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대구 연경 암장 - 2014년 5월 23일

빌레이 2014. 5. 25. 17:41

몽블랑 아랫마을인 프랑스의 샤모니에 살고 계신 허 선생님이 대구에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만날 날짜를 약속한다. 특별한 연고가 없었던 나에게 대구는 이제 더이상 낯선 곳이 아니다. 산을 통해 인연을 맺은 허 선생님 부부의 보금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허 선생님이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한 차례씩 찾아가서 등반도 하고 트레킹도 즐기면서 신세진 것이 벌써 여러 차례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추억이 쌓이는 것은 허 선생님 부부의 세심한 배려 때문이다. 아무 일 없이 그냥 만나서 커피 한 잔만 나누어도 좋으련만 이번에도 허 선생님 부부는 내 마음에 쏙 드는 일정으로 환대해주셨다.

 

금요일 오전에 동대구역에서 허 선생님과 반갑게 해후하여 커피숍에서 그간 쌓인 얘기를 나누었다. 허 선생님은 지난 겨울 동안 알프스에서 촬영한 SBS 다큐드라마 <하얀블랙홀>의 등반기술 자문에 대역까지 맡아 일하셨다. 그 피로가 쌓인 탓인지 한국에 돌아와 심하게 아팠다는 소식을 접했었는데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게 되니 무엇보다 기뻤다. 허 선생님의 가이드 하에 알프스 몽블랑 산군에서 꿈꿔 오던 알파인 등반을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었던 지난 해 여름의 추억은 영원히 잊을 수가 없다. 솔바람 소리가 좋았던 작년 가을 날의 팔공산 트레킹 또한 허 선생님과 같이 했던 최근의 즐거운 추억이다. 허 선생님이 계실 때 대구에 한 번씩 방문하는 것이 이제는 내 삶에 커다란 활력소가 되고 있다.

                

연경 암장 근처의 보리밥 집에서 점심을 먹고 맑은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는 암장에 도착해서 대여섯 코스를 올랐다. 허 선생님이 선등으로 자일을 건 후 나는 톱로핑 방식으로 등반한다. 스포츠클라이밍으로 직벽이나 오버행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홀드가 확실하지 않은 자연 암벽에서의 몸놀림은 둔하기 짝이 없다. 홀드가 눈 앞에 훤히 보이는 인공 암벽과 어느 곳을 잡고 디뎌야 할 지를 매번 망설이게 만드는 자연 암벽에서의 등반은 차원이 다르다. 신중하게 홀드를 탐색하여 확실하고 여유로운 동작으로 리드 등반하는 허 선생님의 모습은 정말 멋지다. 반면에 추락의 걱정이 없는 톱로핑 방식으로 자일에 매달리다 싶게 올라가는 내 모습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등반 실력에서는 햇병아리와 고수의 차이를 보이지만 허 선생님의 사려 깊은 마음 씀씀이 덕택에 편하게 등반할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 흘러간다.

 

암장 앞을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가 정겨워 등반 중간에 쉬는 시간이 평온하다. 허 선생님과 서너 개의 루트를 등반 한 후 쉬고 있는데 배 선생님이 맛있는 것을 잔뜩 싸들고 명랑한 얼굴로 나타나신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 선생님의 아내인 장 선생님도 퇴근하고 합류하신다. 몽블랑 등반을 준비 중이어서 설악산에 갈 거라는 장기수 씨도 잠깐 들러 주셨다. 춘설 내리던 작년 봄날 밤에 산장에서 보았던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나니 즐거운 마음이 배가된다. 접근이 수월하고 조명 시설까지 갖춰져서 야간에도 암벽을 즐길 수 있다는 연경 암장에서의 등반은 여러 가지로 뜻깊은 경험이 되었다. 스포츠클라이밍에서 트레이닝 한 체력이나 몸짓이 자연 암벽 등반에도 많은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위험 요소가 배제된 안락한 환경에 빠져 스포츠클라이밍 만을 고집하고 자연 암벽에서 멀어진다면 많은 것을 잃게 될 것 같다. 실내에서의 훈련이 어느 정도 충분하다고 느껴졌을 때 홀드 미약한 자연 암벽에서도 안전하고 즐겁게 등반할 수 있는 날이 내게도 오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1. 자연 암벽에서 멋진 자세로 난이도 높은 루트를 등반 중인 허 선생님.

 

2. 연경 암장은 천변 산책로에 접해 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과거엔 암벽 밑의 수로에 물이 흘렀다고 한다. 

 

3. 연경 암장에서는 쉬운 루트라는 여탕길에서도 나는 오버행을 넘어서는 데 애를 먹었다.

 

4. 자연 암벽은 아래에서 보는 것과 달리 막상 붙어보면 홀드 찾기가 쉽지 않다. 

 

5. 연경 암장의 안쪽에는 좀 더 어려운 루트들이 있다고 한다. 한 팀이 등반 중이어서 이 곳엔 줄을 걸지 못했다.

 

6. 맛있는 과일과 떡을 싸들고 찾아오신 배선생님의 등반 모습.

 

7. 풍부한 등반 경험 만큼이나 우아한 동작으로 등반하시는 배 선생님의 모습이 아름답다.

 

8. 역광으로 잡힌 여성 클라이머의 실루엣이 멋지다.

 

9. 안정된 자세로 크럭스 구간을 돌파 중인 허 선생님의 역동적인 등반 모습.

 

10. 춘설 내리던 작년 봄에 팔공산 산장에서 만났던 대구의 클라이머들을 다시 만나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11. 암장 앞을 졸졸졸 흐르는 맑은 시냇물 소리가 어찌나 정겹던지 지금도 그 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듯하다. 

 

12. 암장 앞의 시냇물은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개발되지 않은 채 생태 하천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13. 우리가 등반을 시작할 즈음에 생태 하천에서 청소년 학생들의 야외 수업이 있었다.  

 

14. 암장 주변에서 발견한 산딸기 열매가 앙증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