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영화 <와일드>는 책으로 출간된 셰릴 스트레이드의 PCT(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트레킹 체험담을 토대로 하여 주연 배우인 리즈 위더스푼이 제작까지 맡은 미국 영화이다. 이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검색하던 중 원작의 한글 번역본이 있다는 것도 알았고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먼저 구입했다. 올 겨울 주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답답한 상황이 전개되는 듯한 느낌 속에서 무작정 현실을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가끔 들던 차에 <와일드>가 눈에 띄었다. 대중적으로 인기 있는 영화가 아니어서 그런지 상영관 찾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20년 넘게 무사고를 기록하고 있던 내가 순간적인 운전 부주의로 접촉사고를 일으켰다. 다행히 사람은 전혀 다치지 않고 내 차만 조금 망가지는 바람에 공장 신세를 져야 했다.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는 친구의 도움으로 강남의 한 공업사에 차를 맡겼다. 적어도 4일 동안은 차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 친구가 신차를 시승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마침 논산 훈련소에 있던 아들을 면회하러 가기 위한 차가 절실했던 나는 시승차를 가지러 강남에 있는 영업소로 가는 길 중간에 시간을 내어 신사역에 자리한 극장에서 <와일드>를 감상할 수 있었다. 그동안 영화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볼 수 없었는데 그날은 정오 타임에 한 차례만 상영하는 귀한 시간이 내 일정과 맞아 떨어진 것이다. 카페에서 샌드위치로 점심을 대신하고 책 <와일드>를 읽으면서 영화 시간을 기다렸다.
영화 <와일드>는 여자 혼자서 4285 km에 달하는 PCT 트레킹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셰릴은 가난과 가정폭력으로 점철된 불우한 환경 속에서 버팀목이 되어주던 어머니의 갑작스런 병사로 삶에 대한 희망을 잃고 방황하게 된다. 급기야는 마약과 섹스에 탐닉하는 밑바닥 생활까지 떨어진 삶에서 탈출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그녀는 PCT 트레킹을 선택한다. 영화 <와일드>는 예전에 TV에서 보았던 PCT 관련 다큐멘터리와는 사뭇 다르다. 한 사람의 삶이 트레킹을 통해서 치유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관객이 10명도 되지 않은 한적한 객석에서 혼자서 본 영화 <와일드>는 요즘의 답답한 내 일상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현실에 얽메어 쉽사리 떠나지 못하는 나에게 자연 속에서 텐트 치고 숙박하면서 산길을 오랜 기간 걷고 있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영화를 보고난 후 당장이라도 배낭을 꾸리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지만 잠시나마 간접 체험을 한 듯한 공감을 전해져서 좋았다. 책은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영화와는 다른 깊이를 느낄 수 있어서 짬짬이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있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보게 되는 것도 이 영화의 특별함이다. 실제 인물인 셰릴의 트레킹 장면들을 보여주는 스냅 사진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기에 느낄 수 있는 재미이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셰릴은 PCT 방명록에 멋진 격언들을 남기면서 트레커들 사이에서 유명해지기도 한다. 그녀가 방명록에 남긴 명언들과 영화 홈피에 올려져 있는 스틸 사진들 몇 개를 여기에 옮겨본다. 마지막 사진은 영화 시간을 기다리던 중 카페에서 폰카로 찍은 사진이다.
몸이 그대를 거부하면 몸을 초월하라. - 에밀리 디킨슨 & 셰릴 스트레드
내 모습 그대로 받아줄래요? - 조니 미첼 & 셰릴 스트레드
평범한 발을 가진 아이조차 새 신발이 생기면 세상과 사랑에 빠진다. - 플래너리 오코너 & 셰릴 스트레드
나는 발걸음이 느립니다. 그렇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습니다. - 에이브러험 링컨 & 셰릴 스트레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 윈스턴 처칠 & 셰릴 스트레드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셰릴 스트레이드가 지은 책 <와일드> 독후감 (0) | 2015.03.24 |
---|---|
꽃샘 추위엔 봄꽃이 그립다 (0) | 2015.03.12 |
대학 시절에 그린 가우스의 초상화 (0) | 2015.02.21 |
미술관 같은 레스토랑 (0) | 2015.01.31 |
[독후감] 알프스 트레킹 - 3 (에크랑 일주) (0) | 2015.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