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원주 여심바위 - 2021년 4월 24일(토)

빌레이 2021. 4. 25. 06:13

간현암벽장에서 가깝지만 자동차로 접근하는 길이 완전히 다른 여심바위를 처음으로 다녀왔다. 지금은 주변이 공사장이고 자전거도로를 위한 데크 다리가 암벽 앞을 가로막고 있어서 조금 어수선한 분위기였으나, 등반 루트들은 내 수준에서 즐기기엔 나무랄 데 없이 좋았다. 총 16개 바윗길 중에서 난이도 5.10c까지의 11개 루트를 부지런히 오르내렸다. 자연바위의 까칠한 감촉이 전해지는 질감의 직벽과 오버행 구간들로 구성된 루트들 하나 하나가 특색 있게 오르는 재미를 맛볼 수 있었다. 갈 때는 이른 아침인 6시 45분에 출발했는데도 동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가기까지 길이 막히는 바람에 여심바위 앞까지 2시간이 넘게 소요되었다. 등반을 마치고 미리 준비해 간 음식으로 베이스캠프에서 저녁식사까지 해결한 다음 판대천을 따라서 간현암벽장으로 산책을 다녀온 후, 느긋하게 출발한 덕택에 집으로 귀환할 때는 별다른 교통체증을 겪지 않았다.   

 

여심바위의 시그니처 루트라 할 수 있는 '등반여신(25m, 5.10c)'의 상단 크럭스 구간에서 한 번의 로프 테이크를 받는 바람에 온사이트 완등 기회를 날려버린 순간이 조금은 아쉬웠다. '봄길(26m, 5.10b)' 루트에서는 올 들어 처음으로 시원스런 추락을 경험했다. 루트 상단의 사선으로 된 오버행 턱을 올라서는 구간에서 왼발을 대충 디뎠던 것이 화근이었다. 추락 후 곧바로 다시 붙어서 올라보니 도대체 왜 그곳에서 추락했는지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쉽게 돌파할 수 있었다. 선등할 때는 특히나 한 순간이라도 방심하거나 신중하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다시금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내심 자연암벽에서 일부러라도 추락을 한 번쯤 연습하고 싶었는데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런 부상이 없었던 깔끔한 추락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신선한 충격 같은 느낌마저 있었다. 추락 순간에 확실한 빌레이를 봐준 든든한 자일파티인 은경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 1번 루트인 좌벽의 '텐 시작'에 붙는 것으로 여심바위에서의 첫 등반을 시작했다. 온사이트 완등.
▲ 중앙벽에 등반 안내도가 친절하게 설치되어 있다. 오늘은 총 16개 중 11개 루트를 올랐다. 아직은 완력이 부족한 탓에 5.10d와 5.11급의 고난도  루트는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여심바위에 다시 와야 할 목표가 남은 것이다. 
▲ 여심바위의 빌레이 스테이션은 모래가 쌓여 있어서 로프 깔개를 사용해도 먼지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암벽 앞의 자전거도로용 데크 다리는 등반에 전혀 지장을 주지는 않았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간현관광지 개발 공사가 마무리 될 시점엔 암장 주변의 바닥까지 깨끗이 단장되어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등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등반 출발점 앞에도 작은 명패가 있어서 루트 식별이 용이했다.
▲ 좌벽의 2번 루트인 '송이 송이'를 등반 중이다. 상단의 오버행 구간이 크럭스다. 온사이트 완등이었는지, 한 번의 "테이크"를 외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 중앙벽의 '일취월장' 루트는 다른 팀에서 걸어 놓은 퀵드로를 사용해서 올랐다.
▲ '일취월장'을 등반 중이다. 온사이트 완등.
▲ 예상치 못한 추락을 맛보았던 '봄길' 루트를 오르고 있다.
▲ 자일파티인 은경이가 톱로핑 방식으로 '봄길'의 크럭스 구간에 진입하고 있다. 사진 속의 사선 오버행 구간을 올라서는 순간에 내가 추락한 것이다. 오버행 턱을 넘어설 때 왼발을 확실히 딛지 않았던 탓에 몸의 균형이 무너져 어이 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 나름 소중한 경험이었다.  
▲ 초반부의 크랙을 올라서는 부분이 재미 있었던 '사나이' 루트. 오늘 여심바위에서 유일하게 두 차례 올랐던 바윗길이다. 
▲ '사나이' 루트를 등반하는 중이다. 온사이트 완등.
▲ 휴식 시간에 여심바위 암장 루트 전체를 훑어본다. 많은 클라이머들이 왔지만 다들 등반예절과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잘 지키는 듯 보였다.
▲ 맨 우측의 16번 루트인 '코로나'는 우측벽을 사선으로 올라서서 인공구조물인 데크의 H빔을 트래버스 하여 등반을 완료하는 특색 있는 루트다.
▲ 7번 루트인 '젠틀맨'을 오를 때부터는 기온이 올라서 반팔 차림으로 등반했다. 온사이트 완등.  
▲ '젠틀맨' 루트의 상단부를 등반하는 중이다.
▲ 여심바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루트인 '등반여신'이 잠깐 비어 있는 틈을 타서 곧바로 붙었다.
▲ '등반여신'은 초반부의 침니 구간과 상단부의 오버행 벽을 올라서는 곳이 크럭스다.
▲ '등반여신' 초반부는 두 번째 볼트를 클립한 후 곧바로 우측 벽을 이용해 스태밍 자세로 올라서면 편하다. 
▲ '등반여신' 상단부의 크럭스 구간을 막 넘어서고 있는 순간이다. 크럭스 구간에서 쉬어가는 바람에 아쉽게 온사이트 완등 기회를 놓쳤다. 
▲ 우벽의 12번 루트인 '동구라미'를 오르고 있다. 출발점에서 오버행 구간을 돌파하는 데 완력이 좀 필요했다. 온사이트 완등.
▲ 13번 루트인 '호연지기(5.10b)'를 오르고 있다. '동구라미(5.10a)' 바로 우측에 있는데 오히려 더 쉽게 느껴졌다. 온사이트 완등.
▲ 등반 안내도 상의 난이도 표기만 믿었다가 큰 낭패를 볼 뻔 했던 '드래곤(5.9)' 루트를 오르고 있다. 출발점에서의 손홀드와 발홀드 모두 애매해서 두 번째 볼트까지는 체감 난이도가 5.10c 정도는 되는 듯했다. 첫 볼트에서 한 차례 후퇴 후, 플래쉬 완등.  
▲ 사선으로 진행하는 '타이거(5.9)' 루트는 몸풀이 용으로 즐겁게 오를 수 있었다. 온사이트 완등. 
▲ 정리운동을 겸해서 '사나이' 루트를 한 번 더 오르는 것으로 오늘의 등반을 마무리지었다. 
▲ 그동안 사용하지 않던 캠핑용 탁자가 오늘은 여러모로 유용했다. 식당에 가는 것도 꺼려지는 요즘이기에 베이스캠프에서 간단히 저녁식사와 식후 커피까지 끝내고 느긋하게 상경하기로 했다.
▲ 석식 후 소화를 위해 판대천을 따라서 간현암벽장까지 다녀오는 산책을 했다. 판대천은 섬강의 지류이고, 섬강은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 서쪽으로 지는 해를 받아 물빛에 반사되는 풍경이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웠다.
▲ 판대천을 가로지르는 소금산교를 지나면 간현암벽장이 나온다. 여심바위에서 도보로 15분 정도 걸린다.
▲ 소금산교에서 바라본 철교 위로 레일바이크들이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우측의 산책로를 따라서 걸어왔다.
▲ 소금산교에서 바라본 간현관광지. 판대천에서 낚시하는 사람들과 사진 우측 위로 소금산 출렁다리 아래의 간현암벽장이 보인다.
▲ 여심바위로 돌아오는 길에 저녁 노을이 서서히 물들고 있었다. 앞에 보이는 초록색 다리는 KTX중앙선 철교이다. 여심바위에서 등반할 때 가끔 지나는 열차와 레일바이크를 원위치 시키는 기관차의 소음이 꽤나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