 것이다.
여행의 묘미를 한껏 누릴 수 있었던 주상절리 해안길 산책을 하는 동안 화창한 햇살을 온몸에 받고 있는 바위를 만져보니 차가운 느낌이 전혀 없었다. 자연스레 블루로드 해벽 등반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이 샘솟아 내 마음은 바빠졌다. 잰걸음으로 주상절리길을 왕복하고, 곧바로 영덕으로 차를 몰았다. 영덕 읍내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하고 축산항에 도착했으나, 바람이 제법 세차고 쌀쌀했다. 하지만 등반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먼길 달려온 악우들에게 블루로드 해벽 등반의 맛이나마 보여주고 싶었다. 바람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오목한 해안에 자리한 블루로드 해벽이지만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탓에 오후엔 해가 거의 들지 않았다. 첫 루트에 줄을 걸 때는 손이 약간 시려웠으나, 몸에 열기가 올라온 둘째 루트부터는 그런대로 매달릴만 했다. 한기가 느껴질 때까지 부지런히 등반하고, 그때까지 해가 비치는 죽도산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울산과 영덕으로 떠나온 1박 2일 등반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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