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대학 시절에 그린 가우스의 초상화

빌레이 2015. 2. 21. 01:33

나주의 고향집 한 구석에 수학자 가우스의 초상화가 담긴 액자가 있다. A4 용지 네 장 크기 정도로 제법 큰 크기의 이 그림을 내가 언제 그렸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아마도 어려웠던 추상수학에 빠져 허우적 대던 대학 2학년 또는 3학년 시절에 기하학 교재 속의 삽화를 보고 모사한 것일 게다. 그러고 보니 이 그림의 년식이 벌써 30년을 내다보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액자 속의 도화지가 누렇게 바래있다. 내 주위에 있었더라면 벌써 버려졌을 물건이지만 어머니께서는 나에 관한 흔적을 거의 버리지 않고 계신다. 심지어는 중고등학교 때 받은 상장들과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만든 액자도 고향집 한 구석에 걸려 있다.

 

명절 때가 되면 스치듯 보게 되는 가우스의 초상화는 잘 그리지 못한 그림이다. 얼굴의 균형도 맞지 않고 표정도 그리 좋지 않다. 80년대의 우울한 사회적 분위기를 풍기는 듯한 인상이 내게도 달갑지는 않다. 수학의 황제라 불리는 독일의 대수학자인 가우스 선생이 이 초상화를 보게 된다면 기분 나빠하실 건 뻔하다. 부끄러운 나의 그림 실력이 낯낯이 까발려지는 이 그림을 당시의 가난한 대학생이었던 내가 표구사에 맡겨 액자로 제작했다는 것이 미스테리이다. 그러고 보니 이런 그림을 액자에 넣는다고 약간 무시하던 표구사 아저씨의 표정이 생각나는 듯도 하다.

 

이번 설날 아침에도 이 그림을 다시 보게 되었다. 화장대 옆에 있으니 옷 갈아 입으면서 자연스레 눈에 띤 것이다. 이제 우리 나이로 50세가 되는 올해 설날에 보는 가우스의 초상화는 여느 때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남이 보면 삐툴 빼툴 예쁘지 않은 글씨체이지만 어린 아이들은 자신이 쓴 글씨를 대견해 한다. 서툰 솜씨로 그려진 가우스의 초상화도 어린 아이의 글씨처럼 어딘지 모르게 나의 젊은 시절 초상을 담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된다.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이 미래를 알 수 없었던 불안감 속에서도 수학이라는 학문에 푹 빠져 살았던 그 시절의 열정이 그립다. 여유로움으로 포장된 나태함 속에서 다른 무엇보다 열정을 잃어버리기 쉬운 나이에 접어든 듯하다. 젊은 시절에 그렸던 가우스의 초상화는 수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내 마음 속에서 영원히 불타오르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1. 대학생 시절에 연필로 그린 그림은 아직도 선명하다. 완성한 날짜를 적어둘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2. 하얀 도화지는 누렇게 바랬지만 표구사 아저씨가 직접 만든 액자는 아직도 튼튼하다.

 

3. 고향집의 화장대 옆에 세워 둔 이 액자를 이제는 다시 내가 보관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