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강촌 유선대 암장 - 2021년 7월 10일(토)

빌레이 2021. 7. 11. 09:28

일기예보가 하룻밤 사이에 급변했다. 지난 목요일에 확인한 춘천시 지역의 강수확률은 토요일 하루 종일 50% 미만이었다. 날씨에 대한 별 걱정 없이 강촌 유선대 암장에서의 등반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당일 새벽 6시, 집을 나서기 직전에 확인해본 날씨는 비가 올 가능성이 70~80%로 높아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모모, 기철, 코헤이를 차례로 픽업하여 강촌으로 향하는 경춘가도를 달리는 동안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했다. 대성리 부근을 지날 때는 시야가 흐리고 도로가 잠겨 천천히 운행해야 할 정도로 장대비가 쏟아졌다. 강선사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엔 다행스럽게도 비는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우선 암벽의 상태를 파악한 후에 플랜B를 상의해 보기로 했다. 우산만 챙겨서 맨 몸으로 올라간 유선대 암장은 예상대로 곧장 등반할 상태는 아니었다. 오목한 오버행 아래의 벽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루트가 젖어 있었다. 하지만 이후로 비가 오지 않는다면 몇몇 루트에 붙어볼 수는 있겠지 싶었다. 유선대 정상을 거쳐 강선사로 내려오는 산길을 걷는 동안 비는 거의 멈춰 주었다. 간간히 구름 사이로 햇살이 드러나기도 했다. 자연스레 플랜B에 대한 생각은 까마득히 사라져 버렸다. 등반장비와 소나기를 대비한 타프를 짊어지고 다시 유선대 암장으로 향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 나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졌다. 날씨 탓인지 하루 종일 암장엔 우리팀 외에 아무도 오지 않았다. 변화무쌍한 일기 속에서도 늦은 오후 시간인 7시를 넘겨 하산할 때까지 오롯히 우리들만의 등반을 안전하게 즐길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아침 8시 20분 경에 둘러본 유선대 암장은 오버행 아래의 벽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에 젖어 있었다.
▲ 걸어서 올라간 유선대 정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강촌역 위로 구름이 서서히 걷히는 듯했다.
▲ 유선대 정상에서 바라본 북한강과 좌측의 삼악산 풍경. 운해가 펼쳐지는 풍광이 제법 운치있었다.
▲ 유선대 정상을 오르내릴 때에도 비에 젖은 바위가 미끄러워 매우 조심스러웠다.
▲ 전망대릿지의 종착점에 있는 데크에서 내려다 본 북한강. 등반에 대한 희망을 안겨주듯 구름 사이로 간간히 햇살이 비춰 주었다. 
▲ 1시간 30분 남짓의 산행을 마치고 강선사로 내려오는 동안 비는 완전히 멈춰 있었다.
▲ 강선사 경내의 코끼리 두 마리 위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특이한 암각 부조가 눈길을 끌었다.
▲ 암장 앞에 비를 피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를 구축하고, 11시 15분 경부터는 등반에 나설 수 있었다. 
▲ 오버행 아래라서 젖어 있지 않은 '101동(5.10a)' 루트부터 올랐다.
▲ 물기가 완전히 마르지 않은 상태라서 평소보다는 훨씬 더 긴장감이 높았던 '101동' 루트를 완등한 만족감은 또다른 경험이었다.
▲ 시나리오 작가인 기철씨는 야행성인지라 다른 멤버들이 등반하는 동안 베이스캠프에서 부족한 잠을 청했다. 
▲ 일본인 대학원생인 코헤이는 같은 실내암장을 다니지만 자연암벽에서는 나와 첫 등반이다.
▲ 코헤이는 클린이(클라이밍+어린이)답지 않게 적극적으로 등반했다.
▲ 좌벽의 '참나무(5.10a)' 루트도 예전보다는 까다롭게 느껴졌으나 바위 표면이 말라가고 있어서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었다.
▲ 코헤이는 실내암장에서 누구보다 실력 향상 속도가 빠르다. 하지만 자연암벽은 고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더 힘들다고 한다.  
▲ 코헤이는 중간에 몇 차례 쉬기는 했지만 23m에 이르는 제법 긴 루트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랐다.
▲ 기철씨는 잠에서 깬 직후의 비몽사몽 상태로 등반을 시작했다. 
▲ 잠이 부족하면 몸이 무거운 건 당연하다는 듯 실내암장에서보다 조금은 힘겨운 몸놀림이었지만 기철씨도 열심히 매달렸다.
▲ '참나무' 루트의 앵커에 톱로핑을 위해 설치한 장비를 내가 회수한 후 점심시간을 가졌다.
▲ 점심 후에 기철씨가 '101동' 루트를 오르고 있다.
▲ '101동' 루트는 첫 번째 오버행 턱까지의 동작이 만만치 않고, 그 이후로도 우측 사선으로 이동하는 언더크랙을 잘 찾아야 한다. 
▲ 오후엔 간간히 소나기가 흩뿌렸으나 기철씨와 코헤이도 즐겁게 오를 수 있을 듯한 '통천문' 루트를 등반하기로 했다.
▲ 내가 '통천문' 1P 확보점에 도착한 순간부터 빗줄기가 굵어져 다른 멤버들은 톱로핑으로 연습하기로 했다.
▲ 평소엔 쉬운 루트지만 물을 잔뜩 머금은 이끼가 많은 '통천문' 1P는 그리 쉽지 않았다. 미끄러운 바위를 오르는 기철씨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 소나기가 멈춘 후에 다시 '통천문'을 통해 정상에 오르기로 한다.
▲ '통천문' 2P는 등반거리 30m에 육박하는 거대한 침니여서 아래에서 보면 위압감이 느껴지지만 홀드가 양호해서 등반이 즐거운 구간이다.
▲ 코헤이는 익숙하지 않은 침니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상에 안착했다. 비가 웬만히 와도 통천문 2P의 침니는 등반이 가능할 듯했다.
▲ 기철씨는 밤샘 작업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통천문' 2P에서 경미한 근육경련이 느껴져 중간에 먼저 하강해야 했다.
▲ '통천문' 루트 마지막 앵커에 도착한 코헤이의 꽉 다문 입술이 해냈다는 성취감을 표현하는 듯하다.
▲ 우리팀이 '통천문'을 등반할 때는 소나기가 멈춰 주었고, 정상에 도착했을 땐 햇살까지 비춰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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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촌 유선대 암장 개념도

 

 

좌벽

샹그리라 가는길 : 샹그리라(=숨겨진 이상향)를 찾아가는 어느 등반가의 모습.

수류화개 : 물이 흐르고 꽃이 핀다 = 삼라만상 본연의 모습.

작은 언덕 : 고빗사위 구간에 작은 턱을 넘어서야 한다.

오르락 : 오름짓의 즐거움.

시월이 가기전에 : 을미년(2015) 10월의 마지막 날에 마무리하다.

참나무 : 코스가 끝나는 곳에 참나무가 있다.

벚꽃 피는 날 : 벚꽃이 활짝 핀날 이곳에 올라 아래 세상의 정취를 느끼다.

바다리 : 맹렬하게 달려드는 바다리벌과 정열적인 등반 초심자의 모습이 닮았다.

 

작은 벽

초심 : 암벽등반 입문 시절의 겸손함을 잊지말자.

101 : 백의 첫번째 코스.

시동 : 개척작업에 시동을 걸다(개척시작).

102 : 백의 두번째 코스.

 

큰벽

201 : 101동을 오르고 좀 아쉽다면 올라보라. 작은벽 2층에 있는 첫번째.

202 : 102동이 짧아 연속하여 오르는 재미를 더했다. 작은벽 2층에 있는 두번째.

코난발가락 : 엄지발가락에 힘을 꽉 줘야 산다(만화영화 “코난”에 나오는 장면).

EMPTY : 천공작업중 오일이 바닥나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야만 했다.

그리움 : 지난날 등반하던 추억들과 사람들의 모습이 그리움으로 피어 올랐다.

프리텐션(Pre-tention) : 미리 긴장을 가하다.

HANBIT : 크고 넓은 마음으로 하나되어 순수하고 참된 산악인을 상징한다.

하늘문 : 하늘에 닿을 듯 정상으로 향하다.

 

우벽

통천문 : 하늘과 통하는 문(오를수록 하늘이 넓게 펼쳐진다).

잔트가르 : 몽골어로 “최강의 사내”를 의미한다.

챙이올 : 내가 그랬듯이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처음 시작할 당시를 잊지 말자).

선녀문 : 달밤에 보면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 올 듯 신비스럽다.

바람개비 : 시원한 바람이 불면 하염없이 돌아가는 바람개비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