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밸리의 캠프4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한 다음 날은 7월 1일이었다. 우리는 7월의 첫날, 요세미티에서의 첫 번째 등반지로 머뉴어파일버트레스(Manure Pile Buttress) 사이트의 멀티피치 루트인 '너트크랙커(Nutcracker)'를 찾았다. 주차장에서 평지를 걸어 5분 이내에 루트 출발점 앞에 도착할 정도로 짧은 어프로치 덕택인지 '너트크랙커' 루트는 요세미티 밸리에서도 별점 5개의 높은 인기도를 자랑하는 등반지이다. '머뉴어파일(manure pile)'은 '두엄 더미'를 일컫는데, 멀리서 보는 바위의 형태가 어릴적 고향집 담장 앞에 쌓여 있던 퇴비 무더기를 연상시키는 모양새 때문인 듯했다. '버트레스(buttress)'는 성당 건축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벽을 지지해 주는 부벽을 의미하는 건축 용어로 바위의 전체적인 품새가 큰 벽에 기대어 있는 것처럼 놓여 있어서 '머뉴어파일 버트레스'라는 명칭이 붙은 것 같았다.
우리팀은 이른 아침인 06시 50분 즈음에 주차장에 도착했다. 당연히 오늘의 첫 번째 등반팀일 것으로 기대하면서 어프로치를 했으나, '너트크랙커' 루트 출발점 앞에는 이미 커플인 듯한 남녀 한 쌍이 등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은 등반력이 썩 뛰어난 편은 아닌 듯 보였다. 선등자인 남자가 1피치 크럭스 구간을 넘지 못하고 추락하는 등 매 피치 확보점에서 우리가 기다려야만 했다. '너트크랙커'는 전체 5피치로 구성된 최고 난이도 5.8의 멀티피치 루트이다. 가이드북에 기록된 난이도인 5.8을 보고 무시했다가는 큰 코 다칠 게 뻔할 정도로 그리 만만한 바윗길이 아니었다. 다양한 형태의 크랙을 따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등반선이 첫 피치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멋진 트레드 클라이밍 루트를 라스트로 오른 나는 정말 즐겁게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선등자인 윤선생님은 루트 전체에 볼트가 전혀 없기 때문에캠과 너트 등을 적절히 사용하여 스스로 중간 확보점을 구축하는 부담감을 극복하면서 등반해야 했다. 등반을 마치고 난 후에 새삼 윤선생님의 등반력을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