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아들의 결혼식

빌레이 2022. 11. 3. 08:53

지난 주 토요일, 10월 29일에 아들의 결혼식을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예식장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던 오전 10시 반 즈음에 집안의 휴대폰들이 일제히 비상 경고음을 울렸다. 충북 괴산군에서 규모 4.1의 지진이 발생했다는 안전 안내 문자였다. 긴장감 속에 잠시 TV 방송을 지켜보니 우려할 만한 피해는 발생하지 않은 듯했다. 결혼식이 취소되는 건 아닌지 순간적으로 아찔했지만 그나마 다행이지 싶었다. 늦은 오후 시간인 4시 40분부터 예정된 결혼식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피로연까지 모든 절차가 사소한 문제 하나 없이 깔끔하게 마무리 되었다. 내 입장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가족행사인 아들의 결혼식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신 많은 분들의 애정 어린 손길에 다시금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올리는 바이다.

 

관혼상제(祭) 중에서 오늘날의 부모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관문은 자식의 혼례일 것이다. 우리 부부는 지난 겨울의 양가 상견례부터 모든 결혼식 준비 과정을 가능하면 주인공인 아들과 며느리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서 진행하기로 했다. 결혼식에 관련된 세부적인 사항들은 신랑 신부가 거의 다 하는 바람에 우리 부부는 크게 신경 쓸 일은 없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참 대견하고도 고마웠다. 장인어른이 우리집에서 암 투병 중이고, 안사돈께서도 항암 치료를 받고 계신 악조건 속에서 아들 부부는 흔들림 없이 의젓하게 결혼식 준비를 잘 해 주었다. 예식장에서 나도 몰래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아들 녀석이 자라온 세월에 대한 감회와 최근의 어려운 사정들이 얽힌 복잡한 감정이 순간적으로 올라왔던 모양이다.     

 

아직은 실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코로나 시국이므로 애초에 결혼식은 간소하게 치르고자 계획했었다. 하객은 양가의 가족 친척과 신랑 신부의 지인들로 한정하여 모시기로 했다. 혼주인 우리 부부의 지인들에게는 서운할 수도 있지만 일부러 청첩장을 돌리지 않았다. 지방에 거주하는 절친들과 등반 친구들에게도 결혼식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신랑과 신부를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혼주의 손님으로 의무감에 사로잡혀 결혼식에 참석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평소의 지론을 실천한 것으로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다. 코로나 사태 속에서 결혼식을 취소하고 다시 날짜를 잡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속출했던 까닭인지 그간 결혼식 문화도 많이 변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주례 없는 결혼식이 대세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아들과 며느리에게 짧은 덕담을 건네는 것으로 주례사를 대신했다. 4분이 넘지 않는 간단한 덕담이라고는 하지만 원고를 수 차례 수정하고 그때마다 낭독을 연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들과 며느리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넨 덕담의 원고를 여기에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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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랑 지우의 아버지이고, 신부 민지의 시아버지가 될 ○○○입니다. 소중한 주말 시간에 저희 아이들 결혼을 축하해 주시기 위해 함께 해 주신 하객 여러분과 양가 친지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3년 전까지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를 맡은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때마다 적잖은 부담감을 안고 주례사를 고심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근래엔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주례에 대한 부담에서 해방된 것 같아 내심 기뻤습니다. 그런데 이 ‘주례 없는 결혼식’에서는 ‘부모님의 덕담’ 순서가 사실상의 주례사란 것을 알고, 역시나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다”란 진리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우리네 삶이 기쁘고 행복한 일들로 가득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희노애락이 얽혀 있는 복잡다단한 일상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톨스토이 선생의 <모두의 책임>이란 제목의 다음 글로부터 배울 수 있습니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며, 사람은 사랑해야 한다. 사랑하는 대신 서로에게 해를 입힌다면 이것은 새가 헤엄치고 물고기가 나는 것처럼 괴상한 일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키우고 온 세상에 퍼트리는 것은 모두의 책임이다.” 한 마디로 사람은 오직 사랑하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민지와 지우는 오늘의 축복받은 결혼이 있기까지 많은 분들의 따뜻한 사랑과 지극한 정성이 깃들어 있음을 명심하기 바란다. 민지, 너의 해맑게 웃는 얼굴과 곱고 예의 바른 말솜씨는 첫 만남부터 우리 부부를 흐뭇하게 해 주었단다. 앞으로도 그 환한 미소와 예쁜 마음 변치 않기를 바란다. 지우, 너는 아들로서 어렸을 때부터 한없는 기쁨을 주었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는 바로 네가 민지를 우리에게 소개했던 순간이란다. 보석처럼 빛나고 아름다운 민지를 한결 같이 아껴주고 사랑하기 바란다. “좋다”는 “조화롭다”로, “나쁘다”는 “나 뿐이다”로 해석하는 것처럼 좋은 결혼 생활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 사람이 조화를 잘 이루어야 한다. 오래도록 행복한 가정을 가꾸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태도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란다. 상대의 자유를 존중하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서로 응원하다 보면 자연스레 두 사람은 아름다운 부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신랑 신부를 축하해 주시기 위해 귀한 시간 내주신 내빈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 고마운 마음 늘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아들 부부가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우리 부부는 아직 가보지 않은 하와이에서 신혼여행 중인 아들 녀석이 보내온 사진이다. 한국에서는 잘 가지 않는 등산을 했다고...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