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국내등반여행

양산 천태산 알프스암장 - 2023년 2월 4일(토)

빌레이 2023. 2. 6. 09:52

봄은 기다림이다. 다른 계절에 비해 유독 봄은 빨리 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겨울 추위에 웅크리고 두터운 옷 속에 갇혀 지내야 하는 답답함에 지쳐갈 무렵이면 봄은 서서히 우리 곁을 찾아온다. 24절기는 태양의 황도 상 위치에 따라 계절적 구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 중 첫 번째 절기인 입춘(立春)이 바로 오늘이다. 달력에서 봄의 시작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날이다. 물론 위도에 따라 봄을 체감하는 시기에는 차이가 있다. 당연히 남녘에서의 봄이 빠를 것이다. 때마침 토요일이 입춘, 일요일이 정월 대보름날이어서 봄 기운을 느껴보고자 조금은 먼 남녘으로의 등반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새벽 5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대구-부산 고속도로 삼랑진 나들목을 빠져나와 경남 양산시의 천태사 고갯길 주차장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9시 반 경이다. 밀양시에 속하는 삼랑진을 통과할 때는 5일장이 서는 날인지 아침부터 거리에 제법 활기가 넘쳐 보였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생소한 고속도로들을 여러 개 거쳐왔지만, 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던 양산시에 난생 처음 발을 디뎌보는 데에는 불과 5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셈이다. 알프스암장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곳을 내 평생 동안 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약 20분의 어프로치 끝에 알프스암장에 닿았다. 인터넷 상에서 보았던 암장의 정겨운 모습들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감회가 남달랐다.

 

티 없이 맑은 하늘에서 정남향의 알프스암장으로 아낌 없이 쏟아지는 찬란한 햇살이 더이상 좋을 수가 없었다. 봄을 찾아 먼 길을 달려온 나그네를 반겨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천태사 골짜기와 그 아래 평야지대를 가로지르는 낙동강 물줄기는 내 마음을 편안히 어루만져 주었다. 클라이밍이 주목적인 여행이라지만 무리하지 않고 즐기자는 생각으로 온사이트 완등이 가능할 듯한 쉬운 루트들만 골라서 등반했다. 중간 볼트 개수가 5개 이하인 짧은 루트들이 많았지만, 루트마다 특색 있고 나름대로 오르는 동작들이 재미 있었다. 루트 명칭들도 모두 알프스와 관련된 익숙한 것들이어서 더욱 즐겁게 등반할 수 있었다.             

 

▲ 알프스암장 들머리. 이곳 주소는 경남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산 188-1.
▲ 들머리에서 20분 정도 오르면 나타나는 암장 입구.
▲ 암장은 옛 산성의 흔적처럼 남은 천태산 등산로를 따라 이어진다.
▲ 등산로 좌측 암벽에 루트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 넓고 평평한 쉼터와 벤치들이 잘 갖춰져 있다.
▲ 친절한 암장 안내판.
▲ 우리팀이 베이스캠프를 차렸던 데크는 유명 관광지 못지 않게 잘 꾸며 놓았다. 개척자분들의 노고와 정성이 암장 곳곳에 배어 있었다.
▲ '알펜로제(5.9)' 루트부터 올랐다. 벽에 적응이 안되서 그런지 표기된 난이도보다는 까다롭게 느껴졌다.
▲ '꾸떼(5.10d)'를 톱로핑으로 오르는 중. 중앙벽의 페이스는 홀드가 미세해서 크럭스를 통과하는 게 쉽지 않았다.
▲ 루트 명칭을 선명하게 표시해 놓은 덕택에 헷갈릴 염려가 없어서 좋았다.
▲ 막대 모양의 '바게트'를 배낭 측면 주머니에 꽂고 에귀디미디에 올라 발레블랑쉬 설원에서 캠핑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 '바게트(5.9+)' 루트는 첫 볼트를 올라서는 오버행 동작이 재미 있었다.
▲ '바게트' 루트를 완등한 후로는 서서히 몸이 풀렸다.
▲ '자일파트너(5.10a)' 루트를 등반 중이다.
▲ '자일파트너' 루트는 길지 않은 루트에 다양한 동작이 필요해서 즐겁게 올랐다.
▲ 확보점에서 등뒤로 펼쳐지는 풍경. 골짜기 사이로 낙동강 물줄기가 보인다.
▲ 루프 구간이 있는 '마터호른(5.11c)'과 '몽블랑(5.12a)' 루트가 유혹했으나 참기로 했다. 아직은 겨울바람이 차고 내 몸도 완전히 올라오지 않았다는 판단에서다. 먼 곳까지 와서 부상의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즐거운 등반여행이지 않은가?
▲ '몽블랑(5.12a)' 루트에 도전하는 건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알프스암장에 다시 찾아올 구실이라도 남겨 놓기 위해서.ㅎㅎ.
▲ '샤모니(5.10a)' 루트를 오르고 있다. 샤모니는 네 차례 방문했어도 여전히 다시 가고 싶은 그리운 산악도시다.
▲ '샤모니'는 페이스의 작은 홀드들을 찾아가는 재미가 남다른 루트였다.
▲ '에귀디미디(5.10a)' 루트도 가볍게 완등했다. 샤모니에 갈 때마다 케이블카로 올랐던 봉우리가 에귀디미디이다.
▲ '니데글역(5.10a)'을 등반 중이다. 몽블랑 등정을 위해 거쳐야 하는 니데글 역은 아직 가보지 않았다.
▲ 지금의 몸 상태에서 온사이트로 완등 가능한 루트들을 하나씩 등반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 '니~잘났다!(5.10a+)' 루트를 오르고 있다.
▲ '니~잘났다!'는 오늘 완등한 루트 중에서 가장 길어서 아주 재미 있게 오른 루트였다.
▲ '니~잘났다!' 루트는 첫 볼트를 올라서는 것이 크럭스였고, 위로 올라갈수록 홀드가 양호해서 오르는 재미가 컸다.
▲ 올 여름에 계획하고 있는 스위스알프스 트레킹 때 머물 예정인 산악도시와 같은 명칭의 '체르마트' 루트도 오르고 싶었다.
▲ '체르마트(5.9)' 루트는 짧지만 첫 볼트를 통과하는 오버행 동작이 재미 있었다.
▲ '체르마트' 바로 우측에 있는 '체르마트2(5.10a)' 루트는 좀 더 재미 있었다.
▲ 입춘날에 처음으로 찾아간 알프스암장에서 매우 흡족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 등반을 마치고 통도사 부근의 숙소로 이동하는 길은 낙동강변으로 길게 이어졌다. 봄이 오면 환상적인 드라이브 코스가 될 듯했다.
▲ 낙동강에 비친 석양을 바라보며 숙소로 이동하는 여정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