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의 계절 5월이다.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까지 이어진 4일 간의 연휴가 시작되는 토요일 아침이다. 초록이 한창인 인수봉 주변의 숲 속 오솔길을 따라가며 싱그러운 아침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어제 오후에 내린 세찬 소나기 때문인지 산은 그 어느 때보다 깨끗하다. 바위들도 물청소 깨끗히 된 포장도로처럼 말끔하다. 날씨는 맑고 하늘은 가을날처럼 드높다. 하지만 기온은 생각보다 낮아서 쌀쌀함이 느껴질 정도이다. 예보 상으로는 섭씨 9도에 불과한 온도이다. 20도를 오르내린 최근 기온에 비하면 갑자기 돌변한 날씨로 느껴지는 게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능선을 따라 오르는 어프로치 길이 평소보다 힘겹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 사건의 여파로 무기력증에 빠져 있는 요즘의 기분 상태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듯하다. 어제는 지하철 2호선의 추돌 사고로 많은 사람이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여러모로 어수선한 세태의 연속이다. 등반 중에도 결코 무리하지 않고 매사에 안전하게 임하리라는 다짐을 해본다.
영신이 형이 대상포진 증세로 빠진 가운데 네 사람이 인수릿지 등반에 나선다. 어프로치를 위한 능선 상에서 직벽을 만나 장비를 착용하고 릿지화를 신은 채 등반을 시작한다. 인수릿지 초입에서 암벽화로 갈아신고 은경이의 빌레이를 받으며 첫째 마디인 디에드르 크랙을 오른다. 둘째 마디를 걸어서 이동한 후 셋째 마디인 봉우리 위의 확보점에서 네 명이 모인다. 사방이 확 트인 봉우리 위라서 그런지 바람이 몹시 차고 세차다. 모두들 떨면서 추위를 느낄 정도다. 하강 후 낭떨어지인 침니를 건너서 반대편으로 이동해야 하는 구간인 넷째 마디는 까다로워 시간이 좀 걸린다. 네 사람이 다 건넌 후 다시 하강하여 실크랙이 시작되는 안부에 내려선다.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멈추지 않으니 모두들 등반이 즐겁지 않은 눈치다. 탈출로가 있다면 등반을 그만 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설교벽 쪽으로 내려다보기 위해 릿지 동편으로 가본다. 상대적으로 따뜻한 기운이 감돌고 햇살도 찬란하다. 햇살 속에서 설교벽 슬랩을 등반하고 있는 팀들이 내려다보인다. 하강고리를 발견하고 더이상 망설임 없이 탈출하기로 결정한다. 설교벽으로의 하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중간 확보점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으니 조심스럽게 하강해야 했다. 60 미터 자일 두 동을 연결하여 세 번 끊어서 하강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모두 안전하게 하강하여 설교벽 대슬랩 아래의 평탄한 곳에서 점심을 먹는다. 식사 후 잠시 쉬고 있는데 낙석이 발생한다. 다른 팀에서 등반하는 동안 상당히 큰 돌이 굴러 떨어져 위로부터 "낙석"이란 구호가 크게 울렸으나 미쳐 피하지 못한 모 고등학교 산악부 학생이 다친 사고가 발생했다. 떨어진 돌이 앉아 있던 학생의 발목 부위를 스치고 지나간 모양이다.
발목 골절상을 당하던 때가 생각나 남의 일 같지 않게 생각되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부상 당한 학생에게 다가가 치료하는 것을 도와주며 살펴본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닌 것 같아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금 일깨우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무리하지 않고 중간에 탈출한 것이 잘한 선택이란 생각이 들었다. 기상 여건이나 바위의 상태가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등반을 강행할 필요는 없다. 등반이 즐겁지 않을 때는 과감히 중단하고 포기할줄 아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다. 예기치 않게 인수릿지 중간에서 탈출했으나 설교벽으로의 하강 루트를 발견했다는 점과 설교벽의 여러 루트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점, 등반 중에는 낙석 발생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한 점 등 교훈적인 내용이 많았던 등반이었다.
1. 인수릿지 3 피치는 하강 후 낭떨어지인 침니를 건너서 반대편 벽의 슬링을 잡고 올라서야 한다.
2. 어프로치 중간에 바라본 인수릿지 원경. 정상에서 북쪽인 우측으로 뻗어내린 하늘금이 인수릿지이다.
3. 인수봉 주변 숲은 초록이 한창이다. 신선한 아침 공기 흠뻑 마시며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4. 신록으로 우거진 단풍나무 숲. 늦가을의 화려한 단풍도 예쁘지만 신록의 청단풍의 아름다움도 으뜸이다.
5. 인수릿지로 올라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정면의 인수봉 북벽과 우측의 설교벽 전경.
6. 어제 내린 비 때문인지 공기가 맑아서 시야가 좋다. 저멀리 오봉을 비롯한 도봉산의 연봉들이 하늘금을 이루고 있다.
7. 인수릿지로 가는 어프로치 중간에 직벽을 만나서 등반을 시작한다.
8. 인수릿지 우측의 숨은벽 능선과 파랑새 릿지길의 정상인 장군봉이 아침 햇살을 받아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인다.
9. 인수릿지 둘째 마디를 올라서고 있다.
10. 둘째 마디는 첫번째 바위에 올라선 이후 좌측의 봉우리로 등반하는 것이 선등자 확보에 안전하다.
11. 사방이 확 트인 봉우리 위의 확보점에 올라서니 차갑고 세찬 바람이 불어제낀다.
12. 짧은 하강 후 낭떨어지를 건너서 반대편으로 올라서야 하는 셋째 마디를 등반 중이다.
13. 바람 세찬 봉우리 위의 확보점에서 박교수님이 짧은 하강 중이시다.
14. 실크랙 앞의 안부에서도 계속 추위가 느껴져 설교벽 쪽으로의 탈출을 결정한다.
15. 설교벽의 중간 확보점들을 확실히 알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매우 천천히 하강하면서 적절한 확보점을 찾느라 애를 좀 먹었다.
16. 첫번째 60 미터 하강 완료 후 자일을 회수하는 과정에서 자일이 바위틈에 끼어 원치 않은 등반을 해야만 했다.
17. 두번째 60 미터 하강은 우측 사선으로 내려오면서 확보점을 찾았으나 쌍볼트까지는 못 미치는 바람에 일단 나무에 확보했다.
18. 마지막 세번째 60 미터 하강은 안도감 속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19. 긴 슬랩으로 이루어진 설교벽 등반 시에는 낙석에 대한 주의가 필수적이다.
'암빙벽등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공산 이백리길 등반 - 2014년 5월 24일 (0) | 2014.05.25 |
---|---|
대구 연경 암장 - 2014년 5월 23일 (0) | 2014.05.25 |
인수A길 등반 - 2014년 4월 12일 (0) | 2014.04.13 |
도봉산 낭만길 등반 - 2014년 4월 5일 (0) | 2014.04.05 |
난나암장 등반 연습 - 2014년 3월 29일 (0) | 2014.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