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토왕골 계곡에서 노적봉의 남동벽을 오르는 <4인의 우정길>은 오래 전부터 등반하고 싶었던 바윗길이다. 이른 아침 시간에 비룡폭포 위의 토왕골로 어프로치를 하다보면 가장 밝게 빛나고 있는 우측 절벽이 바로 노적봉 남동벽이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햇살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 모양새는 흡사 무대 위에서 스폿라이트가 비춰주는 장면 같다. 절벽을 기어오르는 클라이머들은 조명을 받으며 공연하고 있는 배우들처럼 보인다. 별을 따는 소년들 릿지길이나 경원대길을 등반하다가 문득 뒤돌아 보면 맞은편의 노적봉 절벽에 붙어서 <4인의 우정길>을 오르는 클라이머들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오늘은 그 바윗길에서 우리가 구경꾼이 아닌 주인공이 되려 한다.
새벽 4시에 서울을 출발한다. 동갑내기 악우들인 대섭, 은경, 나, 이렇게 셋이서 대섭이의 차에 동승하여 새벽길을 가른다. 기송 형이 합류했다면 네 명이 4인의 우정길을 등반했을 것이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다. 척산온천 부근의 순두부집에서 조식을 먹고 7시경에 설악동 매표소를 통과한다. 비룡폭포 위를 넘어 토왕골로 진입하는 지점에서 공단 직원이 등반 허가서를 검사한다. 예전보다는 이른 시각부터 근무한다. 토왕골을 올라가면서 보이는 솜다리봉 절벽에는 벌써부터 클라이머들이 메달려 있다. 우리 앞에도 십여명의 등반팀이 어프로치 중이다. 이들도 솜다리길을 등반하려는 모양새다. 경원대길과 솜다리길 초입을 지나서 나오는 계곡의 평평한 부분이 4인의 우정길 진입로이다. 네 명으로 이루어진 한 팀이 이미 장비를 착용하고 있다.
설악에 와서까지 앞팀으로 인한 정체를 겪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생긴다. 조금 더 들어가서 별을 따는 소년들 릿지길 사정을 보기로 한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는 희미한 오솔길이 있어서 무심코 올라간다. 한참을 올라가도 릿지길 등반 출발점이 나오지 않는다. 뭔가 길을 잘못든 것 같은 생각에 주위를 둘러본다. 솜다리길과 별따기 릿지길 사이에 있는 지능선을 우리가 올라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숨이 턱에 찰 것 같이 힘겹게 능선길을 올라서 왔는데 길을 잘못 들고 만 것이다. 할 수 없이 후퇴하여 계곡으로 내려오니 별을 따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다. 4인의 우정길을 등반하는 팀의 라스트도 첫 피치를 끝낸 상황이라는 판단 하에 원래의 계획대로 우정길을 등반하기로 결정한다.
우여곡절 끝에 4인의 우정길 첫 피치 출발점에 도착하여 장비를 착용한다. 어프로치를 잘못한 탓에 심신이 피곤해진 상태여서 은근히 걱정된다. 하지만 새롭게 마음 먹고 대섭이의 빌레이를 받으며 등반을 시작한다. 직벽이지만 듬직한 홀드들이 많아 등반하는 재미가 살아난다. 대섭이가 두번째로 오르고 은경이는 촬영과 함께 라스트를 맡는다. 피치 길이가 길기 때문에 60미터 자일 두 동으로 등반한다. 앞 팀의 후미가 보이지 않고 우리 뒤에도 다른 팀이 없으니 우리만의 등반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다. 5피치까지 이어지는 루트는 간간히 짧은 오버행이 있기는 하지만 홀드들이 좋아서 등반이 즐겁다. 피치 길이도 적당히 길고 등반하는 재미도 느껴지는 등반성 좋은 루트라는 인상이다.
첫 피치부터 다섯째 피치까지는 노적봉 남벽 하단을 오르는 구간이다. 다섯째 피치를 즐겁게 등반하고 난 후 숲길을 15분 정도 걸어서 노적봉 남동벽 상단부의 여섯째 피치 출발점에 도착한다. 협소한 출발점에서 올려다 본 여섯째 피치는 다분히 위압적이다. 좌측의 남벽은 더욱더 가파르고 골짜기 아래는 까마득하다. 선등자의 체력을 감안하여 내 배낭을 라스트인 은경이가 메고 오기로 한다. 등반 길이가 40미터가 넘는 여섯째 피치는 우정길의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다. 만족스런 자유등반을 염두에 두고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한 후에 출발 구호를 외친다. 첫 번째 오버행 턱까지는 순조롭게 잘 오른다. 바위턱 좌측에 잡기 좋은 홀드가 있어서 진행했어야 하는데 그 다음 홀드가 미덥지 않아서 잠시 망설인다.
상당한 고도감 때문에 긴장되는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자유등반을 포기하고 안전을 위해 슬링을 이용하기로 한다. 슬링에 발을 걸고 일어선 후에는 우측에 안정적인 손홀드가 잡혀서 등반에 자신감이 생긴다. 그 다음 진행 방향은 좌측 사선 방향에 있는 세로 크랙이다. 인공등반을 할 수 있도록 두번째 오버행 부분의 볼트에는 슬링이 걸려있다. 볼트 우측에 세로로 잘 발달된 밴드가 손홀드 역할을 할 수 있을 듯하여 슬링을 사용하지 않고 자유등반 방식으로 돌파한다. 약간은 도전적인 이 구간을 넘어서서 쌍볼트 확보점에 안착한다. 그 어느 때보다 등반에 대한 만족감이 진하게 남는 구간이다. 후등자 빌레이를 위해 아래를 내려다보니 등반 길이도 상당하다. 개념도 상에는 등반 길이 40미터에 난이도는 5.10a로 표시되어 있지만 체감 난이도는 한두 단계 더 높다는 생각이다.
어려운 여섯째 피치를 마치고 상대적으로 쉽다는 마지막 피치를 등반한다. 하지만 이 구간도 그리 만만한 구간은 아니다.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든 상태이다. 크럭스 구간을 통과한 이후라는 안도감이 오히려 심적으로는 마이너스 요인이 된 듯하다. 안전 등반을 위해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등반한다. 세 사람 모두 안전하게 등반을 마치고 토왕골을 내려다보는 감회가 남다르다. 무더운 날씨에 1리터씩 준비해간 물은 이미 바닥난 상태다.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탈출로를 통해서 부지런히 내려와 소토왕골 계곡에 다다른 순간의 기쁨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다. 급한대로 계곡물을 손으로 퍼서 마신다.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세수하면서 행복감에 젖는다. 어프로치 과정에서 다소 힘들고 우여곡절이 많은 등반이었지만, 4인의 우정길 등반 만큼은 더이상 흠 잡을 데가 없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함께 줄을 묶었던 친구들과의 우정도 더욱 진해졌을 것이다.
1. 4인의 우정길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6피치 등반을 출발하고 있다.
2. 비룡폭포로 가는 숲길은 산책로 같이 편안한 길이다.
3. 비룡폭포 위의 토왕골 초입에서 잠시 쉬어간다.
4. 별을 따는 소년들 릿지길과 솜다리길 사이의 능선 상에서 바라본 토왕성 폭포.
5. 솜다리길 상단부 직벽에는 이른 아침부터 클라이머들이 붙어있다.
6. 반대편 능선 상에서 바라본 노적봉 남동벽. 4인의 우정길 전체 피치가 한 눈에 들어온다.
7. 4인의 우정길 중간에서 바라본 토왕성 폭포.
8. 토왕골 계곡을 넘어서 4인의 우정길로 가는 진입로에는 분홍색 리본이 걸려있다.
9. 4인의 우정길에서 바라본 솜다리봉과 선녀봉 능선. 우리가 헤맨 지능선도 보인다.
10. 첫 피치 출발이다.
11. 둘째 피치 등반 중.
12. 쎄컨으로 선등 빌레이를 본 한변이 둘째 피치를 등반 중이다.
13. 셋째 피치 등반 모습이다.
14. 한변의 3 피치 등반 모습
15. 한변이 넷째 피치를 오르고 있다.
16. 간간히 오버행이 있지만 홀드가 좋아 등반이 재미 있는 5 피치를 오르고 있다.
15. 다섯째 피치를 올라서면 전반부 등반이 끝난다.
16. 다섯째 피치 후반부를 등반 중이다.
17. 다섯째 피치는 중간 확보점을 이용해 두 번으로 나누어 등반할 수 있다.
18. 다섯째 피치 중간부분의 확보점.
19. 다섯째 피치 확보점을 올라서면 크럭스 구간인 6 피치가 있는 상부 벽면이 한 눈에 들어온다.
20. 여섯째 피치 출발점에서는 좌측 계곡으로 탈출할 수 있는 하강고리가 있다.
21. 여섯째 피치 좌측의 노적봉 남벽은 깍아지른 절벽이다.
22. 배낭을 라스트에게 맡기고 여섯째 피치를 등반 중이다.
23. 출발점에서 올려다보면 확보점이 잘 안보일 정도로 여섯째 피치는 길다.
24. 여섯째 피치 확보점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25. 마지막 일곱째 피치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 초반부가 생각보다는 까다롭다.
26. 일곱째 피치 확보점에서 평화로운 한 때를 보낸다.
27. 하강은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하산로를 이용한다.
28. 더운 날씨에 힘겨운 등반을 마치고 하강할 때가 보람차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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