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도 기다리던 봄이 찾아왔다. 어제 내린 봄비가 산속의 식물들을 깨끗하고 생명력 있게 만들었다. 연구 논문 하나를 어렵사리 완성하느라 계절의 변화도 잊고 살았다. 걸어서 출퇴근하는 구간에도 화려한 벚꽃이 만개한 가로수 터널이 있었지만 무심히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머리 속이 온통 논문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금요일 저녁 시간까지 일단락을 짓고 난 후에 느끼는 탈고의 기쁨은 잠시 동안이다. 긴장의 끈이 풀린 허탈감과 함께 체액이 빠져나간 상태의 생명체 같은 몸상태가 남는다. 아프지 않기 위해 몸을 다잡기로 한다.
이른 아침엔 흐리던 날씨였다. 창밖으로 오전의 햇살이 비치는 것을 보고 별안간 숲길이 걷고 싶어진다. 둘레길을 따라서 암장에 가기로 한다. 아파트에서 칼바위능선길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곧장 오른다. 산으로 계속 올라가지 않고 빨래골로 내려가는 오솔길을 따른다. 공초 오상순 시인의 묘지 부근의 봄이 무르익었다. 연초록 새싹이 돋아나고 산벚꽃이 만개한 골짜기를 보면서 카메라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국립재활원 앞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산으로 향한다. 암장에서의 운동 생각은 잊은지 오래다. 하나님의 선물 같이 이렇듯 좋은 봄날에 실내에서 운동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자연의 숨결을 대하는 것이 건강에도 훨씬 더 이득일 것이란 생각이다.
둘레길을 따라서 우이동 방향으로 계속 걷는다. 아카데미하우스 주변의 계곡에는 아름드리 산벚꽃이 즐비하다. 처음으로 가보는 이준 열사의 묘소 부근도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생동하는 봄의 숲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둘레길을 벗어나 복사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는 백련사 입구를 통해 진달래 능선으로 발길을 옮긴다. 능선길 좌우로 진달래가 한창이다. 진달래 꽃길은 대동문까지 길게 이어진다. 자주 다녔던 진달래 능선이지만 꽃이 절정인 시기를 잘 맞춘 건 처음이지 싶다. 대동문에 올라서서 산성길을 따르다가 칼바위능선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칼바위능선도 진달래능선 못지 않은 꽃길의 연속이다. 준비해온 식수가 떨어져 범골약수터로 내려온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빨래터 입구로 하산하여 다시금 둘레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온다. 바쁘고 단순했던 일상 때문에 빠져나갔던 체액이 다시금 차오르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길게 걸으며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에너지를 충전한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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