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인수A길 등반 - 2014년 4월 12일

빌레이 2014. 4. 13. 05:43

우이동에서 네 명의 자일파티가 만난다. 박교수님, 은경이, 영신이 형, 나, 이렇게 넷이다. 유집사님은 감기몸살이 심해 함께하지 못 하셨다. 아침 8시 30분이다. 택시 한 대에 동승하여 도선사 주차장까지 올라간다. 한 사람당 2천 원씩 받는 택시비를 기사님이 천 원 깍아주신다. 하루재를 올라서자마자 눈 앞에 나타나는 인수봉은 멋지고 늠름한 자태가 여전하다. 오랜만에 올라가는 코스라서 그런지 인수봉의 위치가 생각보다 왼쪽으로 옮겨간 듯 느껴진다. 누가 간밤에 옮겨 놓았을 거라는 은경이의 농담을 들으며 생각해본다. 아마도 하루재를 넘어 캠핑사이트로 내려서기 직전의 위치에서 정면으로 보던 인수봉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있기 때문인 것 같다.

 

흐린 날씨지만 인수봉 아래의 진달래는 어느 때보다 청아하다. 고독길 등반을 계획했으나 대슬랩에 사람이 적으면 인수A길을 올라보기로 하고 은경이에게 선등 의향을 물어본다. 흔쾌히 선등에 나서겠다고 하여 대슬랩 아래의 등반 출발지점에 도착한다. 부산하게 등반을 준비하는 십여 명의 팀은 의대길로 오른다고 한다. 대학생 선후배 사이인 듯한 두 명은 인수A길로 간다고 한다. 아직 대슬랩 위에 붙어있는 팀들도 평소의 주말보다 한산한 것 같아서 지체 현상은 없을 듯하다. 장비를 착용하면서 A길로 간다는 대학생 팀의 등반 모습을 지켜본다. 선배인 듯한 사람이 빌레이를 보면서 선등하는 후배에게 지껄이는 말투가 귀에 거슬린다. 안전을 위한 조언이라기 보다는 등반 기술을 뽐내며 애들 교육시키는 듯한 말투다. 이 사람의 말투는 변형A길로 돌아가 이들을 앞지를 때까지 옆에서 등반하는 우리들마저 불편하게 만든다. 이러한 말투가 등반 예의에 어긋난다는 사실도 이 젊은 친구는 모르는 것 같다.

 

대슬랩 첫 마디는 여러 사람들이 오르내린 탓인지 약간 미끌리는 기분이다. 은경이가 선등에 나서고 내가 쎄컨을 본다. 박교수님이 그 뒤를 잇고 영신이 형이 라스트를 맡기로 한다. 두 분에게 60 미터 자일 두 동을 연결하여 등반하는 시스템을 간단히 설명드린다. 볼트 없는 첫 마디와 둘째 마디를 무난히 끝내고 나니 서서히 슬랩에 적응하는 듯한 느낌이 전해진다. 오아시스에 이르는 셋째 마디는 좌측으로 오르다 첫 볼트 이후에 우측 사선 방향으로 꺽어지는 루트를 택한다. 볼트 두 개에 퀵드로를 설치하고 은경이가 잘 오른다. 자일 고정 후 내가 슈퍼베이직으로 오르고 박교수님이 간접빌레이로 오르신다. 그런데 자일 연결 부위를 등반자 아래의 중간 부분에 달고 오신다. 이렇게 하면 꺽여진 부분에서 자일 유통이 될 수가 없다. 대슬랩이 어려운 구간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퀵드로를 모두 제거하고 오르시게 조치한다. 영신이 형과 박교수님 모두 아직은 등반 시스템에 대해 익숙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좀 더 세심하게 알려드리지 않은 나의 잘못도 있다.

 

오아시스에서 얼마전 발생했던 낙석사고를 상기하며 잠시 쉬어간다. 우리 얘기를 듣고있던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한 분이 등반할 때는 사고 얘기를 하지 않는 거라며 나무라는 말투로 참견한다. 부정한 것을 꺼리는 미신적인 생각이 내면에 깔려 있는 듯한 인상이다. 이 곳에서는 낙석을 조심하자는 뜻에서 우리 팀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말이었다고 얘기하니 더 이상 끼어들지 않는다. 등반 사고야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겠지만 위험 요소를 충분히 인식하고 조심하는 자세가 더욱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의대길을 등반하려는 팀들로 북적이던 오아시스를 뒤로 하고 우리는 A길 등반을 계속한다. 넷째 마디는 침니에서 슬링을 잡고 올라선 후 우측으로 가면 쌍볼트가 있다. 이 곳 침니에서 여전히 후배를 닦달하고 있는 젊은 친구를 다시 만난다. 이들과 빨리 헤어지고 싶어서 곧장 우측 턱을 넘어 등반을 이어간다.

 

의대길 아래의 침니에서 궁형길과 A길이 갈리는 지점에서 좌측으로 트래버스하여 덧장바위의 가장자리를 잡고 오르는 루트로 진행한다. 추락에 대한 공포가 있는 구간인데 선등하는 은경이가 믿음직하게 잘 오른다. 그 이후로 짧은 두 개의 마디를 더 오르면 귀바위 밑의 영자크랙 앞이다. 이 곳에서 간식을 먹고 인수봉 정상에 오른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오른 인수봉이다. 모두들 안전하게 잘 올랐다는 안도감에 표정이 밝아진다. 선등을 맡은 은경이는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하고 안정적인 자세로 등반한 것 같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등반 능력이 향상되고 있음을 지켜보는 마음이 든든하다. 박교수님과 영신이 형도 전혀 지체함 없이 등반하신 덕택에 전반적으로 매끄러운 등반이 이루어진 듯하다. 두 분이 아직은 등반 시스템에 충분히 익숙하지는 않지만 오늘 등반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을 것이란 생각이다. 하강까지 안전하게 마치고 산을 내려오는 기분이 만족스럽다.      

 

1. 박교수님이 오아시스 위의 침니를 오르고 계신다.

 

2. 인수봉 아래의 진달래 빛깔이 곱다.

 

3. 평소 주말에 비해 한산한 인수봉 동면 대슬랩 아래. 

 

4. 오늘 등반지 중 최고 인기 코스는 의대길이다.

 

5. 변형A길로 올라선 후 궁형길과의 갈림길에서 내려다본 풍경. 오아시스에서 쉴 때는 침니에서의 낙석에 주의해야 한다. 

 

6. 의대길 아래의 확보점에 있는 박교수님과 영신이 형이 보인다. 트래버스 구간을 지나온다.

 

7. 여기에서 짧은 두 마디를 지나면 귀바위 밑의 영자크랙이다.

 

8. 트래버스 이후 덧장바위 슬랩을 올라선 후 두 분이 확보점에 있다.

 

9. 인수봉 정상에서의 망중한을 즐기고 있는 등반자들.

 

10. 인수봉 서면 하강길은 항상 만원이다. 

 

11. 올해 첫 인수봉 등정이다. 안전하게 잘 마친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