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슬기로운 클라이머 생활

빌레이 2020. 5. 27. 13:05

요즘 가끔 보는 드라마 중에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있다. IPTV에서 처음으로 정주행 했던 드라마가 <슬기로운 감빵생활>이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만들었던 제작진의 작품이라 하여 더욱 신뢰가 가는 '슬기로운' 시리즈이기에 나의 눈길을 끌었던 모양이다. 여기서 드라마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슬기로운"이라는 단어를 지금의 내 생활에 적용하여 곱씹어 보고 싶을 뿐이다. 뜻하지 않은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일상의 많은 부분이 변해버린 작금의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풍요로운 삶의 첫걸음이다. 밥벌이의 엄중함 때문에 직장생활은 슬기롭게 감당할 수 밖에 없는 형국이다. 거의 모든 교육활동이 온라인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버헤드로 인하여 내가 일하는 절대시간이 예전보다는 많이 늘었다. 동료 교수들과 차 한잔 같이 마실 여유를 갖기 힘들 정도로 짜여진 일정 속에서 일주일이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밀도 높은 강의 준비를 할 수 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약간이나마 자존감이 높아지고 교육자로서의 소소한 보람을 맛보는 것과 같은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현 시점에서는 종반부로 치닫고 있는 이번 학기가 모쪼록 별 탈 없이 마무리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의무적으로 해야할 일이 아닌, 내가 여가 시간에 누리고 싶은 삶의 중심에는 클라이밍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른바 '워라밸(work-life balance)'에서 사생활을 의미하는 라이프(life) 부분이 내 경우는 클라이밍 위주로 짜여진다. 코로나 사태의 여파로 멀리 떠나는 것이 꺼려지는 까닭에 예전보다는 더 자주 집에서 가까운 바윗길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이 나의 클라이밍 활동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넘쳐나는 게 싫어서 의도적으로 피하곤 했던 인수봉과 선인봉에서 열정적인 악우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분 좋은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고로 좋은 자연 암장들이 북한산과 도봉산 같은 지근거리에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새삼 감사할 따름이다.  빼어난 실력을 갖춘 전문 클라이머인 기범씨로부터 배우는 등반기술을 몸에 익히는 것 또한 즐거운 일이다.

 

실전에서 배운 등반기술을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실내 암장에서 하는 기초체력과 근지구력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클라이밍 실력 향상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일렁이는 도전의식이 나의 정신을 일깨우는 것도 소중한 자산이다. 아직은 눈에 띄는 성장이 보이지 않지만 꾸준히 정진하다 보면 언젠가는 좋아질 것이란 예감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 단순해진 일상이 나의 등반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는 오히려 더 좋은 여건이 되었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거나 좌고우면()하지 말아야 한다. 겸손한 가운데 일신우일신()과 주마가편()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이러한 다짐을 실천하면서 내 앞에 주어진 일과 등반에 집중하는 것이 "슬기로운" 클라이머 생활의 기본 태도일 것이다.       

 

▲ 북한산 인수봉의 '동양길' 3피치 크럭스 구간에서 기범씨의 원포인트 레슨을 받고 있는 중이다.
▲ 도봉산 선인봉의 '표범길'을 등반 중이다.
▲ 인수봉 남면의 '여정길' 1피치 크랙을 만족스럽게 완등한다면 나의 등반 실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듯하다.
▲ 인수봉 서면의 '천방지축' 루트를 등반 중이다. 한적한 평일 등반의 만족감이 컸었다.
▲ 경기도 양주시의 불곡산에 있는 독립봉 암장에서 두 차례 등반했다.
▲ 기범씨와는 참꽃이 만발하던 3월 말에 경기도 용인시에 있는 조비산 암장에서 처음으로 줄을 묶었다.
▲ 올해부터 새롭게 알게된 열정적인 악우들과 함께하는 즐거움 또한 크다.
▲ 멀티피치 클라이밍에서는 팀원 상호간의 믿음과 소통이 등반의 안전과 품격을 결정한다.
▲ 기범씨의 등산학교 제자이자 현직 전투기 조종사인 홍현씨와 같이 등반했던 순간도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