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촌의 유선대 암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연암장이다. 3년 전부터 매년 한 차례씩 등반했었다. 집에서 가까웠다면 좀 더 자주 찾았을 것이다. 유선대 암장에 갈 때마다 즐겁고 안전하게 등반했던 기억 때문에 이 암장을 개척하고 관리하시는 춘천 한빛산악회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항상 내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유선대 암장의 개념도는 루트에 대한 그림과 설명이 자세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적 감각을 갖춘 하나의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개념도를 보고 있노라면 만든 이들의 애착과 숨은 노고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하다. 가끔 실제의 암벽 루트를 연상하면서 개념도를 훑어보는 것은 여행지도를 살펴보는 것과 흡사한 재미가 있다.
유선대 암장의 개념도에는 지난 가을에 내가 등반했던 루트 몇 개의 개척자가 '지창식'으로 표기되어 있어서 그 이름을 익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 월간 <산>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소개된 책의 저자로 반갑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지창식님의 수필집 <바람과 구름의 발자국을 따라서>는 책 소개 기사를 읽고 난 후에 곧바로 구매하여 틈날 때마다 한 편씩 읽는 재미가 있었다. 종강을 하고 바쁜 일에서 잠시 한숨 돌릴 수 있는 크리스마스날 오후에 책을 완독하고 나니 독후감을 남기고 싶어졌다. 여러모로 감흥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수필의 길>이란 제목의 서문에서부터 진솔하고 간결하게 표현한 저자의 생각이 마음에 쏙 들었다. 생각하는 삶을 지향하는 수필 쓰기의 자세가 평소 내가 바라던 글쓰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선배를 발견한 듯한 기쁨이 있었다. 책의 절반 이상은 등산과 자연에 관한 글이고, 후반부는 역사와 일상에 관한 수필들로 채워져 있다.
나는 대학 다닐 때부터 풍광이 뛰어난 춘천의 삼악산을 좋아해서 자주 다녔다. 암벽등반에 입문한 후에도 의암호 주변의 춘클릿지와 의암바위를 자주 등반했었다. 책의 초반부에 춘천 인근의 삼악산과 금병산에 관한 글이 있어서 친숙하게 다가왔다. 책 표지 그림이 지난 가을에 내가 올랐던 강촌 유선대의 '그리움길'을 등반하는 저자의 모습이란 점도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 바윗길을 개척할 때 극성스런 모기에 시달리면서 수 많은 고생을 했던 기록을 읽은 후에는 유선대 암장이 더욱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암벽루트를 만들고 유지 보수하는 손길들의 노고가 얼마나 컸던 것인가를 생각하면 항상 고마울 따름이다. 댓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열정이야말로 결국은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산길을 걸으며 홀로 사색하거나 산우들과 나누는 대화의 순간처럼 편하게 다가오는 글이 많았다. 참나무, 참나물, 참취에 대한 예찬론은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평소 나의 생각과 궤를 같이 하고 있었다. 자기 고장을 사랑하는 향토사학자처럼 역사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생각을 곁들여 애정이 깃든 따뜻한 이야기로 역사적 사실을 재해석하는 저자의 시선 또한 신선하여 읽는 재미가 있었다. 자연을 사랑하고 자기 주변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진 단아한 글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따뜻한 봄날에 강촌의 유선대 암장에서 저자가 개척한 루트를 다시 오른다면 이 책을 읽기 전과는 달리 더욱 뜻깊고 즐거운 등반이 될 것이다.
▲ 책표지는 저자가 개척한 유선대 암장의 <그리움길>을 시등하는 모습이다.
▲ 2018년에 유선대 암장을 찾았을 때 나는 처음으로 <그리움길>을 등반했었다.
▲ 지난 10월에 찾은 유선대 암장의 기억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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