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바위의 까칠하고 듬직한 질감을 느껴볼 때가 되었다. 벌써 남쪽 섬진강 주변의 매화는 만발했다고 한다. 바야흐로 봄이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아직 서울의 봄꽃은 이르지만 햇살이 비추는 동안의 기온은 완연한 봄날이다. 자연 암벽을 안전하고 즐겁게 등반하기 위해서는 차분히 바위와 친해지는 시간을 갖는 게 좋다는 생각이다. 바위의 질감을 맛보기 위해 오랜만에 불암산 슬랩을 밟아 보기로 한다. 발에 착착 감기듯 잘 붙는 릿지화 바닥창의 마찰력을 충분히 이용해서 슬랩을 오르는 기분이 상쾌하다. 영신 슬랩부터 시작해서 길게 이어지는 바윗길을 찾아 오른다. 드넓은 바위 사면 앞으로 확 트인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등반을 즐기는 시원한 기분이 남다르다. 답답한 실내 암장에서 운동할 때는 감히 느낄 수 없는 특별한 맛이다.
천보사를 거쳐서 불암사까지 내려간 다음에 정상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슬랩을 따라 다시 올라간다. 손가락 부상 이후로 실내 암장에서 몸을 추스르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몸이 어느 정도 가벼워졌다는 걸 자각하는 기쁨이 크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올망졸망한 바위에 올라 보기도 하고 소나무 가지를 철봉 삼아 매달려 보기도 하면서 즐겁게 오른다. 대규모 산악회가 시끌벅적 떠들면서 초입을 점령해버린 탓에 정상 바로 밑의 슬랩을 타지 못한 것이 약간 아쉽기는 했지만 바위와 친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정상을 찍고 내려와 한적하고 양지바른 테라스에서 좋아하는 노래 들으며 봄날의 행복감을 만끽한다. 하산길은 수락산으로 이어지는 덕릉고개 방향으로 잡는다. 고갯마루에서 수락산으로 건너가지 않고 불암산 둘레길을 통하여 오전의 출발지였던 상계역으로 돌아온다. 제법 긴 산행길이 되었다. 불암산 슬랩을 찾아 다니며 바위를 접하면서 봄날 주말의 만족스럽고 행복한 산행을 즐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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