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숨은벽-만경대 릿지 등반 - 2016년 6월 13일

빌레이 2016. 6. 14. 05:21

기말고사 기간이다. 사실상의 종강을 기념하는 의미로 동료 교수 두 분과 평일 등반을 계획한다. 모두 분주한 나날들 속에 하루를 빼서 시간을 맞춘다는 게 녹록치 않다. 어렵게 성사된 등반 약속인 만큼 시간을 아껴서 알차게 등반하기로 한다. 내차에 두 분이 동승하여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오전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주차 공간에 여유가 많다. 곧바로 하루재를 향해 어프로치를 시작한다. 오르는 길 중간에 부부인 듯한 등산객 둘이서 싸우고 있는 모습이 볼썽 사납다. 산에서는 남들의 이목이나 에티켓은 던져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눈살이 찌푸려지는 그들을 지나쳐 하루재에 오르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준다. 비로소 산에 들었다는 편안함이 전해진다.


인수봉 동벽과 남서벽을 돌아나가는 길로 올라간다. 남벽의 암장에는 벌써 한 팀이 등반 중이다. 한가한 평일에 등반을 즐길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이 부럽다. 주말이면 북새통을 이루는 북한산에서 한적한 산길을 걸을 수 있는 우리들의 모습 또한 감사한 일이다. 호랑이굴이 있는 백운대와 숨은벽 정상 사이의 고개를 넘어서 냉골로 내려간다. 숨은벽 릿지길 초입에서 나리꽃 무리가 반겨준다. 올해 산에서 처음 본 나리꽃의 모습이 반갑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등반 출발점인 대슬랩 밑에서 장비를 착용한다. 실전 등반이 처음인 김교수에게 간단히 몇 가지를 알려준다. 이미 등반시스템을 알고 계신 박교수님이 라스트를 맡아주시니 마음이 든든하다.


등반 난이도 측면에서 어려울 것 없는 코스지만 자일파티 모두가 즐거울 수 있도록 최대한 안전하게 오르자는 생각으로 등반한다. 아무리 쉬운 구간이라도 위험성은 항상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의식해야 한다. 릿지화 끈을 동여매고 첫 피치인 50미터 대슬랩을 오른다. 전혀 밀리지 않는 구간이지만 선등과 첫 피치의 부담감만은 완전히 떨쳐낼 수 없다.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확보점에 안착한다. 다음으로 김교수와 박교수님 순서로 오른다. 박교수님과는 오랜만에 함께 줄을 묶는 탓에 등반시스템을 약간 걱정했으나 전혀 문제 없이 잘 이해하시고 계신다. 김교수도 자신의 실전 등반 첫 피치를 멋지게 해치운다. 다음 피치부터는 물 흐르듯 자연스런 등반이 이어진다.


숨은벽 릿지에 우리팀 외에는 아무도 없으니 호젓하고 안전한 등반을 즐길 수 있어서 좋다. 초보자에게는 고도감 때문에 조금 어려울 수 있는 고래등 구간도 잘 통과하여 아무런 지체 없이 등반하다 보니 어느새 숨은벽 정상이다. 만족스런 숨은벽 릿지 등반을 뒤로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는다. 인수봉 서벽의 비둘기길을 오르는 팀의 부산한 소리가 가까이 들려온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만경대 릿지 등반을 계속하기로 한다. 위문 검문소를 통과하여 만경대 정상에서 시원한 맥주 한 캔을 마시며 잠시 쉬어간다. 숨은벽 릿지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는 만경대 릿지에 대해서 김교수에게 간단히 알려준다. 트래버스와 자일 하강이 이어지는 루트들 사이 사이에 뜀바위와 피아노 바위 같은 구간이 섞여 있어서 재미 있는 릿지 구간이다. 간간히 나타나는 클라이밍 다운 구간에서는 내가 자일로 확보를 보면서 박교수님과 김교수를 먼저 내려가게 하는 방식으로 등반한다.


만경대 릿지 등반까지 안전하게 마무리 하고 나니 노적봉 너머의 서쪽 하늘로 해가 기울고 있다. 장비를 챙겨서 하산을 시작하는데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퍼진다. 산사에서 저녁 6시 공양 시간을 알리는 모양이다. 산에서 듣는 종소리는 마음을 편하게 가라앉히는 힘이 깃들어 있다. 해가 지기 전에 하산을 완료하기 위해 용암문을 지나 탁족도 포기한채 속보로 내려온다. 도선사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아직은 주위가 환한 6시 40분 즈음이니 빠르게 내려온 것이다. 우이동의 장어집에서 오늘 등반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김교수가 모두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해 준다. 하루를 알차게 등반한 까닭에 함께 줄을 묶은 세 사람 모두가 만족스런 표정이다. 한 학기를 제대로 갈무리 하고 방학 동안에 열심히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한 것 같은 뿌듯함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