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이렇게 집중해서 짧은 시간 내에 완독하기는 참 오랜만의 일이지 싶다. 알렉스 호놀드의 등반기를 읽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등반자 본인이 동작 하나 하나를 완벽하게 기억해낼 수 밖에 없는 프리솔로 등반의 특성 상 읽는 내내 가슴 쫄깃한 스릴이 떠나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동영상으로 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내밀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는 만날 수 있다. 이 시대의 가장 유명한 암벽등반가인 알렉스 호놀드는 인터넷과 각종 메스컴을 통해서 자주 접했지만, 그건 대중에게 보여지는 단편적인 모습일 뿐이다. 책 속에는 진솔하게 자기의 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알렉스 무덤덤한 호놀드"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미국에서 2018년에 출판된 <얼론 온 더 월(Alone on the Wall)>을 등반서적 전문출판사인 하루재클럽에서 <프리솔로(Free Solo)>라는 제목으로 번안해서 펴낸 것이라고 한다. 데이비드 로버츠와의 공저로 되어 있으나 책 내용은 알렉스 호놀드가 직접 쓴 자서전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로버츠의 역할은 호놀드의 등반 기록이 갖는 의미를 전문가적 입장에서 해설해 주는 것이다. 남들이 보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특별하지만 지극히 무덤덤한 호놀드는 정작 자신의 등반 얘기를 대수롭지 않다는 듯 꾸밈없고 담담한 필체로 곁에 있는 친구에게 얘기하듯 편하게 풀어낸다.
로프나 다른 확보장비 없이 초크백 하나만 달고 고난도의 거벽을 오르는 호놀드의 모습을 처음 대했을 때 그것은 나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저 취미로 암벽등반을 즐기는 내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안전등반이 최우선이었다. 조금이라도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등반이 즐겁지도 않았다. 생각해보면 수많은 암벽등반 장비들도 거의 모두가 안전을 위한 목적에서 개발된 것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안전 대책을 거부하고 한번의 실수가 죽음으로 직결될 수도 있는 프리솔로를 감행하는 호놀드의 사고 방식과 등반 시의 심리 상태를 알고 싶은 마음이 평소에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호놀드의 행위를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소득이다.
우리는 자신의 입장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는 우를 범하기 쉽다. 위험해 보이는 것과 정말로 위험한 것은 다르다. 암벽등반을 경험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암벽에 매달리는 것 자체를 위험한 행위로 간주한다. 일반 클라이머 입장에서는 '프리솔로'라는 등반 방식이 미친 짓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하고 목숨을 거는 미친 짓으로 호도되는 선구적인 행위에 의해서 인간의 활동 영역과 사고의 지평은 넓어졌다. 이러한 견지에서 보면 분명 알렉스 호놀드의 경이적인 등반 기록은 충분히 위대하고 값진 것이다. 우리가 축구에서 리오넬 메시의 시대를 살고 있다면, 등반에서는 알렉스 호놀드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실감하게 해준다.
▲ 아프리카 차드 에네디 사막에서의 프리솔로 등반 모습. 이곳에서 호놀드는 온사이트 프리솔로 등반을 했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프리솔로'가 동일 루트에서의 부단한 반복 연습의 결과인 것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호놀드는 고난도의 온사이트 프리솔로 등반도 여러 차례 했었다는 사실이 더욱 더 놀라웠다.
▲ 미국 오레곤 주의 스미스록 크랙에서의 프리솔로 등반.
▲ 하프돔 상단에서 '레귤러 노스웨스트 페이스' 프리솔로 등반 모습을 재현 중인 호놀드.
▲ 유명 클라이머로서의 부와 명성을 얻었음에도 호놀드 재단을 통한 기부를 하면서 정작 자신은 여전히 밴에서 생활한다.
▲ 파타고니아 피츠로이 트레버스는 토미 콜드웰과 알레스 호놀드의 위대한 등반 기록으로 남아 있다.
▲ 알파인 등반가라 할 수 있는 토미 콜드웰과 암벽등반 전문이라 할 수 있는 알렉스 호놀드는 환상의 자일파티이다.
▲ 알렉스 호놀드가 쓴 섹션은 수직 자일로 시작한다.
▲ 데이비드 로버츠가 쓴 부분은 수평 자일로 시작한다.
▲ 책을 읽는 동안 알렉스와 교감하는 듯한 인상을 받아서 좋았다.
올해부터는 알렉스처럼 짧은 등반일기나 메모를 현장에서 수첩 안에 남겨볼 참이다.
▲ 영문판 표지. 프리솔로로는 딘 포터가 초등했던 요세미티의 '헤븐'을 프리솔로로 오르는 호놀드의 모습.
유투브에서 포터의 가슴 떨린 초등과 여유롭게 등반하는 호놀드의 모습을 대비하며 보던 생각이 난다.
▲ 또다른 영문판 표지. 한국판 책의 표지이기도 한 하프돔 '생크 갓 레지'에서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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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요세미티 Glacier Point Apron의 "Heaven(5.12d/5.13a)" 루트를 프리솔로 방식으로 등반하는 긴장감 넘치는 두 개의 영상.
초등자인 포터의 조심스럽고 신중한 동작의 등반 모습과
현재 프리솔로계의 독보적인 존재인 호놀드의 유연하고 멋진 동작이 대비되는 두 영상.
2006년도에 더트백 클라이머였던 딘 포터(Dean Potter)가 후줄근한 옷차림으로 초등한 후 환호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영상:
2014년도에 알렉스 호놀드(Alex Honnold)가 여유 있게 오르는 모습과 요세미티의 아름다운 배경이 인상적인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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