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애불(磨厓佛)은 자연바위에 새긴 불상을 일컫는 용어다. 한자어로는 갈 마, 언덕 애, 부처 불이 쓰이므로, 암벽을 깍아내서 만든 부처라는 의미이다. 자연을 크게 훼손하지 않고 불심을 표현하는 양식이어서 그런지 대웅전에 모셔진 번듯한 불상보다 마애불에 관한 인상이 나의 뇌리에는 오래 남는 듯하다. 예나 지금이나 깊은 산중에 있는 크나큰 바위를 옮긴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단단한 화강암을 깍아서 그리스나 로마의 세련된 대리석 조각품들처럼 만들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택한 불상 조각 양식이 주로 바위 표면을 깍거나 갈아서 부조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었을 개연성이 높다는 생각이다.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의 진산이라 할 수 있는 금학산에 오르면서 만난 마애불이 정겨웠다. 아침햇살을 받아서 빛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불상의 몸체는 큰 바위면을 다듬어서 선으로 그리듯이 부조로 새겨 놓았다. 머리는 별도의 바위로 만들어서 몸체를 형성하고 있는 큰 바위 위에 올려져 있다. 마애불을 뒤에서 보면 일반적인 자연 바위와 크게 구별되지 않는다. 주변 자연과 완전히 조화를 이루는 이러한 자연스러움이 이 마애불의 예술적 품위를 높여주는 듯하다. 예전엔 암자가 있었을 불상 주변의 흔적들도 흥미롭다. 인공적으로 깍아놓은 조각들에 돌이끼가 내려앉으면 새로운 자연의 일부가 된다. 세월의 흔적이 아니면 나타낼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값지다고 할 수 있다.
금학산 중턱에 있는 마애석불 앞의 너럭바위는 드넓은 철원평야를 내려다볼 수 있는 더없이 훌륭한 조망터다. 평평한 바위 위에 가부좌 틀고 앉아서 참선하는 스님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다. 고려시대의 불상인 마애석불이 국보나 보물이 아닌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된 것을 보면 조각품의 수준이나 예술적 가치를 그리 높게 평가받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산행길 중간에서 내가 만난 이 불상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겨울의 금학산에서 소박하고 잔잔한 기쁨을 전해주었다. 고향집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가장 빈번했던 소풍 장소인 철천리 미륵사의 두 마애불상을 떠올리게도 해 주었다. 다가오는 설 명절엔 외할머니 성묘길 중간에 있는 미륵사에 꼭 한 번 들러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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