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국내등반여행

월출산 연실봉 암장 - 2022년 11월 20일(일)

빌레이 2022. 11. 21. 16:52

고창 할매바위에서의 등반을 마치고 자동차로 한 시간 반 정도를 달려서 영암 월출산 천황사 입구의 민박집에 도착하니 주위는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정성민 선생님을 비롯한 다섯 분의 광주 바자울산악회 회원님들이 음식점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우리 여섯 명의 일행를 푸짐한 저녁식탁으로 환영해 주셨다. 닭가슴살 육회에서 황칠백숙까지 코스로 이어지는 남도식 닭한마리 요리는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환상적인 맛을 자랑했다. 식사 후에는 밤하늘 별빛 아래에 타오르는 모닥불 주위로 모든 멤버가 모여들었다. 광주팀과 서울팀이 하나 되어 암장 개척기, 등반 후일담, 소소한 일상 이야기 등을 주고 받는 정겨움 가득한 시간이 흘러갔다.

 

간밤엔 찜질방이 부럽지 않은 민박집 온돌방에서 오랜만에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간단한 조식 후에 산행 준비를 마치고 일행이 모두 모여 출발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월출산에서의 암벽등반은 물 건너 갔다며 다른 등반지로의 이동을 고민하던 차에 다행히 비는 잦아들었다. 등반은 못 하더라도 새롭게 개척된 연실봉 암장이나마 구경하자는 생각으로 산행에 나섰다. 남도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산죽과 동백나무 숲이 사시사철 푸르름을 잃지 않는 천황사 입구의 등로는 언제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 교가에도 등장하는 월출산은 어린시절부터 꾸준히 찾던 산이기에 마음의 고향처럼 포근하게 다가오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천황사를 거쳐 구름다리로 향하는 오르막길 중간에서 바위에 표시된 화살표를 보고 좌측 샛길로 접어든다. 잠시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 트래버스 하니 불현듯 연실봉의 드넓은 슬랩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정성민 선생님의 설명에 의하면 연실봉은 '연인들의 방'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연실봉 정상 부근에 있는 조그만 동굴을 염두에 두고 바자울산악회의 어느 선배님께서 지으신 명칭이라는 것이다. 연실봉 암장은 예전부터 간간히 등반하던 곳이었는데 최근엔 거의 잊혀진 바위였다고 한다. 정선생님을 비롯한 광주 바자울산악회 회원분들이 열정을 모아 최근에 새롭게 부활시켜서 현재는 14개 루트가 완성되어 있는 상황이다. 연실봉 위에 있는 매봉 암장과 연결하면 설악산이 부럽지 않은 대자연 속의 멋진 멀티피치 루트가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암장 주변은 근래에 개척된 암장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평평하게 잘 다져진 베이스캠프는 여느 유명 하드프리 암장 못지 않고, 루트 하나 하나가 깨끗하게 잘 청소되어 있어서 등반의 묘미를 한껏 누릴 수 있을 듯했다.  실제로 등반해 본 '바보산꾼' 루트는 45미터 길이의 단 피치에 슬랩, 페이스, 크랙, 침니까지 다양한 형태의 바위가 혼재하여 정말 등반하는 재미가 느껴졌다. '바보산꾼'의 크랙과 침니는 최근에 청소한 흔적이 뚜렷했는데 개척하신 분들의 노고가 어떠했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등반 중에 다시 비가 내리는 바람에 멀티피치 루트를 오르고자 했던 소망을 이루지 못하고 하산해야 해서 못내 아쉬웠지만, 훌륭한 암장을 구경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성과였다. 소중한 추억을 안겨 준 이번 월출산 등반에서 여러 모로 서울팀을 극진히 환대해 주신 광주 바자울산악회의 모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바이다. 아울러 내년 봄에는 좀 더 여유로운 일정으로 월출산 등반을 계획해 보면 좋겠다는 희망을 마음 속에 품게 되었다.     

         

▲ 할매바위 등반을 마치고 저녁에 도착하여 월출산 천황사 입구의 식당에서 먹은 남도식 닭한마리 요리의 맛은 가히 일품이었다.
▲ 모닥불 가에 모두 함께 둘러서서 별빛도 구경하고 이런저런 정담 나누는 시간이 무척 즐거웠다.
▲ 아침 산책 시간에 둘러본 등산로 입구의 모습. 흐리지만 영상 10도 이상의 기온이어서 등반에 대한 기대를 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예전엔 보지 못했던 탐방안내센터에 있는 월출산 등산 안내도. 주등산로는 거의 다 밟아 보았다.
▲ 천황사 입구의 민박촌에서 올려다 본 풍경. 표지석 좌측 정상이 사자봉이고, 그 아래로 매봉, 연실봉, 시루봉 등을 가늠할 수 있다.
▲ 천황사로 오르는 등로는 늦가을의 정취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 산죽의 푸르름과 단풍의 화려함이 공존하는 것도 남도의 특색이다.
▲ 천황사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오른다.
▲ 잠시 천황사 경내를 구경하고....
▲ 다시 구름다리로 향하는 등로를 따른다.
▲ 연실봉은 시루봉 암장에 가기 전에 좌측 바위에 새겨진 하얀 색 화살표를 보고 샛길로 접어든다.
▲ 샛길로 접어든 후 산허리를 따라서 잠시 이동한다.
▲ 오솔길 중간에 이 이정표를 발견하면 연실봉 암장이 코앞이다.
▲ 연실봉의 드넓은 슬랩이 불현듯 눈앞으로 다가온다.
▲ 연실봉 암장의 모든 루트는 깨끗하게 잘 청소되어 있다.
▲ 현재는 14개 루트가 개척되어 있지만, 상부의 오버행 바위를 포함한 여러 곳에 새로운 루트를 개척할 여지가 무궁무진해 보였다.
▲ 기범씨가 '바보산꾼' 루트를 오르고 있다.
▲ 45미터 거리의 '바보산꾼' 루트를 서울팀이 차례로 등반 중이다. 김선생님과 서선생님의 등반 모습.
▲ 은숙씨, 은경친구 순으로 '바보산꾼'의 침니 구간을 통과 중이고, 내가 라스트로 오르는 중이다.
▲ 톱앵커에서의 인증사진.
▲ 톱앵커에서의 조망은 시원하다. 저수지 위의 편백나무 숲에는 어릴적 어머니를 따라 물 맞으러 왔던 추억이 깃든 작은 폭포가 있다.
▲ 중앙벽의 루트를 광주 바자울산악회 클라어머분들이 등반 중이다.
▲ 맨 우측에는 멀티피치로 연실봉 정상에 오르는 루트가 있는데, 다시 비가 내리는 바람에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없었다.
▲ 하산길에 바자울산악회의 교수님께서 '식족암'이라 불렀다는 볼더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예전에 볼더링 하다가 발을 다친 클라이머들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 식족암 부근이 예전엔 캠핑사이트였다. 중학생 시절에 이곳에서 보이스카웃 훈련을 했던 기억이 새로운데, 지금은 산죽이 우거져 있었다.
▲ 등로를 덮고 있는 동백나무 숲을 통과하는 동안은 비도 맞지 않았다.
▲ 호랑이 무늬가 선명해서 '호구'라 불리는 천황사의 강아지들과 노는 여유를 부리면서...
▲ 등반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하산하는 마음 한켠엔 내년 봄에 다시 오고 싶다는 소망이 담겨 있을듯...
▲ 가을비가 오락가락 하는 하산길 속에서 오랜만에 만추의 서정을 만끽했다.
▲ 하산길이 여유 있으니 '영암아리랑' 기념비도 구경하고...
▲ 창립 50주년을 넘긴 광주 바자울산악회에서 제작한 연실봉 암장 개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