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춘클릿지 등반 - 2014년 5월 31일

빌레이 2014. 5. 31. 19:47

여름이 성큼 다가온 듯한 오월 마지막 날의 춘클릿지 등반이다. 간밤엔 잘 잤다. 등반 약속이 있는 전 날엔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일 년에 한 차례씩 행하는 대학 은사님의 사은회를 마치고 돌아와 늦은 밤 잠자리에 들었으나 새벽 알람이 울릴 때까지 깨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몸이 가볍고 개운한 기분이 들어 등반이 즐거울 듯한 예감이다. 아침 8시 즈음 춘클릿지 출발점에 도착한다. 벌써 한 팀이 붙어있다. 일행 중에 낯 익은 이들이 있어 알아 보니 내가 다니는 실내 암장에서 운동하는 젊은 친구들이다. 여덟 명으로 이루어진 앞 팀 때문에 피치 중간의 정체는 피할 수 없지만 아는 사람들이라 마음이 편하다. 우리 뒤로도 두 팀이 붙는다. 경치 좋은 춘클릿지의 인기가 절정이다.

 

춘클릿지는 이번이 네 번째 등반이고 선등으로 나서는 건 처음이다. 그간 실내 암장에서 꾸준히 운동해오던 몸 상태가 좋은 탓인지 선등에 대한 두려움은 없고 은근한 자신감이 앞선다. 지난 주 팔공산 등반에서 선등하던 허선생님의 신중한 모습을 회상하며 서두르지 않고 침착하게 등반하리라 마음 먹는다. 몸이 덜 풀린 상태의 첫 피치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세번째 볼트 부근의 오버행을 무난히 넘어서고 나니 앞으로의 등반이 기대된다. 둘째 피치는 침니에 이은 직벽인데 홀드와 스탠스가 쉬워 간단히 해치운다. 셋째 피치도 마지막 부분의 오버행 구간이 약간 부담스럽지만 확실한 홀드를 찾아 즐겁게 넘어선다.

 

춘클릿지의 하일라이트인 4 피치 앞이다. 사십 미터 길이의 직벽이 하늘을 향해 오만하게 치솟아있다. 예전엔 매우 위압적으로 보이던 이 바위가 오늘따라 도전해볼만한 대상으로 여겨진다. 앞 팀의 클라이머들이 하나 둘 힘겹게 등반하는 걸 지켜보는 중에도 별로 긴장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평온하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에 베테랑처럼 보이는 중년의 팀이 인천에서 왔다는 대학생 팀들의 진행 속도를 참지 못하고 우회로를 통해 그들을 추월한 후 4 피치 앞에 진을 친다. 그들의 출현에도 동요하지 않고 앞 팀의 라스트가 오른 후에 차분히 출발한다.

 

볼트를 따라 좌측의 날등으로 갈수록 미세하지만 확실한 홀드가 탐지된다. 여러 개의 볼트를 지나 오버행 구간에 걸려 있는 마지막 볼트에 퀵드로를 설치하고 자일을 거꾸로 거는 실수를 범한다. 당연히 오버행 턱을 넘어서는데 아래에서 당기는 듯한 느낌과 함께 자일이 끌려 올라오지 않는다. 빌레이 보는 은경이를 슬쩍 쳐다보고 자일을 퀵드로에서 빼낸 후 다시 클립하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체력만 고갈될 것 같아서 클립을 포기하고 진행한다. 어차피 자연 암벽에서는 절대 추락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등반해야 한다며 마음을 강하게 먹는다. 오버행 이후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구간이라는 점도 과감히 자일 클립을 포기한 이유가 되었다. 대신 완료지점 직전의 크랙에 캠 두 개를 박고 확보점을 만들어 자일을 클립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클립 실수에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잘 대응한 것이 괜찮았다. 그렇게 4 피치를 무사히 완료하고 나니 잔잔한 성취감이 밀려온다.

 

춘클릿지는 걷는 구간을 제외하면 전체 7 피치이다. 난이도는 5.9에서 5.10b로 개념도 상에 나와 있다. 하일라이트라 할 수 있는 4 피치가 최고 난이도 5.10b이다. 가장 어려운 구간을 끝냈다고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나머지 5, 6, 7 피치도 안전하게 잘 마치고 정상에 안착한다. 선등자 빌레이를 보았던 믿음직한 자일파티이자 친구인 은경이 덕택에 춘클릿지에서의 첫 선등을 즐겁고 안전하게 마칠 수 있었다. 스포츠클라이밍을 통한 그간의 훈련이 헛되지 않았음을 온몸으로 느낀 아주 만족스런 등반이었다. 앞으로도 항상 자만하지 않고 충실히 준비해서 좀 더 다양한 루트에서도 안전하고 즐겁게 오를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1. 춘클릿지의 정상에서 의암호의 붕어섬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남긴다.

 

2. 인어공주 동상 옆의 노변 주차장에 차를 남겨두고 자전거길을 따라 어프로치를 한다.

 

3. 춘클릿지에 올 때마다 첫 피치가 힘들었는데 오늘은 즐겁게 잘 통과한다.

 

4. 우리 뒤에는 인천에서 온 대학생 팀이 따라온다.

 

5. 셋째 마디는 마지막 부분의 오버행 구간이 부담되지만 홀드가 양호하다.

 

6. 하일라이트인 넷째 마디는 좌측의 날등으로 붙어야 홀드가 양호하다.

 

7. 넷째 마디를 등반 완료하고 확보점에서 의암호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본다. 

 

8. 넷째 마디에서 우리 뒤에 붙은 팀은 대학생 팀을 추월하여 이 구간부터 등반한다. 

 

9. 춘클릿지는 등반 내내 풍광이 좋아서 눈이 즐겁다.

 

10. 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땡볕에 타지 않기 위해 손수건을 둘러써본다.

 

11. 춘클릿지 정상에 무사히 안착하여 뿌듯함 속에 등반을 완료한다.

 

12. 정상의 전망데크에서 내려다본 춘클릿지의 마지막 확보점이다.

 

13. 하산지점에 위치한 의암바위 암장엔 다양한 루트가 개척되어 있다.

 

14. 의암호 수면 위에 비친 삼악산의 모습처럼 등반의 즐거움은 훈련을 통한 준비 상태의 반영이라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