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인수봉 거룡길 - 2021년 6월 27일(일)

빌레이 2021. 6. 28. 06:56

비 개인 다음 날 아침의 하늘은 한결 더 높고 푸르다. 구름 조각들이 듬성듬성 남아 있지만 등반하기 더없이 좋은 날씨다. 아침 8시 즈음에 도선사주차장에 도착한다. 기범씨가 새벽 등산을 마치고 빠져나가는 차의 빈 자리를 매의 눈으로 발견하여 곧바로 주차한다. 오늘 등반이 잘 풀릴 듯한 예감과 설레는 가슴을 안고 인수봉 남벽 앞으로 접근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작년 10월 중순에 고통스런 허리 통증을 처음으로 겪었던 장소가 바로 인수봉이었다. 등반 도중에 악우들을 암벽에 남겨두고 나 홀로 조심스레 하산해야 했던 그날 이후로 오늘이 첫 인수봉 등반이다.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단단해지고, 비 온 후에 맑게 개인 하늘이 더욱 푸르듯 척추관협착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내 몸은 한결 더 건강해지고 가벼워졌다. 내 삶에서 클라이밍이 더욱 소중해졌고, 예전보다는 한층 더 즐거워졌다.

 

'거룡길'은 예전부터 오르고 싶던 바윗길 중의 하나다. 인수봉 남면 중단에서 동면 끝까지 가로로 길게 이어지는 너비 2미터 정도의 밴드는 멀리서 보면 커다란 바위를 휘감고 있는 한 마리의 거대한 용처럼 보인다. 그 용의 머리 부분에 '거룡길' 루트가 자리한다. 기범씨의 선등으로 시작된 거룡길 첫 피치는 40미터 가까운 등반 거리의 수직벽에 자유등반 난이도가 5.12b에 이르는 크럭스가 버티고 있는 멋진 구간이다. 기범씨의 확보를 받으면서 쎄컨으로 오른 나는 당연히 크럭스를 고정 슬링에 오른 발을 끼우고 일어서는 인공등반 방식으로 통과했다. 둘째 피치는 밴드를 따라서 이어지는 양호한 손홀드를 잡고 트래버스 하는 구간이다. 중간 볼트가 없어서 선등자는 캠으로 중간 확보점을 구축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거룡길' 셋째 피치부터는 2피치 확보점에서 좌측으로 진입하여 어려운 슬랩으로 가야 하지만, 우리 팀은 정상에 빨리 도착하기 위해서 비어 있는 직선 루트의 슬랩과 '크로니길'의 크랙, '여정길' 마지막 피치의 슬랩을 연결해서 등반했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거룡길' 전체 피치를 온전히 등반해볼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화창한 날씨 속의 인수봉 정상에서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기범씨표 에스프레소 커피를 곁들인 행복한 점심시간을 가졌다. 정상에서의 여유로운 망중한을 한껏 즐긴 후에 하강하여 남은 시간은 그늘진 남벽의 스포츠클라이밍 루트에서 연습하는 것으로 보냈다. '꾸러기 합창', '학교B', '우리들의 만남' 루트에 차례로 매달렸다. 시종일관 모든 순간이 행복했던 올해의 첫 인수봉 등반을 알차고 보람차게 즐길 수 있었음에 감사하는 마음이다.               

 

▲ 거룡길 1P 후반부를 쎄컨으로 등반 중인 내 모습과 확보 중인 기범씨가 보인다.
▲ 하루재를 지나서 바라본 비 개인 다음 날의 인수봉은 더욱 선명하다. 인수봉 중상단을 가로지르는 폭 2미터 전후의 밴드는 남면에서 동면 끝까지 이어진다. 사진에서도 귀바위 아래의 페이스에 사선으로 뻗어내린 큰 밴드가 선명히 보인다. 
▲ 어제 내린 비를 자양분 삼아 돋아난 버섯이 눈길을 끌었다. 하루재를 넘어서는 등산로 옆에서 보았다.
▲ 인수봉 남벽을 향해 오르는 길이다. 작년 10월 중순엔 이 길을 따라서 극심한 허리 통증을 참으면서 나 홀로 조심스레 하산했었다. 
▲ 기범씨가 거룡길을 출발하는 순간이다.
▲ 거룡길 1P는 페이스의 크랙을 따라 오르는 루트다. 완력을 필요로 하는 구간이 많지만 다양한 자세로 등반하는 재미가 있었다.  
▲ 기범씨도 오랜만의 거룡길 등반인지라 크럭스를 자유등반으로 돌파하기 위한 동작을 생각하기 위해 배낭을 벗어 놓고 잠시 쉬는 중이다. 
▲ 크럭스 구간을 통과한 직후 밴드에 진입해서도 살짝 긴장해야 하는 구간이 있었다. 
▲ 긴장감을 안고 거룡길 첫 피치를 출발하는 순간이다. 
▲ 출발 전의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후등이지만 그런대로 즐겁게 오를 수 있었다.
▲ 크럭스 구간에서는 고정 슬링에 오른 발을 끼우고 왼발은 볼트 위를 밟고 일어서서 밴드에 있는 손홀드를 잡았다. 
▲ 거룡길 첫 피치를 오른 후의 만족감은 남달랐다. 1P 확보점에서 좌측으로 고개를 돌리니 백운대가 선명히 보였다. 
▲ 거룡길 2P는 밴드를 따라서 트래버스 하는 구간이다. 손홀드가 양호하여 예상보다는 쉽게 등반했다.
▲ 거룡길 2P 확보점에 모여 있는 클라이머들이 발 아래로 보인다. 우리팀은 슬랩을 직상해서 크로니길 7P 확보점 앞까지 단번에 올랐다.
▲ 기범씨가 크로니길 8P의 잘 생긴 크랙을 선등 중이다. 
▲ 크로니길 8P의 곧게 뻗어내린 크랙은 스태밍 자세로 오르기에 안성맞춤이어서 등반이 즐거운 구간이다.
▲ 여정길 마지막 피치의 제법 짭짤한 슬랩을 선등 중인 기범씨의 모습이다.
▲ 등반 중에 우측에서 인호씨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반갑게 화답하고 있다. 우리는 작년 여름 설악에서 함께 일주일 동안 등반했었다. 
▲ 여정길 마지막 확보점 위를 올라서면 정상이 코앞이다. 
▲ 돌출된 암각에 중간 확보점을 구축하는 방법을 기범씨가 알려주고 있다. 
▲ 자신이 운영하는 암장 회원들과 함께 온 인호씨를 인수봉 정상에서 반갑게 만날 수 있었다.
▲ 인수봉 정상의 바위그늘에 앉아서 기범씨표 커피를 곁들인 점심을 먹고 망중한을 즐겼다.
▲ 도봉산을 배경으로 올해 첫 인수봉 등반의 정상 인증사진을 남겨본다.
▲ 정상에서 만경대를 바로보고 있는 내 모습을 악우가 카라비너 프레임 속에 포착해 주었다.  
▲ 정상에서 하강한 후에 남벽의 '꾸러기 합창'부터 올랐다.
▲ 밴드를 따라 이어지는 '꾸러기 합창'은 손가락 힘을 요하는 루트다.
▲ 우리팀 아래에서 청맥길을 오르고 있는 해숙누님의 멋진 모습이 포착되었다.
▲ 학교B 루트도 초반부는 돌출된 밴드를 따라 이어진다.
▲ 학교B 루트는 밴드를 벗어난 이후 구간이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졌다. 
▲ 몸이 가벼워지니 학교B 루트의 밴드를 따라가는 구간은 예전보다는 한결 더 편하게 오를 수 있었다. 
▲ 학교B 루트의 밴드를 올라서고 있는 중이다.
▲ 학교B 루트에서는 사진 속에서 오르고 있는 부분이 내게는 크럭스였다.
▲ 거의 모든 클라이머들이 하산해서 주위가 조용해진 시간에 '우리들의 만남' 루트를 기범씨가 선등 중이다.
▲ 내가 톱로핑 방식으로 '우리들의 만남'을 오르면서 장비를 회수하는 것으로 오늘의 등반을 마무리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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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기범씨가 촬영해준 내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