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춘클릿지 등반 - 2016년 6월 11일

빌레이 2016. 6. 12. 04:24

지난 4월 23일의 춘클릿지 등반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다. 우리 앞팀의 답답한 진행과 대규모 인원으로 구성된 뒷팀의 소란스러움 사이에 끼어 있어서 온전한 등반을 즐길 상황이 아니었다. 할 수 없이 3피치까지만 등반하고 탈출을 결정했었다. 의암바위 암장에서 우리끼리만 오붓하게 놀 수 있었던 것을 위안으로 삼았지만, 춘클릿지 등반이 처음이었던 현진 씨에 대한 미안함은 내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멀티피치 등반을 중간에서 그만두게 되면 남게 마련인 찜찜함도 있었다. 이러한 마음 속의 불편함을 씻어내기 위해 다시 한 번 춘클릿지 등반을 가기로 한다.


토요일 새벽 5시 즈음에 서울을 출발한다. 실내 암장에서 같이 운동하는 세 사람을 차례로 픽업하여 춘천으로 향한다. 이른 시간에 출발한 덕택으로 가는 길 중간에 포천시 내촌면의 47번 국도변 식당에서 콩나물해장국을 먹고, 가평 직전의 경춘가도에 있는 편의점에서 모닝커피까지 마시는 여유를 부린다. 의암댐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넘자마자 공사 중이라는 표시와 함께 도로를 전면 통제하고 있다. 의암바위 아래의 주차장을 이용할 수 없어서 우회로로 한참을 돌아서 반대편 대원사 아래의 호숫가에 주차한다. 평소엔 차가 다니던 도로 한가운데를 자유롭게 활보하면서 어프로치를 하는 기분이 남다르다. 중간에 김유정문인비도 구경한다. 춘클릿지 등반 출발점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다. 오늘의 춘클릿지는 우리가 첫팀인 것이다.


지난 번 등반 때의 거북함을 털어내기 위한 생각으로 마음은 벌써 4피치에 가 있지만 안전하고 차분하게 등반하기로 마음 먹는다. 첫 피치를 선등으로 올라서서 후등자 확보 중인데 두 사람이 나에게 양해를 구하고 2피치부터 등반을 시작한다. 우리팀이 1피치를 마무리 하기 전에 5명으로 구성된 또다른 팀이 우리 뒤에서 순서를 기다린다. 모두가 지난 번 팀들에 비해서는 등반 예절이 갖추어진 분들이라는 인상에 마음이 편하다. 우리도 부지런히 등반해서 뒤에 따라오는 팀이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화 하기 위해 노력한다. 평소와 달리 3피치를 끝내자 마자 곧바로 4피치를 등반한다. 간식 먹으며 쉬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원활한 등반 흐름을 해치지 않기 위해 마지막 피치까지 별다른 휴식 시간 없이 등반한다.


의암봉 정상에서 호수의 평화로운 풍광을 즐기면서 맛있는 점심을 배불리 먹는다. 현진 씨를 비롯한 자일 파티 구성원 모두가 만족스런 표정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산길도 평소와 달리 대원사 방향으로 잡는다. 처음 걸어보는 숲길이 여간 좋은 게 아니다. 시원스레 뻗어있는 낙엽송 군락과 원시림 같은 울창한 숲이다. 오솔길 주변엔 산딸기가 지천이고 간간히 산뽕나무 열매도 보인다. 새콤한 산딸기를 따먹으면서 어릴적 추억에 젖어보기도 한다. 어프로치와 등반뿐만 아니라 하산길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던 등반이었다. 지난 4월 등반 때의 찜찜함을 깨끗하게 털어냈다는 개운함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