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엔 잠을 설쳤다. 변화무쌍한 일기 탓에 어제 불암산 천지암장에서는 점심시간 직후에 철수해야 했다. 등반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일찍 귀가해서 저녁 때 치즈라면을 먹고 평소와 달리 커피를 한 잔 마셨던 것이 화근이었다. 한창 성장호르몬이 분비될 심야 시간에 잠이 깨어 소소한 업무를 처리하느라 몸에 쌓인 피로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수면시간이 충분치 않으면 맥을 못추고 피곤해 하는 내몸을 잘 알지만, 어제의 짓궂던 날씨에 대한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화창하게 개인 이 좋은 봄날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다. 아침 8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자동차로 한 시간여 거리에 있는 파주의 거인암장을 다시 찾았다. 올 들어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암장 초입에서 산뜻한 분홍 빛깔의 꽃잔디가 반겨주고 송곳처럼 오똑하게 솟아오른 암봉 주위를 신록이 감싸주고 있으니 새로운 곳에 온 듯한 신선함과 활기찬 기운이 감돈다. 등반 계획을 세울 때 어디를 갈까 조금 망설였었는데 거인암장에 다시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은 거인암장에 와서 처음으로 1, 2, 3암장의 바윗길을 골고루 만져 본 하루였다. 오전엔 우리팀 외에 아무도 없던 3암장에서 '일마'와 '선물' 두 루트를 오르내리는 것으로 몸을 풀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1암장으로 이동하여 맨 우측부터 차례대로 '기봉', '오리온', '봄향기', '내고향', 4개의 루트를 등반했다. 잠깐 동안의 휴식시간을 갖고 베이스캠프 앞의 2암장에 있는 '자유'와 '자성' 루트에서 정리운동을 겸한 오름짓을 하는 것으로 보람차고 뿌듯했던 오늘의 등반을 마무리했다. 종일토록 노곤함이 가시지 않은 몸상태는 별로 좋지 않았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열심히 매달린 덕택에 얻은 등반의 만족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암장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웅담초교 옆에 자리한 <돌가마집>에서 가진 뒷풀이 시간도 기억에 남는다. 커다란 돌판 위에 구워진 오리고기의 맛이 일품이었다. 거인암장을 찾을 이유를 하나 더 발견한 듯한 작은 기쁨이 있었다.
'암빙벽등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적봉 써제이길 - 2021년 5월 2일(일) (0) | 2021.05.02 |
---|---|
원주 여심바위 - 2021년 4월 24일(토) (0) | 2021.04.25 |
불암산 천지암장 - 2021년 4월 17일(토) (0) | 2021.04.17 |
강화도 아만바히 암장 - 2021년 4월 11일(일) (0) | 2021.04.12 |
강촌 유선대 암장 - 2021년 4월 10일(토) (0) | 2021.0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