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빙벽등반

북한산 꿈길 릿지 등반 - 2014년 3월 15일

빌레이 2014. 3. 16. 15:23

꽃샘 추위도 서서히 그 기세가 사그러드는 듯하다. 토요일 아침의 우이동 북한산 들머리 주변은 등산 인파로 북적인다. 화창해진 봄날씨를 만끽하려는 주말 산행객들이 그룹을 이루어 산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활기가 넘친다. 올들어 처음 나서는 등반지로 꿈길 릿지와 암장에서의 연습을 계획하고 우이동 그린파크 앞 편의점에서 10시에 일행들을 만난다. 대학 산악부를 비롯한 암벽 등반객들이 유난히 많아 보이는데 모두 인수봉 주변으로 향하는 것 같다. 박교수님, 유집사님, 영신이 형, 은경이, 나, 이렇게 5명이 자일 파티를 이루어 하루를 보내기로 한다. 기영이 형이 4월 경에 합류하게 되면 당분간 6명의 멤버로 등반팀을 꾸려볼 생각이다.

 

작년 4월 하순에 진달래가 유난히 아름답게 만발하여 주위를 분홍빛으로 물들였던 기억이 생생한 육모정 고개로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오른다. 혼잡함을 피하기 위해 일반 등산객들을 앞질러 오느라 무거운 배낭을 메고 숨이 찰 정도로 빨리 걸었더니 땀 범벅이다. 꿈길 릿지로 향하는 오솔길에 접어들어 잠시 쉬어간다. 그 많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어느새 주위는 조용해졌다. 사람들 속의 활기찬 기운이 나쁠 건 없지만 산에 와서는 자연의 품에 안겨 고요함 속의 차분함을 즐기고 싶다. 암장에 도착해보니 이미 한 팀이 등반 중이다. 그 팀과 인사를 나누고 우리 팀은 그들과 떨어진 슬랩 좌측 숲속의 아늑한 자리에 아지트를 마련한다. 대여섯명이 둘러앉아 쉬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한적함 속에 차 한 잔을 마시며 그간 밀린 정담을 주고받는다. 유집사님과 영신이 형은 초면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익숙한 까닭인지 서로 간에 어색함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올해 첫 바위이기 때문에 먼저 간단히 암장에서 몸을 풀기로 한다. 나를 비롯한 영신이 형과 은경이는 등산학교 출신이기 때문에 등반시스템에 전혀 문제는 없다. 박교수님과 유집사님께는 빌레이 보는 방법을 제대로 교육시켜 드리기로 한다. 톱로핑 방식의 등반 연습을 위해 로프를 고정하러 선등에 나선다. 스포츠클라이밍으로 몸을 잘 준비시켰다는 자신감은 있지만 막상 붙어본 슬랩은 만만치 않다. 이제는 믿음직한 빌레이 기술을 보이는 은경이의 확보를 믿고 천천히 한 발 한 발 오른다. 손동작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발동작이 영 신통치 않다. 실내암장에서는 연습할 수 없었던 발동작을 구사해야 하는 까닭에 아직은 낯설게 다가온다. 그래서 손동작이 용이해 보이는 크랙 쪽의 루트를 따라 캠 하나를 설치하고 가까스로 줄을 거는 데 성공한다. 영신이 형, 박교수님, 유집사님 순서로 톱로핑 방식의 등반 연습을 마치고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고 곧바로 꿈길 릿지 실전 등반에 나선다. 겨울 동안 몸을 풀 기회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어렵지 않게 등반 연습에 임하는 걸 보니 실전 등반에 아무 무리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선등에 나서고, 항상 그렇듯 은경이가 쎄컨을 맡는다. 유집사님, 박교수님 순서로 뒤따르고 영신이 형이 라스트를 맡아 주시기로 한다. 1 피치와 2 피치는 짧은 직벽이어서 몸빌레이로 후등자를 확보한다.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3 피치부터는 60 미터 자일 길이를 감안한 등반시스템을 구사한다. 선등자가 자일을 고정하면 두 번째와 세 번째 등반자는 슈퍼베이직으로 오른 후 네 번째와 라스트 등반자는 간접 확보 방식으로 등반한다. 자일파티 모두의 등반 능력에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30 미터 이내 길이의 피치에서는 자일을 원활히 유통시키기 위해 이 방식이 가장 자연스럽다는 생각이다.

 

셋째 피치 말미의 밸런스를 요하는 구간을 선등할 때 잠시 머뭇거렸다. 적당한 손홀드를 찾지 못해서 할 수 없이 어정쩡한 맨틀링 자세로 올랐는데, 쎄컨으로 올라오는 은경이는 좌측 벽에 있는 손홀드를 찾아내어 비교적 쉽게 올라온다. 좀 더 차분히 홀드를 탐색하는 자세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4 피치 직벽에서는 손홀드 양호한 중간 세로 크랙을 올라선 후 좌측의 날등으로 트래버스 하는 과정에 신중을 기했다. 이번에는 적절한 손홀드를 잘 찾아서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피치를 끝낼 수 있었다. 아래에서 빌레이 보는 은경이와 다른 팀원들의 적절한 조언이 선등하는 나에게 큰 힘이 되었다. 지난 여름 프랑스의 샤모니에서 허긍열 씨와 자일파티를 이루어 가이앙 암장에서 등반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가 천천히 신중하게 선등함으로써 빌레이 보던 나를 편안하게 해주었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나도 그렇게 등반하고 싶었었다. 그런 소망을 조금은 실천해본 것 같아서 기분 좋았다. 깰 수 없는 약속이 있었던 유집사님은 아쉬움 속에 4 피치 등반 이후 하강함으로써 등반을 마치기로 하신다. 나머지 네 사람은 등반을 계속하여 마지막 피치까지 끝내기로 한다.

 

꿈길 릿지 등반의 하일라이트인 라스트 피치 앞에서 긴장감 속에 첫 발을 올려 놓는다. 첫 번째 볼트에 자일을 클립할 때까지 박교수님께서 든든하게 몸빌레이를 서주신다. 밴드를 넘어서기 위해 좌측의 날등으로 가보지만 균형이 잘 잡히지 않아 전진하는 게 까다롭다. 하는 수 없이 첫 볼트에서 텐션을 하고 살짝 내려온 자리에서 바위와 거리를 두고 잠시 루트를 가늠해본다. 직상하여 밴드를 잡고 맨틀링 자세로 올라가는 것이 간단해 보인다. 곧바로 몸을 움직여 다시 출발한다. 생각보다 쉽고 안정적으로 밴드에 올라선다. 밴드를 따라 상향의 사선으로 트래버스 한 후 길게 뻗어내린 세로 크랙 중간에 있는 그루터기를 잡아본다. 흔들리는 나무 뿌리가 미덥지 않다. 예전에도 그랬었다는 은경이의 말을 믿고 일단 그루터기에 슬링을 걸고 퀵드로를 클립하여 확보점을 만든다. 안전함을 도모하기 위해서 그루터기 아래에 캠을 설치하여 추가의 확보점을 만들어 만약의 추락에 대비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마지막 볼트가 상당히 멀어보이지만 세로 크랙의 홀드가 괜찮을 듯하여 자신감 있게 붙어본다. 레이백 자세처럼 손홀드를 잡고 오른쪽 발을 크랙에 재밍한 상태에서 한 발 한 발 차분히 오른다.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 볼트가 있는 순간 퀵드로를 설치하고 자일을 클립하고 나니 비로소 살았다는 안도감이 찾아든다. 그렇게 마지막 피치까지 안전하게 완료하고 우리 네 사람은 정상에 올라 기념 사진을 남겼다.

 

꿈길 릿지는 몇 차례 등반한 적이 있지만 리드 등반은 처음이다. 그동안은 친구인 정신이가 선등을 맡았었다. 하지만 올해는 정신이와 함께 꾸준히 등반하는 것이 여러 모로 힘들 것 같다. 할 수 없이 지난 해부터 호흡을 맞추었던 박교수님, 유집사님, 은경이를 주축으로 등반팀을 꾸려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등산학교 졸업 이후로 암벽 등반을 쉬고 있던 영신이 형과 작년에 암벽 등반을 다시 시작하기로 한 기영이 형이 합류하면 좋은 팀이 될 것 같았다. 질서있고 조화로운 등반 속에 자일파티 구성원 모두가 즐거운 등반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뢰가 바탕이 된 팀웍이 좋아야 한다. 안전한 등반 속에 즐거움이 찾아드는 것이므로 등반 능력 향상을 위한 훈련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스포츠클라이밍 교육을 받으면서 차근 차근 준비하자는 생각을 했었고, 처음 선등에 나선 꿈길 릿지에서도 스포츠클라이밍으로 인한 준비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무엇보다 팔 근육에 자신감이 생겨서 마지막 피치의 밴드와 세로 크랙에서도 안정감 있게 등반할 수 있었다는 것이 기뻤다.

 

올해 처음 나선 등반이지만 어설프거나 아쉬운 점이 거의 없었던 매우 만족스런 등반이었다. 한 팀을 이룬 자일파티 모두가 환상의 호흡을 보여준 것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 그동안 등반을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년간의 릿지 등반 경험을 바탕으로 등산학교 출신다운 듬직한 면모를 보인 영신이 형이 라스트를 맡고 있으니 등반팀 전체의 안정감이 높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선등자 빌레이를 봐준 은경이의 지혜로운 조언은 등반하는 내내 큰 도움이 되었으며, 선등자 몸빌레이와 자일 유통 같은 궂은 일을 묵묵히 수행해주신 박교수님 덕분에 물 흐르듯 원활한 등반이 가능했다. 유집사님은 우리 교회 전문사진사 답게 카메라의 성능에 관계없이 현장감 넘치는 좋은 그림들을 많이 잡아주셔서 등반의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할 수 있게 해주셨다. 이와 같이 자일파티 구성원 모두가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주니 질서 있고 안전한 등반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 한 팀을 이루어 등반할 수 있었다는 것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이다.

 

1. 암장 좌측의 슬랩 루트를 선등 중이다. 손홀드가 양호한 크랙 쪽으로 올라본다.

 

2. 우리보다 먼저 온 팀이 등반하고 있는 좌측에 걸린 노란색 자일이 올해 처음 자연 암벽에 설치한 줄이다. 

 

3. 점심 식사 후 곧바로 꿈길 릿지 등반에 나선다.

 

4. 꿈길 첫째 마디는 짧은 직벽이다.

 

5. 길이가 짧은 구간에서는 몸빌레이로 후등자를 확보한다.

 

6. 본격적인 등반은 셋째 마디부터 시작된다. 중간에서 좌측 날등으로 오르면 홀드가 양호하다.

 

7. 넷째 마디도 직벽이지만 홀드가 양호한 편이다. 중간 턱을 넘어서기 전에 캠을 설치하고 오른다.

 

8. 넷째 마디의 말미는 좌측으로 트래버스 하면 홀드가 양호하다. 후등자는 크랙을 따라 직상해도 좋다.

 

9. 마지막 마디의 직벽 세로 크랙 부분을 영신이 형이 라스트로 오르고 있다.

 

10. 유집사님이 가시기 전에 남자 넷이서 기념 사진을 남긴다. 3 피치와 4 피치 중간 쯤이다. 

 

11. 꿈길 릿지 정상에서 영신이 형과 함께 기념 사진을 남긴다. 참 오랜만에 줄을 묶었다.